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베들레헴에서 2023년 전 아기 ‘이사’가 태어났다. 쿠란의 이사는 성서의 예수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지만, 이사는 ‘신의 예언자’다. 쿠란은 이사가 심판의 날에 앞서 부활해 ‘알마시 아드다잘’(가짜 메시아)을 물리치고 정의를 복원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2023년 성탄절을 앞두고 베들레헴의 모든 교회가 기념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고난에 처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연대를 표하기 위해서다.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의 형상도 달라졌다. 지금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마주할 현실을 반영했다. 무너진 건물 더미 한가운데 누운 강보에 싸인 아기가 위태로워 보인다.
“아기 예수가 오늘 태어난다면 이스라엘군 폭격이 계속되는 무너진 건물 한 귀퉁이에서 태어날 것이다. 성탄을 축하하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메시지다.”
베들레헴 루터교회 목사 문테르 이삭은 12월7일 <알자지라>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를 비롯한 베들레헴 교회 성직자들은 최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교계 지도자들에게 공동서한을 보냈다. 불의에 맞서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가자에서 인종학살을 즉각 멈추라고 촉구했다. 답신은 없었다. 전쟁은 이어진다.
가자지구 북부와 마찬가지로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에서도 지상전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최남단 도시 라파를 때려대고 있다. 10월7일 개전 이후 12월12일 오후까지 팔레스타인 주민 1만820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70%가량이 여성과 어린이다. 부상자도 5만 명을 넘어섰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대한성서공회, 누가복음 2장 13~14절)
예수 탄생의 복음을 알리기 위해 양을 지키는 목자 앞에 나타난 천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탓인가? ‘하늘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가 도처에 가득한데, 성탄을 앞둔 팔레스타인 땅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2023년에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숨을 건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기후변화로 불덩이가 된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졌고, 가뭄과 홍수가 교차했다. 대비하지 못한 대지진으로 애달픈 목숨이 가뭇없이 스러졌고, 오만한 권력의 횡포도 기승을 부렸다. 만 2년을 향해 다가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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