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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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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서

등록 2026-01-15 23:08 수정 2026-01-22 13:56
사진은 언제나 보여주는 듯 감춘단 말이야, 마치 분단이 그러하듯. 사진 안에서 너는 침묵 속에 혼자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 주변은 온통 시끄럽게 웃고 울어대는 친구들로 가득했지. 너희는 살육의 터전 위에 살아남은 펭귄의 후손이구나, 한반도의 우리가 그러하듯. 2025년 칠레 푼타아레나스 마그달레나섬.

사진은 언제나 보여주는 듯 감춘단 말이야, 마치 분단이 그러하듯. 사진 안에서 너는 침묵 속에 혼자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 주변은 온통 시끄럽게 웃고 울어대는 친구들로 가득했지. 너희는 살육의 터전 위에 살아남은 펭귄의 후손이구나, 한반도의 우리가 그러하듯. 2025년 칠레 푼타아레나스 마그달레나섬.


이른 아침, 간밤에 친구가 보내온 문자를 뒤늦게 읽었다. “두둥!” 한 단어였다.

스마트폰 화면을 갈무리한 파일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렸다는 소셜미디어였다.

“이 한반도에도 언젠가는 혼란과 적대의 비정상이 극복되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공영하는 날이 오겠지요. 북측에도 새해 복 많이 내리기를.”

대통령의 메시지 아래 기사 하나가 연결돼 있었다. 낯익은 제목, 낯익은 사진 한 장과 함께. ‘만나라, 뽀재명과 뽀정은’.

얼마 전 내가 ‘풍경동물’에 쓴 것이었다. 조회수가 16만 회였다. 아침에 확인하니 30만 회가 넘었고, 지금은 70만 회를 넘기고 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하자 수많은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내렸다. 기사가 가랑비라면 댓글은 폭우였다. 같은 날 내린 비의 맛은 거의 같다는 점을 들어 그 댓글들의 맛을 설명할 수 있을까. 대통령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그 사이사이 나에 대한 비난이 섞여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므로, 대통령을 향한 욕설보다 나를 향한 욕설에 더 예민하다.

그들에 따르면 나는 빨갱이요, 암약 간첩이요, 이재명과 김정은의 폭정을 모른 체하고 구린내를 모아 향수를 만들어 파는 파렴치한 장사꾼이었다. 그렇게 북한이 좋다면 어서 월북할 것이지 왜 아직도 남한에 기생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었다. 종북이념을 예술이라는 포장지로 감춘 사기꾼이었다. 나도 몰랐던 내가 댓글 안에 있었다.

그때 띵동 하고 친구들과의 대화방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대통령도 포스팅하는 글의 필자가 우리의 친구”라는 격려에 이어 “에잇, 정권의 앞잡이!”라는 답글이 따라왔다.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농담을 섞어 가볍게 반박하면서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랬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이재명을 찍지도 않았어.”

투표권을 갖게 된 후 나는 여덟 번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지만, 내가 찍은 후보는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그래도 바랐다. 그 대통령들이 아무쪼록 성공하기를. 사람 사는 세상, 함께 사는 사회를 이끄는 정부가 되기를. 풍성해야 할 한국 사회의 논의들을 납작하게 짓누르고, 적대와 분노의 일상화와 폭력의 당연시를 조장하는 이 견고한 분단체제에 금을 내어 화해 평화의 주춧돌을 놓기를. 짧지 않은 시간 내가 힘겹게 찾아다닌 국가폭력의 현장들에는 언제나 분단이 스미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분단형무소의 수인이다.

이재명이 예뻐서 뽀재명, 김정은이 귀여워 뽀정은이라 불렀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 아기펭귄보다 예쁘고 귀여울 수는 없다. 그러나 둘의 의지는 한반도를 불바다로도, 안전한 평화의 땅으로도 만들 수 있다. 평화는 모든 걸 주지 않지만, 전쟁은 모든 걸 앗아간다. 펭귄처럼 뒤뚱거릴지라도 평화를 향해 걷는다면, 둘을 뽀재명과 뽀정은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참한 댓글들을 조용히 모아본다. 편지처럼 책처럼, 아프게 읽어본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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