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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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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땅한테 기본소득을 받자

기본소득의 가장 큰 숙제인 재원 마련, 바람·토지 같은 공유재를 기반으로 ‘시민배당’ 하면 어떤가
등록 2014-07-31 14:57 수정 2020-05-03 04:27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 앞바다에 연구원이 개발한 ‘경사형 재킷’ 방식의 새로운 지지대 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2대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아가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공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 앞바다에 연구원이 개발한 ‘경사형 재킷’ 방식의 새로운 지지대 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2대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아가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공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재미있는 글을 쓴 것을 보았다. 풍력발전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인데, 제주 지역에서 해상풍력발전을 확대하고 그 수익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제주 지역 인터넷언론에 쓴 기고문에서 언급한 것인데,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알래스카는 석유에 대한 ‘시민배당’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현실정책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숙제 중 하나는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다.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자’는 것이 꿈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원을 어디선가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공유재(共有財)에 관한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바람과 같은 공유재에서 나오는 재원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얘기다.

이런 얘기가 현실이 된 곳도 있다. 주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을 재원으로 삼는다. 바람처럼 땅속에 있는 석유도 사실은 공유재다. 공동의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이기에 주민 모두가 지분을 가진다고 보고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의 4분의 1 이상을 ‘영구기금’(Permanent Fund)이라는 이름으로 적립하고 있다. 1976년 주헌법을 개정해서 이런 기금을 설치했다.

영구기금이라고 한 이유는 석유자원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석유가 고갈된 뒤 살아갈 세대를 위해 돈을 적립해놓겠다는 의미다. 영구기금의 운용수익으로 매년 주민들에게 배당금(Permanent Fund Dividend)을 지급하고 있다. 이 돈을 ‘기본소득’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배당금이다. 본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천연자원(석유)에서 나오는 수익이므로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배당한다는 개념이다.

이 돈의 액수는 기금 운용 상황에 따라 매년 변동한다. 5년간의 평균수익으로 계산해서 지급하는데, 가장 많이 지급한 2008년에는 1인당 2069달러를 줬다. 물론 이 금액이 주민들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주민이면 누구나 정당한 권리로 받는 돈이다. 주민배당, 시민배당인 것이다.

왜 일하지 않는데 돈을 주느냐? 공유재니까!

제주도의 바람과 알래스카의 석유는 모두 공유재다. 천연자원이고 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본래 공유재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공유재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시민에게 배당금으로 주면 어떨까? 이 배당금은 ‘왜 일하지 않는데도 돈을 주느냐’는 시비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돈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인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익을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하게 나눠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대표적인 공유재는 토지다. 토지의 사유에 대해서는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비판을 해왔다. 토지 소유가 소수에 집중되고 토지임대수익이 철저하게 사유화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회문제를 낳아왔다. 그래서 서양의 헨리 조지 같은 사람은 토지사유제를 비판하면서 강력한 세금(토지보유세)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생각은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형원, 이익, 박지원, 정약용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바로 토지제도였다. 지주에게 토지가 집중되고 토지 없는 농민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토지제도야말로 사회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 같은 사람은 고대 중국의 정전제(井田制)를 바탕으로 개인의 사적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모든 토지를 국유지 또는 공유지로 할 것을 주장했다. 요즘에 이런 주장을 하면 또 ‘빨갱이’로 몰았을 것이다. 사실 토지가 개인의 독점적 소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매우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생각이다.

그리고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그 토지에서 일하지 않는 개인이 가져간다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소유권을 자연권으로 주장한 존 로크조차 이런 얘기를 했다. 그는 소유권을 옹호했지만,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타인에게 필요한 만큼을 남기면서 자기 소유를 챙겨야 하고, 너무 욕심을 부려서 쓰지 못하고 버릴 만큼 소유하려 해선 안 되며, 자기 힘으로 직접 노동해서 얻은 것만큼만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토지 소유의 편중 현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신의 노동과 전혀 무관하게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존 로크에 따르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공유재 파괴하는 기업에서 수익 환수도 함께

현재 우리나라는 상위 1%가 전체 과세 대상 토지의 45%를 소유하고 상위 5%가 토지의 59%를 소유할 정도로 극심한 토지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반복된 투기와 개발사업으로 인해 토지가격은 엄청나게 뛰었다. 그래서 귀농한 농민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농지를 취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농사짓지 않는 기득권 세력은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 농지를 축적하고 있다. 헌법에 존재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깨진 지 오래다.

본래 공유재였던 토지를 다시 공유재로 돌려야 한다. 소유권 자체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면,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은 환수하고 그것을 시민에게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바람, 토지 외에 다른 공유재도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연환경은 모두의 것이다. 그런데 환경을 파괴하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기업들은 ‘환경’이라는 공유재를 파괴하고 있다. 이런 공유재 파괴 행위로 얻는 수익도 환수해야 한다. 이 돈은 현세대에게 배당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복원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재와 그것에 기반한 시민배당이라는 생각은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특히 모든 것을 사유화(私有化)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절실한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좀더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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