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500일간 외친 “제발 만나 이야기 들어달라”

‘보랏빛 심판’ 이태원 참사 추모문화제...도심 축제에 질서유지 인력 배치 않은 정부는 아직도 유족 외면
등록 2024-03-15 20:41 수정 2024-03-17 09:24


2024년 3월9일, 보랏빛 풍선 수백 개가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넘실거렸다. 이날로 2022년 10월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가 500일을 맞았다. 2022년 3월9일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지도 꼭 2년이다.

“이태원 참사 진실 말고 필요 없다. 윤석열정권 심판”이란 글귀가 적힌 풍선을 치켜든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한국프레스센터 앞 차도에 줄지어 앉았다. 그 뒤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전국민중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 소속 회원들과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소속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동대문에서 사전 집회를 마친 뒤 행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동자들이 차도를 메우면서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의 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보증금 채권을 평가해서 최소 30%는 보장해주자’는 내용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또 3월7일 ‘민생토론회’란 이름으로 인천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 없이,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경인선 철도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등 개발 공약을 남발한 것을 비판했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 비상대책위원장도 연단에 올라 “용산의 낙하산 박민 KBS 사장이, 그리고 그가 임명한 제작본부장이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불방시켰다”며 총선 뒤 방영 예정인 프로그램을 선거 영향을 이유로 불방시킨 낙하산 인사의 ‘재갈 물리기’를 규탄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의 청년이 정부의 마약 수사로 인한 희생양이 돼 간절한 구조의 손길조차 철저히 외면당하며 아까운 삶을 중단해야 했다”며 ‘입틀막 정치’의 첫 피해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유가족들이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제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하고 애원했지만 외면당했음을 밝혔다.

참가단체 대표자들은 결의문에서 양곡법, 간호법, 노동조합법(일명 노란봉투법),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쌍특검법(김건희 주가조작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9개 법안에 줄줄이 거부권을 남발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 빈곤계층 25만 명 증가 등의 민생 파탄, 주요 공직에 검찰 출신을 앉히고 검찰 수사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하는 검찰 독재 행태를 심판하자고 결의했다. 이 밖에 역사왜곡, 굴욕외교, 전쟁위협, 평화파괴, 언론장악 등 퇴행의 정치, 거부권 통치에 대한 국민 심판을 외쳤다. 이날 심판대회는 서울, 강원, 세종·충남, 충북, 경북, 대전, 대구, 전북, 울산, 부산, 경남 등 11곳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심판대회에 이어 100여m 떨어진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선 500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보랏빛 풍선을 든 채 분향소로 돌아온 유족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영정을 어루만지거나 고개 숙인 채 흐느꼈다. 3월에 태어난 희생자 8명의 영정을 한자리에 모아 그 앞에 생일 케이크를 올린 채 편지를 읽기도 했다.

어이없는 사회적 참사 앞에서 유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력이 제대로 배치되지 않아 해마다 거듭된 도심 축제 현장에서 아비규환의 참사가 빚어지고, 구조도 제때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상규명도 소홀하다. 자식 잃은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권력, 상처받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정치…. 슬픔의 바닥에서 분노한 이들이 심판을 벼른다. 심판의 길은 여럿이다. 당장 눈앞에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사진설명]

(위)이태원 참사 유가족(왼쪽)이 2024년 3월9일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보라색 풍선을 든 채 눈물을 닦고 있다. 수녀복을 입은 성직자(오른쪽)가 유족을 위로한다.

(아래)윤석열 정권 심판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OUT!' 등의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머리 위로 넘기고 있다.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