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입만 열면 ‘60년 전통’을 강조한다. 1월14일 비대위 첫 회의에서 “민주당의 60년 자랑스러운 역사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당 노선을 얘기할 때(“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은 60년 전통 민주당의 기본”)나, 각오를 다질 때(“다시 태어나는 민주당이 돼서 60년 전통의 야당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도 물론이다. 계파 갈등만 드러낸 2월1~2일 당 워크숍에 대해 “60년 전통 야당의 진면목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60년 전통이란 명분이 있다. 아무리 망해도 문패가 있다”며 안철수 전 후보의 입당을 압박할 때도 썼다.
60년 전통? 김현 대변인을 통해 문 위원장의 답변을 들어봤다. “민주당의 뿌리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1955년 창당된 민주당에 들어가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때를 ‘60년 전통’의 기점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당사(黨史)의 시작을 사람에게서 찾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굴곡의 현대사를 거쳐 정당들이 여야를 바꿔가며 이합집산한 탓도 있지만, 당의 기본을 ‘김대중 정신’에서 찾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 위원장은 2월21일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이사장 이해동 목사) 총회에서 “민주당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민주주의·민생·평화이고,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이다. 요새 민주당의 한발 한발은 전부 김대중 정신에 의한 것이고, 그 길로 가는 것만이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누리집 ‘당 발자취’에는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해 만든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부터 소개돼 있지만, 60년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세력이 규합한 민주당이 시작이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야당은 신민당이다. 연이은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야당은 1987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으로 분열했다.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새로운 지형이 형성된 뒤 야당의 맥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지다가, 2003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졌다.
민주통합당 의원들도 헷갈린다는 이후 역사를 최대한 요약하면 이렇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탈당파,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파가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든다. 대선 패배 뒤 2008년 총선이 닥치자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쳐 통합민주당(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이 된다. 총선 뒤 ‘통합’을 떼고 민주당으로 개명한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시민통합당과 합쳐 민주통합당이 된다. 약칭이 민주당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요즘 모습을 보면 ‘60년 전통’이란 말이 아깝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 한 것이라고는 ‘5월4일 정기 전당대회 개최’라는 결정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최 시기와 방식을 둘러싸고 친노·주류와 비노·비주류가 대놓고 으르렁댄 것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의원과 시·도당 위원장을 다시 뽑는 과정에서 계파 간 사활을 건 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 혈투에는 김대중도 없고, 노무현도 없다. “유산과 명성을 무기로 엉터리 상품을 만드는 무능한 상속자”(김병준 전 부총리)들만 존재할 뿐이다.
“영국 자유당이 몰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미 10년 이상을 허비했다. 민주당이 정치적 독과점 구조에 편승한 기득권 정당으로 스스로 개혁의 한계를 보이면 대체 세력의 등장은 불가피해 보인다.”(강원택 서울대 교수) 1832년 창당한 영국 자유당은 보수당과 양당 체제를 구축했지만, 1886년 내부 분열로 당세가 기울다가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읽어낸 노동당에 밀려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는 2월27일 ‘민주통합당의 18대 대선 패배, 100년 정당의 길을 모색한다’는 제목의 토론회를 연다. 100년 정당? 60년 전통 민주당의 운명은 60여 일 남은 전당대회 전에 판가름 날 수도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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