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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돈이가 남이가

등록 2026-07-09 21:46 수정 2026-07-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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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복, 너의 하얗고 까만 무늬가 까치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지. 너희들은 적을 만나거나 화가 나면 몸을 크게 부풀리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다. 하지만 무섭기는커녕 귀엽더구나. 너희는 해독제도 없는 독을 품고 산다. “복어는 먹어도 바보, 안 먹어도 바보”라는 일본 속담은 흥미롭구나. 다양한 변주로 삶을 생각하게 한다. 2026년 부산 명지포구.

까치복, 너의 하얗고 까만 무늬가 까치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지. 너희들은 적을 만나거나 화가 나면 몸을 크게 부풀리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다. 하지만 무섭기는커녕 귀엽더구나. 너희는 해독제도 없는 독을 품고 산다. “복어는 먹어도 바보, 안 먹어도 바보”라는 일본 속담은 흥미롭구나. 다양한 변주로 삶을 생각하게 한다. 2026년 부산 명지포구.


돌이켜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때는 심각했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출판사에 다니던 옆지기가 저녁에 회식이 있노라며 늦은 귀가를 예고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밤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람이 응급실에 있으니 어서 병원으로 오라는 동료의 전갈이었다. 회식 때 반찬으로 나온 복어껍질무침을 먹었는데, 마비 증상을 느껴 병원으로 갔다는 거였다. 검사받는 중이라 통화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마른하늘 날벼락 맞은 정신으로 뭘 입었는지도 모른 채 집을 나섰다. 경기 고양시 끝자락에서 서울로 달리는 밤의 버스 창밖으로 오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에 하나, 신문에서나 읽던 ‘그 일’이라면 어떡하나. 마치 꿈만 같아서, 감각이 예민해지기는커녕 멍한 기분이었다.

응급실은 부산했다. 일분일초에 목숨이 오가는 살벌한 현장이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누르며 옆지기를 찾았는데, 침대에 누운 그 사람은 뜻밖에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입술에 살짝 마비가 왔지만, 이제 괜찮다는 거였다. 정말 멀쩡해 보였다. 의사를 찾아 퇴원해도 되느냐고 묻자, 단호했다. “이대로 보냈다가 ‘만에 하나’ 무슨 일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반문이었다. 자주 접하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들도 두꺼운 책을 뒤져가며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이송 결정이 내려졌다. 뜻밖에도 중환자실이었다. 나도 따라 중환자보호실로 자리를 옮겼다. 얼굴에 피로감이 잔뜩 쌓인 사람들이 찰나의 면회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는 곳이었다. 어떤 이는 지쳐 누웠고, 어떤 이는 서로를 위로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제 시작일 뿐이니 마음 굳게 먹으라는 격려와 함께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아, 아뇨, 저는 지금 다른 상황입니다”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긴 밤이었다.

이튿날 ‘나이롱 복어독 환자’에게 퇴원 허가가 떨어졌다. 창백한 침묵의 중환자실에서 스스로 밥을 떠먹은 유일한 환자였다며, 옆지기는 이상했던 그 기분을 들려줬다. 긴장했던 탓인지 집에 돌아오자 잠이 쏟아졌다. 둘 다 취한 듯 꿀잠을 잤다. 그 뒤로 나는 오랫동안 복요리를 멀리했다. 목숨 걸고 먹기엔 내 젊음이 아까웠으니까.

마흔 살 넘기고야 처음 그 맛을 보았다. 아, 이거구나! 목숨 걸 만큼 대단한 건 아닌데, 감칠맛이 좋구나.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는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며 즐겼다지만, 그런 감흥마저 느낄 수는 없었다.

복어는 간에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품고 있다. 신경계를 마비시켜 숨을 못 쉬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녀석을 먹고 목숨을 잃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을 좋아해 하돈(河豚)이라고도 불렸다. 풀어 말하면 강돼지다.

1992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대놓고 부추기는 대선 전략을 모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곳이 하필 복국집이었다. 저질 정치는 성공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참 더러운 독이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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