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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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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가진 개

등록 2026-03-19 22:43 수정 2026-03-26 11:13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청계천 삼일아파트 뒷골목을 너는 서성대고 있었지, 목줄도 없이. 불행히도 다행히도, 너를 사람으로 바꿔줄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만나지 못했을 거야. 그 자리는 여전하지만, 그 풍경이 사라지고 바뀌었듯 너 또한 그러겠지. 다만 사진 속을 여전히 어슬렁거린다. 그 시절을 생각하게 한다. 2003년 봄, 서울.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청계천 삼일아파트 뒷골목을 너는 서성대고 있었지, 목줄도 없이. 불행히도 다행히도, 너를 사람으로 바꿔줄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만나지 못했을 거야. 그 자리는 여전하지만, 그 풍경이 사라지고 바뀌었듯 너 또한 그러겠지. 다만 사진 속을 여전히 어슬렁거린다. 그 시절을 생각하게 한다. 2003년 봄, 서울.


 

이름 없이 거리를 떠돌던 수캐였다.

눈보라 치는 러시아 모스크바 뒷골목을 서성이며 먹을 걸 찾다가 못된 요리사가 끼얹은 펄펄 끓는 물에 그만 옆구리를 데고 만다. 여기서 쓰러지는 것일까, 이대로 죽고 마는 것일까. ‘뼛속까지 끓는 물이 스미는’ 고통을 견디며, 발길질과 욕설을 두려워하면서도, 개는 일어서 나아간다. 뒤이어 탄식한다. ‘아, 영원히 꺼지지 않을 개의 혼이여.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그건 너무 이를 거야. 이렇게 자포자기하는 것, 이 또한 죄악이 아닐까.’

털북숭이에 비쩍 마르고 상처 입은 떠돌이 개에게 다정하게 소시지를 던져주는 신사를 만난 건 다시없을 행운이었다. ‘샤리크’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주는 신사에게 자석처럼 이끌린다. 그의 이름은 프레오브라젠스키. 노화와 젊음을 연구하는 부르주아 교수였다. 돈 많고 늙은 자들이 그를 찾아와 회춘의 비법을 사간다. 교수는 샤리크를 치료하고 따뜻한 고기와 잠자리로 회복을 돕는다. 시절은 바야흐로 피로 얼룩진 로마노프 304년 왕조가 러시아혁명(1917)으로 무너지고 볼셰비키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의 깃발을 펄럭이며 거침없이 전진하던 1920년대였다.

공짜밥이 가장 비싸다 했던가. 어느 날 샤리크는 수술대에 오르고 뇌와 고환을 적출당한다. 그 자리에 방금 죽은 스물여덟 살 남자의 뇌와 고환이 이식된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끝에 샤리크는 회복한다. 찾아온 것은 젊음이었을까, 아니 인간화였다.

몸통의 털이 빠지더니, 두 다리로 서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습성은 그대로여서 떠돌이 개 시절에 익혔던 욕설을 내뱉고,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겼지만, 더 이상 그를 개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샤리크는 샤리코프라는 사람의 이름을 얻는다. 그를 눈여겨본 자가 있었으니, 교수의 반혁명적 태도를 문제 삼던 ‘공산주의 선동꾼’이자 ‘개의 심장을 가진 자’로 불렸던 시본제르였다. 샤리코프는 시본제르를 등에 업고 활개 친다. 묘하게도 스탈린의 얼굴을 닮아간다. ‘혁명적 계급상승’을 이룬 개사람은 점점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고심 끝에 교수는 또 한 번의 수술을 감행한다. 샤리코프는 샤리크로 돌아온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람도 개도 아니다.

러시아 문학가 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의 소설 ‘개의 심장’은 오랜 세월 금지당했다.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급진하던 그 시대를, 노예의 사슬을 끊고 세계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던 혁명적 인간형을 개사람으로 풍자하고, 심지어 은밀히 스탈린을 조롱했으니 그냥 둘 수 있겠는가. ‘개의 심장’은 발표된 지 60여 년이 흐른 1987년에야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교수의 후회에 밑줄을 긋는다. “(우리는) 물론 스피노자의 뇌하수체를 접목시켜 개를 아주 고상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문제가 있네. 평범한 아낙네라면 누구라도 언제든 그와 같은 인물을 출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인공적으로 스피노자를 만들어야 하는지 말이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너는) 개가 되고 마는가.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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