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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끈해야 하는지 알랑가 몰라

싸이 신곡 <젠틀맨>을 둘러싼 설왕설래… ‘도서관에서 춤춰도 된다는 거냐’는 서울시의원, ‘주차금지 시설물 발로 차는 게 부정적’이라는 KBS, ‘창조경제를 보여준다’는 대통령
등록 2013-04-25 21:51 수정 2020-05-03 04:27

솔직히 음악, 잘 모른다. 싸이의 음악과 퍼포먼스가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뤘는지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기왕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그런데 ‘싸이’라는 문화 현상을 둘러싼 정치권의 설왕설래는 가관이다.
우선 ‘꼰대들’이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신곡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민주통합당 소속인 정세환 서울시의원은 4월17일 열린 임시회의에서 “싸이가 서울도서관에서 춤을 췄는데 뮤직비디오를 통해 도서관에서 뛰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니냐”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몰아세웠다. 정 의원은 옛 서울시 청사를 개조해 만든 서울도서관에서 SBS 예능 프로그램 촬영이 이뤄진 점도 문제 삼았다. “200명 가까이 (서울도서관에) 몰려가서 뛰고 까불고 하지 않았느냐. 을 통해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이미 보여준 것”이라는 게 그의 ‘격정 토로’였다. 박 시장은 “과 싸이의 뮤직비디오 모두 도서관 휴관일을 골라 찍었다”고 답했다.

가수 싸이가 지난 4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연 단독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가수 싸이가 지난 4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연 단독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뮤직비디오에 대해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린 KBS는 더 황당하다. 어묵을 입에 물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가인의 표정이 너무 야했다든지 하는 이유 따위를 내세웠다면 오히려 그러려니 했겠다. 뮤직비디오 초반에 등장하는, 싸이가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차는 행위가 “대중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KBS의 입장이다. 아니, 폭파와 총격전 장면이 난무하는 자사의 드라마 는 어쩌고?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가사에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하는지’라는 대목이 ‘알랑가 몰라/ 왜 박근혜여야 하는지’로 들린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KBS는 방송 불가 결정을 내린 걸까? 그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른 한편에선 싸이의 성공사례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싸이를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소개하는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다. 지난 4월18일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한 만찬에서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와 아이패드도 융합으로 성공한 사례이고, 가수 싸이도 그렇다”라고 했다. 같은 날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업무보고에선 “가수 싸이의 이라는 뮤직비디오가 발표 80시간 만에 1억 뷰라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시건방춤’에 대해 최초 안무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렇게 남의 창의력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적인 국정 과제이지만 청와대나 여당 내부에서도 창조경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정책 방향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업에 얼마나 예산을 투입하게 될지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싸이의 사례를 들어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법은 매우 간단하다. ‘싸이가 창조경제다’라고 말하는 대신, ‘창조경제는 ○○○다’라고 설명하면 된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언론도 연일 이런 식의 보도를 쏟아낸다. 는 4월19일 ‘싸이에게서 창조경제를 본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김대호 인하대 교수가 쓴 이 칼럼은 “싸이의 음악은 창조경제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ICT를 바탕으로 도약을 이루는 것이며, 기존 상품과 서비스에 상상력과 창의성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패러다임”이라고 평가했다. 도 사설에서 “싸이 같은 도전자들이 산업의 각 영역에서 쏟아져나오도록 기업가정신을 북돋워주고 창업을 지원하는 사회가 되어야 창조경제의 심장이 힘차게 뛸 수 있다”고 썼다. 그러니까, 알겠는데요. 이제 창조경제가 뭔지 말해달라고요. 알랑가 몰라, 창조경제?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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