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등에 집을 이고 숲속을 오간다. 발길 닿는 곳이 네 집이 되는 것일까. 너희의 터전을 갈아엎어 골프장을 지으려는 이들은 말하고 싶겠지. 달팽이는 등에 집이 있으니까 아무 데고 옮겨두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대흥란과 거제외줄달팽이와 팔색조 둥지를 옮긴다 해도 긴밀하게 연결된 생태 네트워크가 단절되면 결국 죽고 만다는 경고는 듣고 싶지 않은 거니까. 2026년 경남 거제시 노자산 기슭.
시인은 싸우고 있었다.
무더위에 땀을 질질 흘리며 악전고투 중이었다.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 시어를 움켜쥐고 원고지 위에서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아니었다. 감시와 멱살잡이를 피해 날마다 산속을 헤매는 게 일과였다. 그는 기어이 산으로 들어가려 하고, 누군가는 기필코 앞을 막아선다.
“믿으세요. 와(왜) 사람 말을 못 믿습니꺼. 대흥란 잘 자라고 있어요. 당신들이 자꾸 들어가면 오히려 대흥란이 죽어요. 속고만 살았어요? 지금 당신들 때문에 입은 피해가 얼마인지 알아요? 이미 알겠지만, 대흥란이 여기서만 자생하는 게 아니잖아요. 딴 데 가도 대흥란 많이 있어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원종태 시인을 비롯한 노자산지킴이들의 산행을 감시하고 가로막는 경동건설 임원도 땀을 질질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조건 “안 된다”를 반복했다. 멸종위기종 대흥란이 성공적으로 이식돼 자라고 있는지 먼발치에서 관찰만 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 다른 지역의 대흥란 자생지를 알려달라고 해도 안 된다, 이식 과정을 문서로라도 공개해달라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였다. 자신들은 국가의 허락을 받았고, 여기는 이제 사유지며, 당신들은 범법자라는 거였다. 무조건 막는 자에게 대항할 방법은 무엇일까. 무조건 가는 수밖에 없을까.
중견 건설업체 경동건설이 경남 거제시 노자산 자락 369만㎡에 골프장과 숙박시설을 포함한 ‘거제남부관광단지’를 짓기로 작심한 건 10년 전이었다. 4277억원을 들여 27홀 규모의 골프장, 68동의 호텔콘도, 온천과 워터파크를 짓겠다고 거제시에 제안했다. 문제는 노자산이 한반도 남부 원시림 생태의 원형을 보존한 숲이라는 점이었다. 건설사는 사업 진행을 위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의뢰했고, 노자산에 법정 보호종 조류가 황조롱이 1개체뿐이라는 기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는 2019년 경남도가 사업을 고시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를 맡은 연구소 대표가 단 한 번도 현장조사에 참여하지 않고도 7차례 26건을 조사한 것처럼 꾸민 사실이 드러났다. 식물상조사표와 식생조사표도 허위 날조된 것이었다. 거제 지역 시민단체들이 직접 조사에 나서 천연기념물 팔색조 둥지 13개를 확인했다. 2023년 낙동강유역환경청과 경남도의 공동조사에서는 대흥란 727개체와 거제외줄달팽이 22개체를 확인했다. 다수의 도롱뇽과 반딧불이도 발견했다.
당국이 뒤늦게 연구소를 고발하고, 경찰이 96건의 환경영향평가 거짓 작성을 밝힌 데 이어, 검찰이 기소했지만, 상당수 혐의는 공소시효 5년을 넘긴 뒤였다. 경동건설은 밀어붙일 뿐이다. 멸종위기종의 대체서식지 이식을 자신하지만,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실험하고, 끼리끼리 내놓은 결과를 무조건 믿으란다. 착공을 위한 사업승인이 코앞이다.
개발을 꿈꾸는 지역사회를 등에 업고 불도저를 들이대는 건설자본 앞에서 딱 한 줌의 지킴이들이 위태롭게 싸우고 있다. 그 앞으로 오직 거제에서만 발견되는 멸종위기종 거제외줄달팽이가 시를 쓰듯 기어간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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