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기 뒤풀이’ 마지막 날 공연이 열린 2025년 7월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소극장 스페이스 거북이에서 출연진과 관객들이 함께 ‘아침 이슬'을 부르고 있다.
한발 뒤로 물러나 ‘앞것’들을 키우는 데 헌신했던 김민기 전 학전 대표의 1주기(2025년 7월21일)를 앞두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지상보다 한 칸 낮은 지하 소극장에 모였다. 생전 추모 공연이나 헌정 무대를 원치 않았던 김민기지만, 그를 잊지 못한 후배 예술가들은 황순원 작가의 시 ‘옛사랑’의 한 구절을 빌려 조촐한 판을 마련했다. ‘옛사랑으로 돌아오라’.
‘김민기 뒤풀이’가 2025년 7월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동구 소극장 스페이스 거북이에서 열렸다. 약 150㎡의 아담한 공간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관객과 공연자가 한 몸처럼 어우러진 이 공연은, 거창한 추모식이 아닌 따뜻하고 다정한 기억의 자리였다.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선생님과 술잔을 나누고 몸을 부대끼며 마음을 나눴던 예술인들이 ‘뒤풀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보탠 자리”라고 연출을 맡은 최창근 작가가 설명했다.
고인의 노래 ‘친구’가 나직이 깔리고, 전선영 감독이 고인을 기리며 제작한 영상이 커다란 화면에 띄워졌다. 노래하고 환히 웃는 생전 김민기의 모습을 본 관객은 숨죽인 채 그 순간을 지켜보았고, 공연의 막이 올랐다. 사흘간 이어진 공연에는 음악인 12명, 작가와 화가 6명 등이 참여해 고인의 노래와 자작곡을 부르고, 토지문화관에서 함께한 기억 등을 나눴다. 첫날, 가야금 연주로 문을 연 가수이자 ‘뒤풀이’를 공동 기획한 정민아는 토지문화관에 머물던 시절, 김민기와 임도를 함께 산책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선생님께서 지저귀는 새를 바라보시며 ‘저 새 이름이 뭔지 알아?’ 하고 물으시길래 ‘뭔데요?’ 했더니, ‘에이 마이너 세븐(Am7)이야’라고 하셨어요.” 새소리를 듣고 기타 코드를 떠올리던 고인의 감성을 전했다. 둘째 날 무대에 오른 싱어송라이터 노갈은 자작곡 ‘김민기’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푸른 하늘 보면 떠오르는 얼굴/ 무지개 길을 따라 가버린 사람/ (…)/ 마음 깊이 새기던 사람이었다” 홍은택 시인은 “‘늙은 군인의 노래’에 대한 얘기가 인상 깊었고, 노래와 연극 등에 선생님이 추구하는 ‘소박한 사실주의(리얼리즘)’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는 여유와 설빈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선생님의 노래 ‘아침 이슬’ 가사 인용을 허락받고자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 말씀 없이 선생님의 도장이 찍힌 개작동의서 파일만 보내주셨다. 그걸 제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썼다”며 “이 자리를 빌려서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덕분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에 참여한 후배 예술인들은 담담히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김민기를 소환했다.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민기의 말처럼 그 자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다정한 연대였다. 마지막 날 공연을 찾은 이수영(29)씨는 “새벽 운동 중 우연히 들은 ‘아침 이슬’이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여주었고, 캄캄했던 마음을 조용히 놓아줄 수 있게 됐다”며 “김민기라는 이름이 세대를 넘어 우리를 잇는 따뜻한 숨결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뒤풀이’에 함께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관객과 공연자가 함께 첫날과 마지막 날엔 ‘아침 이슬’을, 둘째 날엔 ‘상록수’를 합창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나 이제 가노라”라는 노랫말처럼 김민기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와 정신은 여전히 우리 삶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끝내 이기리라”라는 다짐을 품고 지상에 오른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김민기 전 학전 대표의 생전 모습이, 전선영 감독이 고인을 기리며 제작한 영상에 담겨 나오고 있다.

가수 황명하가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의 박수를 받고 있다.

‘그날이 오면’을 부른 가수 윤선애가 ‘아름다운 사람’을 열창하자, 한 관객이 휴대전화로 그 모습을 담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노갈이 공연에 앞서 자작곡 ‘김민기’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최창근 연출가(왼쪽부터), 김이정 소설가, 이경혜 동화작가가 토지문화관에서 함께 지낸 김민기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민기 뒤풀이’ 이틀째 공연 날, 관객이 출연진과 함께 ‘상록수’를 부르며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고 있다.
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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