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8월15일 문익환 목사(가운데)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8·15민족해방 43주년 기념식과 공동 올림픽 쟁취 및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8·15 남북청년학생회담 출정식을 마친 뒤 판문점으로 향하다 경찰이 다연발최루탄을 쏘며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이들을 끌어안으며 보호하고 있다.
‘격변의 역사’.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아홉 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치며 ‘자유’와 ‘민주’를 향한 항로를 스스로 열어왔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4·19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을 천명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고난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피와 땀, 목소리의 집약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름 모를 시민들이 독재의 거센 파도에 쓰러졌다. 그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의 항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7년 6월,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외쳤던 그 여름, 한국 사회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사회구조를 바꾸고 이를 지켜낼 제도와 시민의 힘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국민적 깨달음이 결실을 거둔 1988년, 국민의 성금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됐다. ‘언론다운 언론’의 길을 걸어온 한겨레는 2024년 6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 고난과 희망의 시간을 담은 취재사진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 디지털 아카이빙은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다. 공개될 사진 중에는 이미 다른 매체나 사료를 통해 알려진 장면도 있지만, 일부는 현장을 지켜본 한겨레 기자들이 처음 세상에 내놓는 기록이다. 빛바랜 인화지 속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던 작은 목소리와 진실의 순간이 담겨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윤석열 정부 때 벌어진 역사 왜곡과 민주주의 후퇴의 장면들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다. 한겨레의 이번 디지털 아카이빙은 과거를 되짚는 작업이자,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작업이다. 기억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일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은 시(詩)다. 새로운 행을 써내려가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 과정 일부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복원된 사진 자료는 순차적으로 한겨레21과 한겨레 누리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광주학살) 부정·비리 책임자 처벌과 민주화운동 관련 양심수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12·21 석방자대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왼쪽)이 사면 조치로 풀려난 장녀 백원담씨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1988년, 서울 연세대 대강당)

‘양심수 전원 석방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국민대회’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전경 투구를 쓴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1988년, 서울 대학로)

재야 원로들이 와이엠시에이(YMCA) 레스토랑에서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함석헌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 송건호 한겨레신문 사장, 문익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박형규 목사, 계훈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성내운 교수, 이돈명 변호사.(1988년, 서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자 처벌과 조선대생 이철규씨 사인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오른쪽)가 이씨 주검이 안치된 조선대 병원 분향소를 찾아 이씨의 어머니 황정자씨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1989년, 광주)

김근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집행위원장(가운데)과 회원들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1989년, 서울 광화문)

윤정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가운데)와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존재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1992년, 서울)

1987년 대통령선거 개표를 둘러싸고 서울 구로구 부재자투표에 부정이 있다며 옥상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다 진압된 ‘구로구청 사건’ 2주년을 사흘 앞두고,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실차장이자 현장상황실장을 맡았던 김병곤씨가 위암으로 투병 중인 서울대병원에 당시 사고로 다친 양원태씨가 휠체어를 타고 방문해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1989년, 서울)

방북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정부가 한겨레신문 사옥을 압수수색하자 직원들이 자유언론 수호를 주장하며 밤샘농성을 이어가던 중, 작곡가 김민기씨가 농성장에 방문해 ‘아침 이슬’을 불러주고 있다.(1989년, 서울)

독직폭행과 준강제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문귀동 전 부천경찰서 경장의 첫 공판이 열린 인천지방법원에서, 피해자 권인숙씨(가운데)와 함께 특별참관단으로 참석했던 조영래(왼쪽)·홍성우 변호사가 법정을 나서고 있다.(1988년, 인천)
사진 한겨레 자료·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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