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압’ 기합 소리가 이른 새벽 체육관을 가득 채운다. 올해 90살이 된 김중수 어르신이 내지르는 호통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다. 공격할 때보다 수비하다가 점수를 빼앗겼을 때 더욱 소리가 높아진다.
1기 신도시 중 하나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 한복판에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정발산이 있다. 그 안쪽 기슭에 자리잡은 배드민턴경기장에선 매일 아침 6시40분께부터 요란한 타구 소리가 어둠을 깨운다. 이 체육관의 아침을 80·90대 어르신이 주축이 된 ‘정족회’(鼎足會) 회원들이 지킨다. 다리가 세 개인 솥이 가장 안정적인 것처럼, 3명이 한팀이 돼 3복식 경기를 하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나이에 맞게 코트를 세 갈래로 나눠 수비할 목적이기도 하다.
1996년 9월 정족회 출범 때부터 동아리를 이끈 김현호 전 회장은 91살이다. ‘백세를 바라본다’는 망백의 나이지만, 배드민턴 경기를 치른 뒤에도 매트를 들고 경기장을 나선다. 경기장 앞마당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과 개인운동을 보탠다. 현재 회장인 89살의 이종대 어르신은 살짝 구부정한 자세와 달리 발이 빠르다. 타구의 힘도 남다르다. 후위를 맡아서도 날아오는 셔틀콕을 상대 코트 엔드라인까지 날려보낸다. 여성 회원 중 가장 연장자는 84살의 김지선 어르신이다. 서예가이기도 한 김지선씨가 쓴 붓글씨와 글씨를 활용한 그림이 체육관 곳곳에 붙어 있다.
이 동아리의 평균연령이 급락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11살 안주형군이 40대 부모님과 함께 정족회에 들어왔다. 90대와 10대가 함께 짝을 이뤄 경기를 즐기고 있다. 이들에게 배드민턴은 운동이자 놀이다. 경기장 한편에선 바둑 맞수인 70대의 배성주·박재혁 회원이 바둑 삼매경에 빠진다.
두 시간 남짓 신나게 땀 흘린 이들이 2023년 2월11일 오전 8시30분께 경기장을 나섰다. 코트에서 날아다니던 모습과 달리 지팡이를 짚기도 한다. 겨울철 낙상을 조심하려 함이다. 이들은 이날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최연소 회원 입회를 환영하는 아침 회식을 하러 간다.
고양=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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