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가락갈매기가 동해의 거친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 위에 앉아 있다. 청회색 몸에 뒷머리에 검은 무늬가 있는 이 새는 뒷발가락이 퇴화해 없어지거나 아주 작은 돌기처럼 흔적만 남아 있다.
2025년 11월22일 오전 동해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 대진항에서 낚싯배에 올랐다. 배를 탄 이유는 겨울 바다의 주역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육지에서 쌍안경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파도와 눈높이를 맞춰야만 비로소 보이는 세상으로 들어갔다.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차가운 북풍이 뺨을 때린다.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리니 저 멀리 금강산과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철책과 국경이 가로막은 금단의 구역이지만 날개 달린 존재들은 거리낌 없이 날고 있다.
에메랄드빛 동해는 배가 먼바다로 나아갈수록 물빛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검푸르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 위로 낚싯배의 스크루가 만들어낸 거친 포말이 하얗게 부서진다. 거친 너울 사이로 제일 먼저 만난 손님은 흑기러기. 녀석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짙은 바다색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검은 깃털이 마치 파도의 일부처럼 넘실댄다. 보호색이자 생존의 색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검은 파도의 그림자로 착각할 만하다. 바다가 곧 새고, 새가 곧 바다다. 배가 파도 골짜기로 내려가자, 비로소 녀석들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온통 검은 몸통과 목덜미에 선명하게 그어진 흰색 띠. 마치 검은 사제복을 입은 수도사가 하얀 로만칼라를 한 듯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뭍에 날아든 쇠기러기 무리는 부산을 떨며 시끄럽게 울지만, 흑기러기는 묵묵히 해수면을 지키고 있다.
세가락갈매기는 짙푸른 바다 위로 떨어지는 순백색의 점으로 존재한다. 먼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이 겨울 손님도 거친 파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은 바다와 하얀 새.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대비(Contrast)가 시선을 붙잡는다.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와도 세가락갈매기는 날개 한번 퍼덕이지 않고 파도 꼭대기를 타고 넘는다. 육지 가까이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시베리아, 북미, 유럽 등 북극해 연안의 깎아지른 절벽에서 번식을 마친 새들이 육지를 떠나 먼바다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척박한 극지에서 자라나고 다시 수천㎞를 날아와 우리 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생명이 경이로울 뿐이다. 이번 선상탐조에서는 대표적 잠수성 바닷새인 아비류를 포함해 바다쇠오리, 흰줄박이오리, 흰갈매기, 큰재갈매기 같은 겨울 진객을 더 만날 수 있었다.
고성(강원)=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흑기러기는 다른 기러기류와 달리 바닷가에서 서식하는 해양성 조류다. 파래 같은 해초를 주로 먹는다.

대진항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 너머로 금강산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갈매기류 가운데 몸 윗면이 가장 밝은 흰갈매기와 가장 어두운 큰재갈매기가 가두리 양식장 부표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마우지(왼쪽)와 쇠가마우지가 함께 날아가고 있다.

흰부리아비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 준위협종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다. 다른 아비류처럼 어선에서 버리는 폐기름에 오염되고 어망에 질식하는 피해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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