
1989년 6월9일 새벽에 있었던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서강대생 500여 명이 학교 정문 밖으로 나와 시위하자 경찰들이 각목과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쫓고 있다.
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백골단’이란 단어를 쉽게 잊지 못한다.
직접 그들과 마주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휘두르던 폭력과 악행의 기억은 한국 사회의 집단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 이름이 윤석열 내란 실패 한 달여 뒤인 2025년 1월9일 다시 소환됐다. 백골단을 자처하는 극우 청년단체가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오래된 상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백골단은 흔히 청재킷과 청바지, 흰 헬멧을 착용하고 시위대를 진압하던 전투경찰과 직원 기동대원을 이르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일반 전·의경, 사업장 구사대와 함께 권위주의 국가의 폭력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시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백골단의 기원은 1985년 8월1일 서울시장 명의로 모집된 사복체포조라고 설명된다. 당시 이 조직에는 무술 유단자나 특전사·해병대 출신 경찰이 다수 특채돼 주축을 이뤘다.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던 이들의 흰 헬멧과 일반 전·의경과 구분되는 청재킷 차림은 곧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됐다.
다만 남아 있는 사진과 영상, 그리고 당시 전·의경 출신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실제로는 1985년 하반기부터 전투경찰과 직업경찰관(일명 ‘직원’)으로 구성된 사복체포조, 이른바 사복중대가 서울시경 산하에 창설돼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명칭이 무엇이든, 그들이 수행한 임무는 명확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일이었다.
문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독재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하며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상징이, 제대로 된 단죄와 성찰 없이 다시 정치의 장으로 불려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 과오를 불러낸 이들 또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여전히 정치권에 머물고 있다.
역사의 과오는 망각으로 덮이지 않는다. 규명되지 않은 폭력은 언제든 다시 얼굴을 바꿔 돌아온다. 백골단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 오늘,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다시 이들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억은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백골단이란 이름이 다시는 현재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90년 5월4일 대한광학·크라운전자 노조원 등 70여 명이 서울 구로구 구로1공단 삼영앞길에서 아남정밀 노조원 불법연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고 있다.

1990년 9월22일 국민연합이 주최한 ‘민주자유당 일당 국회 해산과 민중생존권 쟁취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소속 학생 등 1500여 명이 서울 대학로에서 거리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1990년 6월9일 6월항쟁 3돌을 맞아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연합’이 전국 13개 도시에서 ‘6월 민주항쟁계승 국민실천대회’를 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서울에선 학생과 시민 등 3천여 명이 광교 네거리와 종로2가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1990년 10월13일 시민∙학생∙노동자 등 20여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보안사 불법사찰 규탄과 군정청산 국민대회’를 마치고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을 전경들이 집단구타하자 버스 승객들이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90년 5월1일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동대문 근처 도로를 점거한 채 현대중공업과 한국방송공사 공권력 투입과 관련해 시위를 벌이던 중 한 백골단원이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을 들어 다시 학생들에게 던지려 하고 있다.

1991년 5월9일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 예정 장소인 서울시청 앞 광장이 경찰에 원천봉쇄된 가운데, 저녁 7시 종로3가와 4가에 모인 시위대 3만여 명이 광화문 쪽으로 행진을 벌이다 경찰이 쏜 다연발 최루탄을 피하고 있다.

1990년 5월18일 오후 국민연합의 제2차 국민궐기대회가 열려 학생과 시민 5천여 명이 서울 을지로에서 거리시위를 벌이자 경찰들이 다연발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고 있다.

1990년 4월19일 4·19혁명 30돌을 맞아 대학별로 4·19혁명 기념식 및 민자당 분쇄 결의대회를 마치고 서울 명동 제일백화점 앞길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을 경찰이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을 마구 발로 차서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서울시경이 서부경찰서에 감찰반과 강력과 소속 형사 8명을 파견해 내부감찰을 하는 가운데, 강력과 형사들로 구성된 조사반이 강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진 전경들을 소환조사하고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홍준표 “당대표 목숨 건 단식 하는데…등에 칼 꼽는 영남 중진 X들”

미, 관세협상 두 달 만에 반도체로 ‘뒤통수’…“공장 안 지으면 관세 100%”

국힘, 오늘 ‘이혜훈 청문회’ 불참…사회권 고수에 충돌 불가피

올겨울 가장 긴 ‘한파 위크’ 온다…화요일부터 엿새 연속 -15도 추위

“윤석열 사면” 또 꺼낸 서정욱…“천년만년 민주당이 다수당 하겠냐”
![[단독] 다카이치 측근, 통일교 ‘한학자 보고’에 등장…“에르메스 선물” [단독] 다카이치 측근, 통일교 ‘한학자 보고’에 등장…“에르메스 선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8/53_17687290260485_1817687290109554.jpg)
[단독] 다카이치 측근, 통일교 ‘한학자 보고’에 등장…“에르메스 선물”

트럼프, 그린란드 파병 8개국에 “10% 관세”…유럽 “무역협정 중단”

짜장면 잃고 특검법 따낸 ‘선배 당대표’…장동혁은 왜 한동훈과 싸울까

‘체포방해’ 선고 때 ‘공수처 수사권’ 인정…윤석열, 내란 재판도 불리할 듯

이 대통령 “‘지방선거 전 행정통합’ 안 하면 후회할 만큼 지원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