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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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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의 고독과 독서

박근혜 대통령, 은거하던 시기에 책 많이 읽어… “푹 쉬겠다”며 MB에서 중단된 대통령 여름휴가 관례 ‘도서 목록’ 부활할까
등록 2013-04-07 20:29 수정 2020-05-03 04:27

“최근 출간된 한 외국 학자의 책을 보면, 남을 기쁘게 하는 ‘타희력’을 발휘하는 게 결국 자신의 경쟁력이 되고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쓰여 있다. 정부 역시 국민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드리면 그것이 정부의 더 큰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성공하는 정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특허청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지난 3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기쁘게 만들어드리는 것”이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강조하면서 ‘타희력’을 언급했다. 타희력(他喜力)은 일본의 “이미지 트레이닝 연구 및 코칭의 개척자이자 일인자로 불린다”(네이버 책 정보)는 니시다 후미오가 쓴 이란 책에 등장하는 단어다. 니시다는 “젊은 시절부터 긍정적인 자기암시법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대기업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가 파격적으로 20대에 지점장이 되었다”고 한다. ‘선한 의도’를 늘 강조하는 박 대통령에겐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법한 표현과 이력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책을 읽고 있다.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책을 읽고 있다.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 제공

실용서 선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징이었는데, 2009년엔 청와대 직원들에게 를 선물해 화제가 됐었다. 2007년 대선 땐 가장 감명 깊은 책이 법정 스님의 라고 밝혔다가,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및 BBK 의혹에 휩싸여 누리꾼들의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마다 관례적으로 공개하던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휴식은 휴식이라는 차원에서 푹 쉴 예정”이라는 이유였다. ‘보안 제일주의’ 박 대통령은 다가올 첫 휴가 때 이 관례를 지킬까? 그 옛날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일 때 대변인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근혜 의원의 서재는 날 감동시키지 못했다.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받은 책들만 주로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써서 책으로도 출간된 일기나 트위터 등을 보면, 그의 독서량은 전 전 의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서재와는 무관해 보인다(대법원이 공식 인증한 ‘표절 작가 전여옥’의 서재는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박 대통령의 독서는 특히, 은거하던 18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독서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특히 세상과 격리된 두 차례 수감 생활 동안 수백 권을 읽었다고 한다.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묘한 유사점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너무 바빠 원하는 대로 책을 읽지 못하자 “감옥에 한번 더 가야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시기에 “내 삶의 등대”였다고 표현한 펑유란의 를 비롯해 동양철학, 불경, 성경 등 철학·사상 고전을 탐독했다. 부모의 연이은 갑작스러운 죽음과 예상도 못한 채 추락해버린 삶, 인간의 배신 등을 겪으며 어지러웠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리는 길을 고전에서 찾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 조자룡이었다고 할 정도로 초등학교 때부터 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역사물 선호 취향은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2010년엔 트위터를 통해 와 를 추천한 적도 있다. 정치가 현실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고 누적된 역사는 현실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인다운 취향으로 보인다. 책을 주변에 추천하기로 치면, 다방면의 책을 두루 섭렵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르긴 어려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추천한 책만 수십 권에 이르렀고, 청와대 내 부통신망인 ‘이지원’에 서평 코너를 꾸려 독서를 권장했다. 사후엔 처럼 그가 탐독하거나 추천한 도서를 소개한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대통령 재직 때인 2003년엔 유명인사가 책을 추천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훈의 를 추천한 적도 있다. 김구의 를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꼽았고,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어 참모들에게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조혜정 기자 한겨레 정치부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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