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서북쪽에 있는 시엠레아프는 대표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관광할 수 있는 거점 도시다. 호텔 1천여 곳과 수많은 식당이 작은 도시에 가득 들어차 있다. 하지만 세계적 관광지 시엠레아프의 신비롭고 화려한 전통문화와 유적의 이면에는 잔혹한 역사가 담겼다.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가장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 구성원을 대학살해 절멸시키려는 행위)로 꼽히는 폴 포트 정권의 ‘킬링필드’가 이곳에서도 벌어졌다.
폴 포트는 공산혁명으로 ‘민주캄푸치아’(1975~78)를 출범시켜 캄보디아 사회를 사회주의로 완전 개조하기 위해 킬링필드로 알려진 대학살을 저질렀다. 킬링필드는 주로 민주캄푸치아에 의한 학살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으나, 넓게는 미군 폭격 등으로 일어난 학살도 포함한다. 대학살이 자행된 장소를 말하기도 한다. 1975년부터 4년 동안 캄보디아 인구 7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미국 예일대학 현지조사(캄보디아 제노사이드 프로그램)를 통해 캄보디아 전역에서 킬링필드가 200곳 이상 발굴됐고, 집단 무덤만도 9500개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시엠레아프에서 태어나 열 살 때 킬링필드를 겪은 쏙 소파(54)를 왓트메이 근처 자택에서 만났다. 왓트메이는 시엠레아프 시내에서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원이다. 이곳에 킬링필드 때 희생돼 시엠레아프 근처 구덩이 8곳에 묻혀 있던 주검 800여 구가 수습됐다. 쏙 소파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내놓았다. “아버지는 미국의 지원을 받던 론 놀 독재정권 시절에 군인이었다. 프놈펜에서 교수인 큰오빠와 군인인 둘째 오빠, 그리고 의사인 큰언니의 남편, 둘째 언니네 가족, 군인인 큰아버지 가족, 모두가 잡혀갔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없었고, 주검도 전혀 찾지 못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잇던 쏙 소파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덧붙였다. “이웃에 학살에 가담했던 이들이 아직 그대로 살고 있다. 서로 모른 체하며 잊은 듯 살고 있다.”
올해로 대학살을 멈춘 지 40년이 됐지만, 캄보디아 사회 내면에는 참혹한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덮여 있을 뿐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2018년에야 비로소 킬링필드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을 국가 공휴일로 정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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