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한 유부녀의 파격적 변신을 보며 아슬아슬한 관능미를 떠올리다
결혼해 뉴욕에서 살다 얼마 전 귀국한 친구 C가 사무실에 놀러왔다. 그런데 잠시 동안 회사 전체가 술렁거릴 정도로 그녀의 옷차림은 파격적이었다. 청바지에 아슬아슬한 하얀색 코튼 톱을 입었는데, 등이 3분의 2 이상 드러나 있고 옆에서 보면 가슴이 슬쩍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런 베어룩(등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옷차림)을 소화하려면 당연히 ‘노브라’이어야만 한다. 누군가 소리쳤다. “와, 뉴욕에 여러 번 가봤지만 그곳에서도 저런 파격적인 차림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

패션 명사들이 우글거리는 파티라면 모를까 정말로 뉴요커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옷차림을 고집한다. 오죽하면 파리지엔느들 사이에서는 농담 삼아 매디슨 애비뉴의 젊은 여성들을 베이지족(les beiges)이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주로 베이지 팬츠에 베이지 스웨터, 그리고 베이지 크로커다일 백에 베이지 마놀로 블라릭 슈즈(로 유명해진 바로 그 구두)를 신기 때문이다.
C의 그런 파격적인 변화는 나로서는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예전에 내가 알던 C는 주로 포멀한 정장 차림을 즐겨 입었다. 그것도 동료들이 ‘학부모 룩’이라고 흉볼 정도로 위아래 한벌로 된 세트만 고집했다(자기만의 믹스 앤 매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세트’로 된 한벌 차림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게다가 보수적인 건 옷차림뿐만이 아니었다. 한 대학 학장의 딸로 알려진 C는 2년 전만 해도 ‘토요일 오후 호텔 커피숍에서의 선’이라는 걸 무려 106번이나 보았고 밤마다 ‘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올렸던 아이다. 또한 서른 즈음까지 키스 한번 해보지 않았다는 그녀는 ‘한때 은장도를 품고 다녔다’는 충격 고백으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C를 변화시킨 건 뉴욕 생활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였다. 아니 처녀성을 잃은 첫날밤이 그녀에게 해방이라는 최고의 결혼 선물을 선사한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은 결혼과 함께 구속되고 옷차림도 그만큼 점잖아지는데 ‘결혼 전 순결’을 종교처럼, 계급처럼 신봉하던 이 여자에게는 그 반대가 됐으니 확실히 축하할 만한 일이다. 예전에는 그 애랑 대화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짐짓 무관심한 포즈로 일관해왔는데, 이제는 그 대담한 유부녀랑 흉금 없는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옷차림이 변했다고 모든 금기에서 해방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형식이 변하면 내용도 변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아니 뭐, ‘다소 음란한 옷차림을 즐기는 여자가 실은 정조 관념이 투철하더라’도 나쁘지 않다. 그나마 역설의 재미가 있으니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알려진 아만다 할레치(직업은 모르겠다. 원래 뮤즈에게는 직업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런 말을 했다. “그저 하이힐만 신고 있다고 해서 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관능적인 여성은 이미 태어날 때 하이힐을 신고 있으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고양이 같은 여자들이 좋다. 숨겨둔 하이힐을 언제 신느냐?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택할 문제지만, 내 생각에는 기왕이면 결혼 전부터 신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유혹이 성사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더 아슬아슬할 테니까. 지금도 하이힐을 신으면 발목이 시큰한데 더 늙으면 곤란하지 않겠나?
김경 | 패션지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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