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이름부터 공작이라니 네 지위는 얼마나 높은 걸까. 너는 수백 개의 눈알을 박아넣은 듯한 깃털 무늬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암컷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천적은 너를 두려워하도록. 사람들은 네 허리에 난 깃털을 꼬리라 부르고, 그 뒤에 숨은 진짜 꼬리는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거나. 201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
말장난 좋아하는 내게 동음이의어는 언제나 반가운 낱말이다.
이음동의어보단 동음이의어가 흥미롭다. ‘같은 뜻 다른 음’보다는 ‘같은 음 다른 뜻’이 장난치기 좋으니까. 어떤 동음이의어는 마치 동음동의어처럼 다가온다. 단지 음이 같을 뿐, 전혀 다른 뜻인데도 도긴개긴, 그게 그거처럼 들린다.
이를테면 공작. 서양 귀족의 작위 체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공작(公爵)과 보는 이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 공작(孔雀)은 어원도 지시하는 바도 다르지만,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귀족이 뭔가, 귀한 족속이란 뜻 아닌가. 저 공작도 이 공작도 어딜 가나 화려하고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역사 속에서 왕 홀로 다스린 왕국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지배세력이 필요하고, 왕국의 이상을 떠받치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봉건왕조는 ‘공작 무리’의 충성 속에 권력을 유지했다. 사람 공작들은 권력을 수호하는 지배 무리로, 새 공작들은 왕의 신성을 수호하는 이미지로 활약했다. 동서양 왕실을 상징했던 상상의 동물, 봉황과 피닉스는 어딘가 공작을 닮지 않았는가. 그 새들은 공작에 양념을 치고 버무린 결과였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공작이 이끄는 수레를 탔다. 100개의 눈을 가진 파수꾼 아르고스가 살해되자 공작 깃털에 그의 눈알을 박아 세상을 향한 감시를 이어갔다. 일점 시선에서 모든 걸 감시하려는 ‘파놉티콘’의 욕망을 깃털에 새긴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공작 꼬리라고 부르는 화려한 깃털은 사실 허리에 난 덮깃이다. 진짜 꼬리는 그 뒤에 수수하게 나 있다. 수컷 공작은 ‘오셀리’라 부르는 커다란 눈모양 무늬로 암컷을 유혹하고, 다가오는 적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고 보니 적을 혼란에 빠뜨린 뒤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인 ‘공작’(工作)을 빼놓을 수 없겠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북풍 공작 사건, 이른바 흑금성 사건을 다룬 영화 제목도 ‘공작’(2018)이었다. 이 공작과 그 공작과 저 공작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23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작 또한 ‘공작’이었는데, 이 영화는 칠레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피노체트가 실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이자 흡혈귀였던 클로드 피노슈의 현신이었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20년 전쯤, 아이와 동물원에 갔다가 길에 풀어놓은 공작을 만났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수컷이었다. 아이는 반가운 나머지 성큼성큼 다가갔고, 깜짝 놀란 공작이 푸드덕 날갯짓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 순간 아이와 난 빵 터지고 말았다. 그 세련된 녀석이 내지른 소리가 글쎄 “꼬꼬댁~”이었기 때문이다. “아빠, 공작이랑 닭이랑 한 가족인가봐요!” “응, 맞아. 원래 공작 이름은 공닭이었어. 그런데 왜 이름이 바뀌었냐면 말이지, 옛날 옛적에 공닭과 콩닭이 살았는데….” 그렇게 아이를 향한 나의 말 공작은 시작되었고.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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