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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안식처를 잃고 유랑하는 인류

2025년 로이터 렌즈에 포착된 정주할 수 없는 존재들의 초상
등록 2025-12-25 21:43 수정 2025-12-28 16:37
한 베네수엘라 남성이 2025년 1월30일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이민국(ICE) 요원들이 불법체류자를 연행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창밖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한 베네수엘라 남성이 2025년 1월30일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이민국(ICE) 요원들이 불법체류자를 연행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창밖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짐을 가득 챙긴 한 베네수엘라 남성이 아파트 창틈 사이로 숨죽인 채 밖을 살핀다. 미국 이민국(ICE) 요원들이 이주민을 연행하기 위해 들이닥치기 시작한 뒤다. 낯선 나라에서 겨우 일궈낸 한 뼘의 공간도 언제든 해체될 수 있는 임시거처에 불과하다. 2025년 1월30일,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이 풍경은 지구라는 거대한 집의 지붕이 곳곳에서 무너져내릴 것을 알리는 예고편이었을까?

영국에 닿기 위해 영불해협을 건너려는 한 이주민이 2025년 8월25일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의 프티포르필리프 해변에서 고무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헤엄치고 있다.

영국에 닿기 위해 영불해협을 건너려는 한 이주민이 2025년 8월25일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의 프티포르필리프 해변에서 고무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헤엄치고 있다.


8월25일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 해변에선 한 이주민이 차가운 바다에서 고무보트를 향해 헤엄친다. 영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집’을 찾으려는 무모한 항해를 위해 동료들만 간신히 구조의 손길을 내민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지하철역도 더는 일상의 통로가 아닌 거대한 방공호로 변한 지 오래다. 국경 너머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아파트도 드론 공격을 받아 흉물스럽게 서 있다. 우크라이나 최전방 마을 하르키우에서 장난감총을 든 채 사진기 앞에 선 아이들은 놀이마저 전쟁에 잠식당한 셈이다.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지하철역에서 2025년 6월23일 시민들이 대피해 잠을 청하고 있다.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지하철역에서 2025년 6월23일 시민들이 대피해 잠을 청하고 있다.


2025년 3월11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파손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비드노예 지역의 다층 주거용 건물 전경.

2025년 3월11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파손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비드노예 지역의 다층 주거용 건물 전경.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최전방 마을 칼리노베에 마지막까지 남겨진 아이들인 안드리(8)와 막심(6) 형제가 4월11일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최전방 마을 칼리노베에 마지막까지 남겨진 아이들인 안드리(8)와 막심(6) 형제가 4월11일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쟁의 포화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경제적 불평등과 오염된 환경은 아이들의 잠자리를 앗아갔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한 학교, 피란민이 된 어린아이가 낡은 담요 가림막 틈새로 밖을 내다본다. 휴전 뉴스가 들려오지만,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여전히 담요 한 장으로 지탱되는 임시방편의 세계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1단계 합의 소식이 발표된 뒤, 2025년 10월9일 피란 중인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학교에서 담요로 만든 가림막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1단계 합의 소식이 발표된 뒤, 2025년 10월9일 피란 중인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학교에서 담요로 만든 가림막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 환경의 날'인 2025년 6월5일, 필리핀 마닐라의 오염된 파시그강을 따라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한 소년이 잠들어 있다.

‘세계 환경의 날'인 2025년 6월5일, 필리핀 마닐라의 오염된 파시그강을 따라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한 소년이 잠들어 있다.


2025년 로이터 통신이 포착한 이 기록들은 안식처를 잃고 유랑하는 인류의 초상을 가차 없이 폭로한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더는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정치적 갈등과 환경 재앙이 안식처를 허무는 시대. 파괴된 안식처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2025년 또 슬프고도 절실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사진 REUTERS, 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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