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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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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에서 첫경험을 하다

등록 2005-09-02 00:00 수정 2020-05-03 04:24

싱숭생숭해지고 야릇하게 흥분되고 뭔가 불순한 것 같았는데 결과는 대만족
러브하는 곳, 자는 곳, 부부가 가는 곳이 다를 이유가 없지 않을까

▣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칼럼니스트

내가 좋아하는 남편 선배 부부가 있다. 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몸 따로 마음 따로라 마음은 그득해도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데 이들은 그거 좋은 거야, 해봐야지, 그거 새로 나온 거야, 써봐야지, 그거 새로 나온 영화야, 봐야지 하며 당장 움직인다. 그래서 이 부부와의 만남에서 나는 항상 신선한 경험을 한다. 이번 여름도 그랬다.

어느 선배 부부와의 짧은 여행

백수 과로사 한다고 이리저리 바빠서 여름 휴가를 생각지도 못하다가 이들의 초대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갔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걷고 느지막하게 저녁도 먹고 술도 먹은 뒤였다. 당연히 그 근처의 호텔이나 콘도에 예약이 되어 있는 줄 알았더니 허걱, 러브호텔에서 잔다는 거였다. 러브호텔이라니… 거참 뭐랄까 싱숭생숭해지고 야릇하게 흥분되고 뭔가 불순한 것 같고 예순살 전후의 중늙은이 네명이 러브호텔에 들어간다니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은근히 호기심도 발동했다.

태연하게 그거 좋지, 어디 좋은 데 있느냐, 아니 어디 섹시한 데 아느냐고 물었더니 정해놓은 곳은 없고 이제부터 러브호텔이 수십개 몰려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 러브호텔 아이쇼핑을 하고 난 뒤 한 곳을 정해 들어간다는 거였다. 선택의 기준은 새로 지은 곳 우선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방마다 깔려 있어서 인터넷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던 대로 러브호텔은 뒤쪽으로 차고가 나 있어 길가에서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다. 러브호텔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우리들도 은근히 불륜의 냄새 같은 것을 피워볼까 싶었지만 의외로 아이들을 동반한 30대 부부가 심상하게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여섯 군데를 들락날락하며 선을 보다가 한 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딱 하나 남은 특실은 6만원, 준특실은 4만5천원이었다. 특실을 선배 부부에게 상납하고 우리는 준특실에 들었다.

선배는 지방대학의 교수인데 수업이 있는 요일엔 학교 근처의 러브호텔에서 묵는다고 했다. 콘도나 호텔에 비해 비용은 저렴하고 시설은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는 노트북만 달랑 들고 가서 연결만 하면 수업 준비 인터넷으로 하지, 방에 냉온수 음용시설이 있고, 컵라면 먹을 수 있지, 커다란 텔레비전 있지, 채널 부지기수지, 음악 들을 수 있지, 목욕시설 호텔보다 좋지, 방 넓지, 시설 대비 가격이 어떤 서비스 시설보다 좋다는 러브호텔 찬양자였다.

어느 날은 자신이 단골로 가는 러브호텔에 들어가 수업 준비를 하려고 인터넷을 켰더니 방금 자신의 제자가 묵었다 갔는지 자신의 과제물이 그대로 떠 있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평생 러브호텔에 비스무레한 곳에도 가보는 일 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보통의 관광지에 있는 호텔 같으면 적어도 10만원 이상은 지불해야 할 만한 숙소였다. 러브호텔에 대한 고정관념은 깨졌다. 앞으로 친구들과도 여행을 하면 러브호텔에 묵는 것이 여러모로 경제적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맞다. 호텔이란 잠도 자고 러브도 하고 회의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곳이지 러브하는 곳, 자는 곳, 부부가 가는 곳, 연인이 가는 곳, 관광객이 가는 곳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문사에 있을 때 일산인가에서 럭셔리한 러브호텔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학부모들이 관계요로에 청원서를 내고 거세게 시위할 때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요지는 이 세상에는 학부모의 입장만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부부가 아닌 성인의 싱글남녀는 어디 가서 자야 하나요, 일반적인 호텔은 너무 비싸고 여관은 너무 후지고 차가 있어야 교외의 한적한 곳으로 나갈 수 있는데 사랑도 돈 있는 사람만 하는 건가요, 값 싸고 시설 좋고 가기 쉬운 곳이 직장이나 집 근처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공간을 매춘 현장처럼 불쾌하게 취급하는 것은 정당한가요, 사랑이란 부부의 침실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건가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한겨레> 같은 곳에서 그런 문제제기를 해주어야 하는데도 러브호텔을 혐오시설쪽으로 몰아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거니 했지만 완전히 발상의 전환을 하기 어려웠고 아참 세상 따라잡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났다. .

이렇게 싼값을 받고도 호텔이 유지된다면 그럼 다른 호텔들은 너무 비싼 것 아닌가라고 했더니 선배는 호텔은 하루에 한 팀만 받을 수 있지만 러브호텔을 하루에 여러 팀을 투숙시킬 수 있으니까 수지가 맞는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러브의 수요는 많기도 하구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배 부부와 아침을 먹는데 선배의 부인이 말했다. 요즘 젊은애들은 참 좋겠지요? 연인들이 이용할 깨끗한 시설이 이렇게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요.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연인끼리 갈 곳도 없어서 주로 음침한 여관, 지저분한 시설에서 첫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물론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서 생전 처음 럭셔리한 호텔에서 첫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여관에서 나올 때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시설 때문이었을 거예요. 요즘 젊은이들은 호텔에 가서 사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목욕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내 아들에게도 일러주고 싶은…

부창부수랄가 선배처럼 그 부인도 신선했다. 아마도 딸 둘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딸들에게 언젠가 일어날 일이 음침하지 않고 깨끗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염려와 배려도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선배 부부의 이런 발상에 맞장구를 치면서 기분이 저절로 밝아졌다. 내 아들들에게도 이러저러한 시설이 있으니 그걸 이용하라고 일러주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그들은 이미 익숙하게 그런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러브호텔에 가봤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더니 그럼 러브호텔에 생전 처음 가봤단 말이에요 선배는 그렇다 치고 선배 남편도 처음 가봤답니까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후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거기 어디니 어떻게 가는 거니 하면서 가는 길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노골적으로 흥미를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널린 것이 러브호텔이란다, 아무 곳에나 가서 새로 생긴 곳에 묵으면 된단다 했더니 열심히 받아 적었다.

선배 부부와는 가을에 한번 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어떤 새로운 레퍼토리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려진다. 물론 이번에도 낯선 도시에 가서 러브호텔을 순례해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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