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무른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올해 85살의 쯔엉티투 할머니는 총을 맞아 잘린 다리와 수류탄 파편을 맞은 엉덩이 등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침상에 누워 지낸다. 아픈 몸보다 먼저 떠나보낸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그의 가슴을 쇳덩이처럼 짓누른다.
1968년 2월22일(음력 1월24일),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청룡부대가 꽝남성 하미마을에 들어왔다. ‘따이한’이라 불린 군인들은 마을 사람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셋째 딸을 출산한 지 석 달, 쯔엉티투(당시 29살)는 집 안 산모방에 머물고 있었다. 집까지 들이닥친 한국군은 큰딸(7)과 아들(4)에게 총을 쐈다. 갓난아기를 안고 쓰러진 아이들을 향해 기어가는 그에게도 총을 쐈다. 다리와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군인들은 집에 불을 질렀다. 다리 위로 불덩이가 떨어져 품에 안은 딸은 깊은 화상을 입었다. 이날 집에 있던 쯔엉티투의 올케, 새언니 2명, 조카 7명 등 12명이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한국군에 이끌려 하미마을 세 곳으로 각각 모였던 주민들은 M60 기관총과 M79 유탄발사기 등의 중화기 세례를 받았다. 두 시간 만에 주민 135명(추가로 밝혀진 피해자까진 합치면 151명)이 살해됐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었다. 아이들의 입에는 군인들이 나눠준 사탕이 물려 있었다.
이로부터 32년이 흐른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기부로 하미마을 학살 위령비가 착공됐다. 하지만 이듬해 준공을 앞두고 복지회와 한국대사관은 비문 내용을 문제 삼아 지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이 지역 인민위원회와 생존자, 유가족들은 연꽃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비문을 덮었다. “때가 되면 다시 열겠다”는 비문의 내용은 이렇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 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친 것보다 더 참혹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집 문턱에는 늙은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들이 떼로 쓰러져 있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 끙끙대며 신음하니 또 얼마나 공포스럽던가. (중략) 그 옛날의 전장은 이제 고통이 수그러들고 과거 우리에게 원한을 불러일으키고 슬픔을 안긴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사과를 하였다. 그리하여 용서를 바탕으로 비석을 세우니 인의로써 고향의 발전과 협력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모래사장과 포플러나무들이 하미 학살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할 것이다. (후략)”
불에 덴 갓난쟁이를 둘러업고 허겁지겁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쯔엉티투 할머니는 오른발을 잘라낸 뒤 평생 부축받으며 살았다. 그의 생생한 증언 덕분에 광기 어린 참혹한 진실은 역사로 남았다.
핏빛 역사를 꽃으로 가린들 지워질까. 시간을 끈다고 잊힐까. 역사의 증인들이 세월 앞에 하나둘 스러짐을 애달파하며, 가해국 일본을 향해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하는 우리 스스로가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꽝남성(베트남)=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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