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한 외국 학자의 책을 보면, 남을 기쁘게 하는 ‘타희력’을 발휘하는 게 결국 자신의 경쟁력이 되고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쓰여 있다. 정부 역시 국민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드리면 그것이 정부의 더 큰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성공하는 정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특허청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지난 3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기쁘게 만들어드리는 것”이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강조하면서 ‘타희력’을 언급했다. 타희력(他喜力)은 일본의 “이미지 트레이닝 연구 및 코칭의 개척자이자 일인자로 불린다”(네이버 책 정보)는 니시다 후미오가 쓴 이란 책에 등장하는 단어다. 니시다는 “젊은 시절부터 긍정적인 자기암시법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대기업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가 파격적으로 20대에 지점장이 되었다”고 한다. ‘선한 의도’를 늘 강조하는 박 대통령에겐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법한 표현과 이력인 셈이다.
실용서 선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징이었는데, 2009년엔 청와대 직원들에게 를 선물해 화제가 됐었다. 2007년 대선 땐 가장 감명 깊은 책이 법정 스님의 라고 밝혔다가,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및 BBK 의혹에 휩싸여 누리꾼들의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마다 관례적으로 공개하던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휴식은 휴식이라는 차원에서 푹 쉴 예정”이라는 이유였다. ‘보안 제일주의’ 박 대통령은 다가올 첫 휴가 때 이 관례를 지킬까? 그 옛날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일 때 대변인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근혜 의원의 서재는 날 감동시키지 못했다.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받은 책들만 주로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써서 책으로도 출간된 일기나 트위터 등을 보면, 그의 독서량은 전 전 의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서재와는 무관해 보인다(대법원이 공식 인증한 ‘표절 작가 전여옥’의 서재는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박 대통령의 독서는 특히, 은거하던 18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독서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특히 세상과 격리된 두 차례 수감 생활 동안 수백 권을 읽었다고 한다.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묘한 유사점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너무 바빠 원하는 대로 책을 읽지 못하자 “감옥에 한번 더 가야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시기에 “내 삶의 등대”였다고 표현한 펑유란의 를 비롯해 동양철학, 불경, 성경 등 철학·사상 고전을 탐독했다. 부모의 연이은 갑작스러운 죽음과 예상도 못한 채 추락해버린 삶, 인간의 배신 등을 겪으며 어지러웠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리는 길을 고전에서 찾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 조자룡이었다고 할 정도로 초등학교 때부터 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역사물 선호 취향은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2010년엔 트위터를 통해 와 를 추천한 적도 있다. 정치가 현실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고 누적된 역사는 현실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인다운 취향으로 보인다. 책을 주변에 추천하기로 치면, 다방면의 책을 두루 섭렵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르긴 어려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추천한 책만 수십 권에 이르렀고, 청와대 내 부통신망인 ‘이지원’에 서평 코너를 꾸려 독서를 권장했다. 사후엔 처럼 그가 탐독하거나 추천한 도서를 소개한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대통령 재직 때인 2003년엔 유명인사가 책을 추천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훈의 를 추천한 적도 있다. 김구의 를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꼽았고,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어 참모들에게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조혜정 기자 한겨레 정치부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