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살아가는 빽빽한 집들 사이에서 너는 일어나 밥을 먹고 똥을 싼다. ‘머나먼 그곳’이 너의 진정한 고향이라지만, 어쩌면 너는 동물원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지. 대전의 늑구처럼. 운이 좋다면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구나. 아프리카에 살았더라면 밀렵꾼에게 잡혀 코가 잘려나갔을 너를 동물원이 보호해주는 걸까. 동물원이 문을 닫으며 넌 어디로 갔을까. 201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
흙마당에서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개는 땅파기의 선수다.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자기도 그러고 싶지만 앞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본능 탓을 한다. “그러니 난들 어쩌라고, 멍멍!”
녀석들이 땅을 파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사냥 본능이다. 들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을 사냥했던 야생의 본능이 여전히 남아 있다. 먹이뿐이랴, 땅을 파고 들어가면 아늑한 보금자리가 된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아무튼 오만가지 이유로 땅을 판다. 삐뚤어지고 싶은 반항심 탓은 아닌지 의심도 해보지만, 자백받을 방법이 없다. 딱딱한 땅도 잘 파고, 식물이 촘촘하게 뿌리 내린 풀밭도 잘 파고든다. 개가 이러할진대 늑대는 오죽할까. 땅파기 종목에서 늑대는 국가대표급이다.
개보다 힘이 세고, 활동 반경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그러니 흙 위에 세워진 장벽이나 철조망을 만났을 때 늑대가 할 일은 뻔하다. 대전 오월드 동물원은 그걸 몰랐을까. 몰랐다면 큰 문제고, 알고도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2026년 4월8일, 늑구는 동물원이 고향인데도 본능이 이끄는 고향을 찾아 탈출했다.
늑대의 출현은 오랜 세월 사람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 공포를 자극했다. 하물며 “늑대가 나타났다!”는 일곱 음절의 비명은 동화와 우화 안에서 어린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 학습된 공포가 아닌가. 늑대는 ‘공산주의 마수’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양의 탈을 쓴 늑대.
사람을 물어뜯기 전에 조치해야 하고, 거기에 적극적인 사살도 포함하는 게 마땅할 뻔했다. 하지만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던졌다는 질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는 5월 광주와 12월 내란 사이에만 흐르는 게 아니었다. 죽은 뽀롱이가 산 늑구를 구할 수 있는가. 2018년 같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5시간 만에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의 비극이 재소환되며 더 이상 인간의 실수를 동물의 책임으로 미루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우여곡절 끝에 늑구는 돌아왔다. 스스로 돌아온 건 아니고, 잡혀서 돌아왔다. 스스로 돌아오는 일에도, 잡혀서 돌아오는 일에도 슬픔은 배어든다. 다만 ‘살아서’ 돌아왔으므로 기쁨이 끼어들 자리가 남았다.
탈출만큼이나 포획과 귀환을 둘러싼 이야기도 떠들썩했다. 늑구를 보기 위해 관람객이 밀려들 것이므로 “늑구야말로 효자”라고 외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며 당장 ‘굿즈’ 개발에 나서라고 충고하는 이도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 동물원에 관한 근본적 성찰과 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건 다행이다. 생각할 만한 사례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이 언급되기도 했다. 141년 전통(?)의 이 동물원은 2016년 문을 닫고,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폐관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겼다. 불현듯 거기서 만났던 코뿔소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잘 돌아갔을까.
궁금하다. 이 사진에 ‘행복한 코뿔소’라는 제목을 달거나, “안녕?” 하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동물원은 즐겁다. 같은 크기로 슬프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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