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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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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한국 진출?

등록 2009-03-27 17:00 수정 2020-05-03 04:25
〈CSI〉

〈CSI〉

쉿! 아직은 비밀이다. 할리우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메이저 영화사 관계자들이 한국 드라마 제작사와 긴밀하게 접촉 중이다. 용건은? 한국 배우와 제작진이 한국을 무대로 만든 드라마를 아시아 시장, 나아가 세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성사된다면, 할리우드가 제작·배급하고 한국이 아시아 시청자들의 입맛을 고려해 생산한 드라마를 구경할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러브콜을 받은 한국 쪽 인사는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제작 역량과 수준을 갖췄다고 평가한다니 우선 기분은 좋더라”고 했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큰 일본 쪽과 접촉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대형 제작사들의 전횡과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했단다. 수익 분배 구조 등 복잡한 문제가 많으니, 엄격하고 까다로운 파트너는 피하겠다는 심산일까?

일본 드라마 산업 전문가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김영덕 연구원은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일본은 우리처럼 해외 판매를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들거나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한류가 끝났다고들 하지만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무시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 ‘한류여, 다시 한번!’을 외치며 쏟아부은 제작비는, 그 제작사들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값비싼 수업료였을망정 헛돈은 아니었나 보다.

할리우드 제작사 쪽은 이런 ‘현지화’ 전략이 미국 드라마 산업의 황금기를 이어갈 또 다른 금맥이 되어주길 고대하는 것 같다. 지난 2000년 전세계적으로 남한 인구에 맞먹는 열혈 시청자 수를 자랑하는 드라마 〈CSI〉(사진)가 탄생하기 전까지, 미국 드라마는 고사 직전에 놓여 있었다. 시청자 수가 줄고 TV 광고 시장이 급격히 줄어든 까닭이다. 방송사에 드라마를 납품해봤자 제작비도 못 건지는 제작사들은 심각한 누적적자에 시달렸다.

〈CSI〉는 이들에게 미국 드라마가 개척할 신천지가 5대양 6대주에 널려 있다는 부푼 꿈을 심어줬다. 이후 등 크게 투자해 더 큰 시장을 노리는 드라마들이 주도해온 ‘미드의 전성시대’는, 그러나 과잉투자와 경제불황 등으로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현지화’는 할리우드가 생각해낸 위기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일 것이다.

물론 이번 일이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다. 성사된다 해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섣불리 흥분했다간 망신살만 뻗친다. 그저 금고가 바닥났는데 앵벌이 할 곳도 마땅찮은 국내 제작사들이 안정적인 시청률과 최소한의 제작비 보전에 골몰하며 ‘막장 드라마’를 양산하는 요즘, 뭐 좀 쌈박하고 미래지향적인 얘기 없을까 기웃거리다 ‘오프더레코드’로 전해드렸다. 할리우드 자본이 한국에 들어오는 게 국내 드라마 산업에 정말 득이 될지, 득이 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같은 개념 꽉 찬 얘기는 때가 되면 기자들이 성실한 취재와 친절한 기사로 어련히 알려드릴까. 그러니 이건 그냥, 오프더레코드다.

이미경 블로거 mad4tv.com

*이번 호부터 ‘오프더레코드’가 격주로 연재됩니다. 텔레비전에 중독된 언니들이 모인 팀블로그 ‘매드포티브이’(mad4tv.com) 필진들이 방송가에 떠도는 흥미진진한 뒷담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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