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로 불리는 국가위기관리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에서 최근 ‘사용금지령’이 내려진 용어가 있다. 지난 3월7일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브리핑룸을 돌아다니며 기자들에게 일일이 부탁했다.
“제목이나 기사에 ‘PP’라고 쓰지 말아달라.” PP는 ‘프레지던트 박’(President Park)의 줄임말이다. 3월8일에는 춘추관 관계자들이 브리핑룸을 돌며 “‘지하벙커’라는 말 대신 ‘국가위기관리 상황실’이란 말을 써달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 청와대 국가위기관리 상황실을 찾은 날이다.
PP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는 데는 “(대통령이) 영문 약자로 쓰는 걸 싫어한다”는 이유가 붙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YS, DJ, MB 등 이름의 영문 이니셜 약칭으로 불린 것과 PP는 다르다. PP에는 권위주의 분위기가 풍긴다. 원래 PP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뜻했다고 한다. 대놓고 사용한 호칭이 아니라 은어처럼 썼다. 박 대통령을 지칭한 PP 역시 지난 대선 때 그의 참모들이 만든 내부 전략보고서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VIP’ ‘BH’처럼 비공식 문서에서 대통령을 칭하는 은어로 말이다.
굳이 싫다는 약칭을 쓸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 약칭인 ‘GH’는 발음이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MH’ 대신 대부분 ‘노통’이라 불렸다. 대선 때 내놓은 한글 이름 초성을 딴 ‘ㅂㄱㅎ’도 입에 붙지 않긴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카카오톡 본사를 방문해 “내 이름을 줄이면 GH, 어떤 사람이 ‘그레이트 하모니’(Great Harmony·대화합)로 붙여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초반 정국 운영을 보면 GH는 의미도 안 맞는 것 같다. PP나 GH나, ‘멀티비리’ ‘2메가’ 등 패러디를 양산했던 MB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지하, 그리고 벙커라니. 국민의 불안감이 필요 이상으로 가중될 것 같은 용어다. 청와대 ‘지하벙커’는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전시 대피시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을지훈련, 민방위훈련 때나 활용하면서 벽에 이끼가 끼고 물이 샐 정도로 방치됐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때 시설을 보수했고, 노무현 정부 때 안보뿐 아니라 자연 재난까지 아우르는 위기관리 상황실로 시설과 기능을 강화했다. ‘지하벙커’로 널리 알려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까지 이곳에서 주재하는 등 툭하면 지하벙커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언론에 ‘지하벙커’로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언론이 이 용어를 쓰는 데는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담겨 있지만, 짧은데다 흥미를 돋우는 말을 선호하는 탓도 큰 것 같다.
언론들이 청와대의 요청대로 PP나 지하벙커란 용어를 쓰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부는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뜻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쓰는 용어는 뜻과 기능을 정확히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조차 입에 담기를 두려워했다. ‘5·16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다. “국무위원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직무 수행에 적절치 않다”(유정복 행정안전부),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황교안 법무부), “정치적 해석이 다양한 사건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정치적 사안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김병관 국방부), “일일이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서승환 국토해양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류길재 통일부).
급기야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돼 있다”(조윤선 여성부)는 무식한 답변까지 나왔다.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하나, 그 문제에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달라”(서남수 교육부)는 답변은 차라리 솔직하다.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 혹시 박 대통령을 ‘대통령님 각하’라고 부르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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