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훗날 공업사의 사장이 된 청년 용접공. 청계3가, 1993.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에 서울시가 최고 145m 높이의 초고층 건물 건설을 허용하는 재개발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뜨거운 논쟁의 한복판에 선 곳은 197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세운상가다. 이미 건물이 낡아 20여 년 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진척이 없던 와중에 대법원이 서울시 손을 들어줘 개발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취소 우려’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반발과 2026년 지방선거 구도까지 맞물려 복잡한 상황이다.
이처럼 개발의 초시계 앞에 놓인 ‘청계천 골목’은 우리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민소매에 작업의 흔적이 묻은 장갑을 낀 채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어주던 용접공, 겨울비를 맞으면서 일거리를 기다리던 리어카꾼, 일하러 간 부모를 기다리며 함께 어울려 놀던 어린이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가게 안에서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공구상까지. 오랜 시간 그들은 청계천의 주인이었다.
1988년 대학 사진과에 입학하면서 어릴 적 살던 청계천변 숭인동 옛집을 우연히 들렀다가 본 옷시장과 공구 골목 안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0대 중후반이 되어 찾은 청계천에서 비로소 청계천 사람이 된 나를 마주쳤다. 공구상의 부속품, 미싱가게와 공업사, 의류가게, 노점상의 사람들과 더불어 청계천 골목 안을 기록하는 구성원이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행동거지나 눈빛이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게 되고 같은 동네 식구로서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청계천 구역 재개발로 2023년 금속공구 골목까지 무너지자 예전 같은 모습의 청계천 골목 사람들을 만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운명처럼 만난 청계천 골목길과 사람 풍경을 담은 이래로 3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엔 청계천 사진 수만 점 가운데 65점을 추려 전시회를 열고 책으로 묶었다.
이제 목전에 온 개발 압박에 청계천에 아로새겨진 우리 시대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이 조만간에 사그라질지 모를 일이다. 남은 사진 속 청계천 골목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애틋하다.
사진·글 이한구 사진가
*이한구 사진가는 한국의 특정 지역과 집단, 인물에 대해 미학적인 면과 기록을 중시하며 사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병영생활상을 감각적으로 찍은 ‘군용_Military Use’로 2015년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 ‘인터내셔널 디스커버리5’에 선정됐다. 도시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서울 청계천 지역의 삶과 풍경을 1988년부터 2023년까지 35년 넘게 찍어 ‘깊고 더럽고 찬란한_청계천 1988~2023’으로 선보였다.

삼일아파트 외경과 아이들. 청계8가, 1992.

쁘렝땅 백화점(현 장교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저녁 청계천 전경. 가운데 청계천을 따라 세워진 삼일고가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종로와 오른쪽으로 을지로가 나란하다. 중간에 좌에서 우로 가로지른 세운상가와 멀리 용마산과 아차산이 보인다. 청계2가, 1989.

부서지는 아침 햇살 속 하루를 여는 활기찬 발걸음의 출근 풍경은 좋은 하루를 기대하는 설렘으로 눈부셨다. 청계4가, 1994.

겨울비 속에 일을 기다리는 리어카꾼. 청계5가, 1994.

한 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 마치 설치예술인 것처럼 빽빽하게 팔 물건들을 진열해놓았다. 그 안에 비집고 앉아 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독서 중인 공구 노점상. 세운상가, 1997.

삼일아파트 자리에 들어선 성(뒤로 보이는 롯데캐슬 아파트) 앞에 잘린 채 일부 남아 있는 삼일아파트. 청계8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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