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가 늘 성공으로 끝난 건 아니다. 1993년 12월3일치 는 이렇게 전한다. “황낙주 국회부의장은 밤 11시20분께부터 민자당 의원과 보좌관들에 둘러싸여 1차 진입을 시도해 11시35분께 3m가량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으나 민주당 의원들의 완강한 저지로 한마디 말도 못한 채 5분 만에 밖으로 다시 밀려나갔다. 황 부의장은 몇 차례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여야 몸싸움으로 허리를 심하게 다쳐 3일 새벽 병원에 입원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김영삼 정권의 첫 날치기 시도는 ‘본회의 날치기 실패 1호’로 기록됐다. 언론들은 야당 의원들이 황 부의장의 목을 잡아당겼다고 기록했으나, 당시 국회를 출입했던 왕고참 선배의 전언은 좀 다르다. 추후 밝혀진 ‘야사’인데, 이협 민주당 의원이 황 부의장의 ‘급소’를 움켜쥐는 바람에 날치기 시도 미수에 그쳤다는 거다.
이날 민자당의 날치기 돕기를 거부했던 이만섭 국회의장이 2001년 쓴 회고록 제목은 였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 날치기는 흔했고, 실패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가장 ‘완벽한’ 날치기는 1996년 12월26일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가 아닐까 싶다. “신한국당은 26일 새벽 6시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안 등 모두 11개 법안을 7분 만에 전격 날치기 통과시켰다. …대다수 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새벽 가든호텔, 팔레스호텔, 나이아가라호텔, 리버파크호텔 등 시내 4곳에 대기하던 관광버스를 이용해 국회에 도착했다.”( 1996년 12월27일치) 철통 보안과 연막전술로 야당 의원들을 완벽하게 따돌렸다.
여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수단인 날치기가 어느새 사라졌다. 17대 국회에선 현재 민주당이 다수 여당, 18대 국회에선 새누리당이 다수 여당이었다. 여야가 바뀌면서 날치기 ‘공수’를 교대하다보니, 싸우는 의원들은 명분이 없고 지켜보는 국민은 피곤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지난해 5월 18대 마지막 국회에서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불린 이 법은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 외에는 직권상정을 못하게 했다. 특히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의 5분의 3(180명)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상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19대 국회 다수당(현재 154명)이 된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데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국회 선진화법 통과 이후 여야 간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직까지는 대세인 듯하다. 박근혜 정부 초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52일 동안 국회에서 표류할 때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선진화법 개정론을 거론했지만, 당내에서도 정치력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일에 애꿎은 법만 탓한다고 비판받았다.
경남도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6월11일 야권도의원들의 육탄 저지를 뚫고 진주의료원 존립 근거를 삭제한 조례안을 16분 만에 날치기했다. 강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회는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지방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원내에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회의 자율성인가? ‘지방의회 선진화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소용없다. 경남도의회 도의원 58명(교육의원 5명 포함) 가운데 40명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방의회를 싹쓸이하다시피한지 오래이고, 변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방의회는 무서울 게 없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