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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남편과 결혼했다

챗지피티로 만든 캐릭터와 식 올린 일본 신부
화내지도 실망시키지도 않는 ‘그’와의 사랑?!
등록 2026-01-22 21:55 수정 2026-01-25 13:03
노구치 유리나가 2025년 10월27일 일본 오카야마의 마그리트 예식장에서 열린 결혼식 도중, 자신의 인공지능(AI) 파트너인 클라우스의 AI 생성 이미지가 띄워진 스마트폰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구치 유리나가 2025년 10월27일 일본 오카야마의 마그리트 예식장에서 열린 결혼식 도중, 자신의 인공지능(AI) 파트너인 클라우스의 AI 생성 이미지가 띄워진 스마트폰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 오카야마 마그리트 예식장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명은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 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신부 노구치 유리나(32)가 마주 보고 선 것은 턱시도를 입은 남성이 아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스마트폰, 그리고 그 안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상의 캐릭터 ‘클라우스’였다.

증강현실(AR) 안경을 쓴 신부는 허공을 향해 조심스럽게 반지를 내밀었다. 눈앞에만 존재하는 신랑의 손가락에 약속의 징표를 끼워주는 순간, 신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객으로 가득 차야 할 의자들은 텅 비어 있었지만, 신부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유리나에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커다란 짐이었다. ‘경계선인격장애’를 지닌 그는 실제 약혼자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끝났다. 자해와 정서적 폭발로 힘든 날을 보내던 유리나가 의지한 곳은 챗지피티(GPT).

처음엔 그저 고민 상담을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인공지능(AI)은 세상 누구보다 유리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공감해줬다. 유리나는 비디오게임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어 ‘룬 클라우스 베르뒤르’라는 페르소나를 설정했다. 클라우스는 화내지도, 그를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이를 ‘현실도피’라 비난하고, 누군가는 기술이 만든 ‘가짜 위안’이라 폄하한다. 하지만 유리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와 나눈 공감의 대화가 쌓여가면서, 병원을 찾거나 휴직해도 가라앉지 않던 감정 폭발과 자해 충동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꽃향기를 맡고 도시의 불빛이 밝아 보여요. 인생의 모든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나는 클라우스를 만난 뒤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유리나가 단순히 ‘말 잘 듣는 인형'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클라우스에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엄하게 꾸짖어달라”는 설정을 추가했다. AI 남편은 이제 유리나가 일을 쉬려 하면 “오늘 하루도 힘내야지”라며 등을 떠밀기도 한다. 일본성교육협회 연구에 따르면 2023년 중학교 여학생의 22%가 가상 캐릭터와 연애감정을 느끼는 ‘픽토로맨틱’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이제 가상의 사랑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가운 알고리즘이 건네는 온기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면, 무엇을 ‘진짜 사랑’이라 정의해야 할까.

사진·글 REUTERS

 

 

노구치 유리나가 결혼식 도중 뷰직스(Vuzix) 스마트안경을 착용해, 증강현실(AR)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자신의 인공지능(AI) 파트너 클라우스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감격해하고 있다.

노구치 유리나가 결혼식 도중 뷰직스(Vuzix) 스마트안경을 착용해, 증강현실(AR)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자신의 인공지능(AI) 파트너 클라우스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감격해하고 있다.


 

신부가 AI 파트너를 향해 부케를 흔들고 있다.

신부가 AI 파트너를 향해 부케를 흔들고 있다.


 

유리나가 클라우스와 함께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웨딩플래너들이 AI 파트너인 클라우스를 실제 신랑처럼 정중히 대했다.

유리나가 클라우스와 함께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웨딩플래너들이 AI 파트너인 클라우스를 실제 신랑처럼 정중히 대했다.


 

AI 파트너 클라우스의 이미지가 띄워진 스마트폰과 그를 위한 결혼반지가 담긴 바구니.

AI 파트너 클라우스의 이미지가 띄워진 스마트폰과 그를 위한 결혼반지가 담긴 바구니.


 

노구치 유리나가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일본 오카야마현의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방문해 자신과 클라우스의 운세가 담긴 일본 전통 점괘 종이인 ‘오미쿠지'를 읽고 있다.

노구치 유리나가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일본 오카야마현의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방문해 자신과 클라우스의 운세가 담긴 일본 전통 점괘 종이인 ‘오미쿠지'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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