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고래 목격담을 떠올리며 전남 신안 흑산도에 갈 때마다 바다 위를 두리번거렸지. 행운은 오지 않더군. 낙심한 채 바닷가를 거닐다가 하얗게 빛나는 뼈를 발견했어. 단박에 알겠더군, 대체 누구의 뼈인지. 그 어떤 육지 포유류의 등뼈보다 컸지만 고래 뼈치고는 작았어. 드디어 나도 흑산도에서 고래를 보았노라 말해도 되는 걸까, 그래도 그건 아닌 걸까. 2025년 신안군 흑산면 상태도 바닷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지역별 분포가 기록돼 있다. 그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한반도 곳곳에 스며들었다. 학술이나 문화, 교육을 빙자한 부드러운 외피를 두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지배와 수탈이라는 거친 욕망의 몸통에 종사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도 경성에 가장 많은 일본인이 살았으나 머나먼 전남 흑산도에도 집단 거주했다. 무려 100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무슨 이유로 마을을 형성하며 흑산도에 머물렀을까.
19세기 중엽, 한반도 인근 해역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일본이 호시탐탐 한반도의 바다를 넘나들었다. 그들의 노림수 중 하나는 고래였다. 고래는 양질의 고기와 엄청난 양의 기름을 제공하는 바다의 돈다발이었다. 고래기름은 도시와 공장을 밝히는 램프의 원료였으며, 산업화를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할 기계의 윤활유였다. 비누와 화장품, 의약품으로도 활용됐다. 산업화와 포경은 뗄 수 없는 밀월관계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근해 포경독점권을 쥐고 동양포경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본격적인 고래잡이를 위해 울산 장생포, 제주 서귀포, 황해도 대청도, 무안(1969년 신안으로 분리) 흑산도를 포경 근거지로 삼았다. 총독부는 금어기마저 철폐하며 고래잡이에 열을 올렸다. 1903년부터 1944년까지 한반도 근해에서 일제가 잡아간 대형 고래의 수는 기록된 것만 8천여 마리에 이른다. 기록되지 않은 수를 어찌 헤아릴까. 일제강점기 포경산업을 연구한 이주빈은 “포획을 넘어선 학살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일제는 흑산도에 고래잡이와 해체, 가공, 운반을 위한 시설과 인력을 갖췄다. 총독부에서 직원을 파견했고, 일본인 어민을 위한 집단주거촌을 조성했으며, 바다의 신을 모신 ‘곤피라 신사’를 세웠다. 기이한 흑백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신의 영역과 인간세계를 구분하는 신사의 문 ‘도리이’(鳥居)인데,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양쪽 기둥을 거대한 고래 턱뼈로 세우고 그 위에 엉치뼈를 얹었다. 그 뼈의 일부가 남아 흑산도 자산문화관에 보관돼 있다.
지구에 사는 가장 큰 포유동물이자, 진화의 산증인인 고래가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1986년 포경규제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상업적 고래 포획이 금지됐지만 때늦은 조치였다. 고래기름은 석유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고래는 여전히 ‘돈이 되는 물건’이다. 은밀히 잡힌다.
조선시대 정약용(1762~1836)의 차남 정학유는 귀양 간 큰아버지 정약전을 뵈러 머나먼 뱃길에 올랐다. 흑산 앞바다에 이르러 “하늘을 쪼개고 땅을 찢는 듯한, 뱃사공이 수저를 놓치고 나도 놀라 넋이 나갈 지경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기행문 ‘부해기’(浮海記)를 남겼다. 조선판 고래 목격담이었다.
흑산도 검푸른 바닷속 어딘가 여전히 고래가 있겠지만 만나기란 이제 쉽지 않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오늘의 나는 어제의 정학유에게 이렇게 지고 만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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