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처음 출입하던 초짜 기자 시절 가장 힘든 건 사람들 얼굴을 익히는 일이었다. 국회의원은 왜 저렇게 많은지, 당시였다면 의원정수 축소론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다. 하기야 기자로서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잘 모르는 대상을 취재해야 할 때다. 정치팀 소속이니 대개 취재원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정치권 밖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미리 알아두지 않으면 인사를 나눈 뒤부터 바로 말문이 막히는 게 당연하다. 관심이 없으니 이해가 없고, 이해가 없으니 의견이 없고, 의견이 없으니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올 턱이 있나.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및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파문과 관련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최근 발언들을 접하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안 의원은 지난 6월25일 미국발 악재 등으로 코스피지수 1800선이 무너진 상황 등을 언급하며 “경제가 굉장히 위기인 상황이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는 정쟁에 휩싸여도 되는 것인가,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다. “현재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민생이고 경제고 국제 정세”라는 말도 했다. 전형적인 양비론이었다. 관심과 이해, 의견과 질문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정쟁으로 얼룩진 여야 정당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중도적’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포장되던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까. 앞서 안 의원의 측근으로 잘 알려진 한 인사를 사석에서 만났다. 그는 “요즘 여의도를 보면 정치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정파의 유불리에 의해 움직이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대화록 유출은 양비론으로 뭉갤 일이 아니라고,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올해 ‘여의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래 ‘정치인 안철수’의 언행이 대체로 그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정부조직법 논란이 일자 그는 “어느 한쪽 입장이 100% 옳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5·18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선 “지난 대선 출마 이후 끊임없이 어느 한편에 설 것을 요구받았지만 결코 편가르기 정치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가 비교적 분명하게 ‘옳고 그름의 논법’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었다. 지난 정부의 ‘민간인 사찰’ 파문에 대해선 “민주주의에 반하는 공권력 남용의 최악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자신도 사찰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였다. 6월24일 국회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관계자들을 면담한 자리에선 지난 대선 때 불거졌던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보도를 언급하며 “불공정 보도의 백미였다”고 했다. 물론 당시의 논문 표절 보도는 악의적이었다. 하지만 전·현 정권에서 이뤄진 불공정·왜곡 보도가 어디 그뿐이었는가. 혹시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일까.
이틀 뒤인 6월27일 안 의원이 다시 입장을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가 대선 이전 시점에 이미 대화록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다시 말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댓글 조작에 그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후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의 이익이 국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대선 전 대화록을 입수한 정황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번 국정원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이 ‘안철수식 새정치’는 아닐 터이니.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