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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사진칼럼] 달리는 망원경

등록 2026-02-19 22:06 수정 2026-02-24 15:23
너는 대단한 몸집과 억센 근육을 가지고도, 공격보다는 달아나는 데 열중하지. 큰 눈은 멀리 있는 포식자를 가까이 보게 하고, 옆에 달려 넓어진 시야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지. 본 것을 얼마큼 남기고 얼마큼 버릴까. 겁이 많은 너는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달걀 한 판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알을 낳는구나. 2025년 광주광역시.

너는 대단한 몸집과 억센 근육을 가지고도, 공격보다는 달아나는 데 열중하지. 큰 눈은 멀리 있는 포식자를 가까이 보게 하고, 옆에 달려 넓어진 시야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지. 본 것을 얼마큼 남기고 얼마큼 버릴까. 겁이 많은 너는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달걀 한 판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알을 낳는구나. 2025년 광주광역시.


가만있는 법이 없다.

긴 모가지를 쉼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살핀다. 여기를 보는가 싶더니 저기를 보고, 하늘로 고개를 쳐들었다가 어느새 굵은 발로 땅을 헤집으며 뭔가를 주워 먹는다.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면 지루할 겨를이 없다. 넋 놓고 보다가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처음엔 거대한 새가 주는 위압감에 살짝 주눅 들지만, 깔끔쟁이 새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더분한 외모와 어수선한 행동에 이내 마음을 놓게 된다.

큰 새가 주는 시각적 만족감은 쏠쏠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덩치에 비해 녀석의 머리통은 얼마나 작은가. 깃털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털들이 머리부터 긴 목을 타고 내려온다. 반면 눈은 크고 아름답다. 땅 위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 사람의 수정체가 탁구공이라면, 타조의 수정체는 야구공이다. 머리뼈를 꽉 채울 지경이다. 그 덕에 입 벌어질 만한 시력을 가졌다. 무려 25라니, 사람보다 열 배 이상 좋고, 눈 밝다고 소문난 매나 독수리보다 세 배나 좋다. 20㎞ 밖에서 다가오는 포식자를 볼 수 있다니, 걸어다니는 망원경이 아닌가. 보배 같은 눈을 모래바람으로부터 지키려고 아름답고 긴 속눈썹을 지녔다. 많은 새가 그렇듯 눈 감을 때 눈꺼풀을 아래에서 위로 닫는데, 타조는 이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모델이다. 반투명한 눈꺼풀 ‘순막’은 눈을 감고도 밖을 볼 수 있게 한다. 타조가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땀구멍 사이에 낀 때가 보일까봐 잠시 불안하다.

녀석의 가슴뼈는 평평하다. 나는 새들이 비행근육을 지지하기 위해 용골돌기를 발달시킨 데 비해, 걷는 새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런 새들을 ‘평흉류’(平胸類)라 부른다. 가벼운 뼈 대신 튼튼하고 밀도 높은 뼈를 가졌다.

그래도 날개와 깃털은 있다. 날기 위한 게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짝짓기를 위한 장식용이다. 특히 수컷의 수려한 깃털은 타조가 아닌 사람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사랑받았다. 19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카바레 ‘물랭루주’의 댄서들은 수백 개의 타조깃털이 꽂힌 옷을 입고 캉캉춤을 추었다. 타조깃털 장식 모자를 쓴 귀부인의 모습은 물랭루주 전속화가 로트레크의 그림에도, 마티스와 렘브란트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부드러운 타조솜털은 정전기 발생량이 많아 먼지를 잘 끌어모은다. 고급취미 끝판왕 오디오 애호가들이 타조털 먼지떨이를 애용하는 이유다.

녀석의 허벅지는 메뚜기 뒷다리를 수천 배 확대해놓은 것 같다. 그 튼튼한 다리로 시속 70㎞로 달린다. 다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달리기로 코요테를 골탕 먹이는 만화영화 속 달리는 새, 로드러너보다 두 배나 빠르다.

발은 어떤가. 네 개의 발가락을 가진 다른 새들과 달리 발가락이 두 개다. 그 두꺼운 발과 발톱을 보고 어찌 공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가. 둘은 같은 조상에서 분화했다.

한심한 내가 녀석의 머리부터 발끝을 훑으며 감탄지경에 빠질 때, 심심한 타조는 내 땀구멍부터 옷에 붙은 고춧가루 한 알을 관찰하며 불현듯 초원을 그리워한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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