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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 책임자들의 흑역사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다 보니 사사로이 권력을 휘둘렀다. 이승만 정부는 따로 경호실을 두지 않고 경무대(현재의 청와대) 내에 경찰서를 설치해 경호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경무대 경찰서장이 곧 대통령 경호 책임자였던 셈이다. 당시 곽영주 서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고,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4·19 당시 경무대 앞까지 진출한 시위대를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로 지목돼 ‘정치깡패’ 이정재·임화수 등과 함께 처형된다.
청와대 경호실을 창설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접수한 박정희는 경호실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쿠데타 당일 새벽, 국무총리 장면을 검거하려고 무장한 채 반도호텔 808호를 습격한 인물이 박종규·차지철이다. 박정희 정권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눠 경호실장을 지낸 두 사람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뒤틀린 충성심과 안하무인의 오만으로 무수한 활극을 연출한다.
박종규는 박정희가 엉뚱한 방향으로 골프공을 날리면 자신도 일부러 그쪽으로 공을 쳐 함께 움직였다고 한다. 주군에 대한 ‘불경’을 저질렀다고 판단하면 자신보다 연장자인 장관들을 마구 구타했다. 김형욱·이후락 등 경쟁자들을 견제하려고 청와대 내부의 전화를 도청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의 별명은 ‘피스톨 박’이었다. 훗날 자신이 모시던 주군에 의해 제거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은 끝에 권총을 들이대며 “당신 배에는 철판을 깔았느냐. 총알이 안 들어가느냐”라고 협박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74년 영부인 육영수 피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박종규의 뒤를 이어 경호실장이 된 차지철은 한발 더 나아갔다.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이 10·26 수사 과정에서 남긴 증언에 따르면, 차지철은 함께 운동을 한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 샤워장에서 빨리 나오지 않자 “이 늙은이가 무엇을 우물우물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호통친 일도 있다고 한다. 1977년 이후 차지철은 매주 금요일 오후 경복궁 연병장에서 고위 공직자들과 재벌 총수들을 모아놓고 국기하강식을 벌이며 사열을 했다. 그의 월권과 전횡은 10·26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저서 에서 이렇게 썼다. “차지철은 박종규가 해오던 경호 방식을 더욱 보강해 보위 차원으로 경호 행위를 끌어올렸다. 이것은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그 어떤 국가적 절차보다 상위에 위치한다는 것을 뜻했다. 경호실 차장 산하에 행정차장보와 작전차장보를 설치해 현역 장성을 앉혔다. 경호실 자체가 엄청나게 격상된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군부정권의 종식과 함께 위상이 달라져왔다. 김영삼 정부는 처음으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 경호실장을 도입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차관급 실장의 관행이 굳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호실을 경호처로 축소시켜 대통령실(비서실) 산하로 편입시켰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군이 직접 최고지도자의 경호를 담당하는 건 아프리카·중동의 몇몇 국가나 북한 정도가 꼽힌다. 영국·일본·프랑스도 경찰이 국가원수의 경호를 맡는다. 우리와 비슷한 조직을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그 수장은 차관보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역주행하고 있다. 경호처를 다시 경호실로 격상시켜 장관급 실장을 두기로 했다. 양친을 모두 흉탄에 잃었던 불우한 가족사나 유세 현장에서 커터칼로 큰 상처를 입었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선거 과정에서 “이제 그만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던 박 당선인이다. 이번 청와대 조직 개편이나 2인자를 용납하지 않고 측근들을 경쟁시키는 ‘디바이드 앤드 룰’(분할통치)식의 용인술을 보면 정작 부친에게서 자유롭지 않은 건 박 당선인 본인인 것 같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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