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면 초선, 두 번 당선되면 재선, 세 번 당선되면 3선 의원이다. 국민은 별 관심 없지만, 의원들끼리는 3선도 각각 다르다. 내리 3선이냐 건너뛴 3선이냐, 지역구만 세 번이냐 비례 포함이냐 등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조경태(45) 민주당 의원은 17~19대 내리 3선에, 지역구(부산 사하을) 의원이다. 젊지만, 꽤 고참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취약한 부산이다. 그가 불모지에 화려한 꽃을 피운 데 걸맞은 대우를 기대한다면, 그럴 수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각종 민주당 행사에서 조 의원은 의전을 무척 따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난감한 게 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소속 의원은 조 의원 말고 한 명 또 있다. 문재인 의원이다. 대선 후보와 3선 의원, 누가 먼저일까? 조경태 의원은 본인이 먼저라고 여긴다. 문 의원이 ‘초선’이라서다. 올 들어 부산의 민주당 사람들은 행사 때마다 의전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한다.
조 의원은 경남고등학교를 졸업(1986년)했다. 문 의원(1971년 졸)의 후배다. 부산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그의 대학 시절을 기억하는 한 인사는 “운동권은 아니었는데 그때부터 정치에 뜻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 의원은 대학 3학년이던 1988년 총선 때 부산 동구에 출마한 노무현 당시 후보에게 가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한다.
그 뒤 조 의원은 학업을 진행하는 한편, 15대(1996년·사하갑), 16대(2000년·사하을) 총선에 각각 통합민주당과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거푸 고배를 마셨다. 당선자에 40~50%포인트의 큰 표차로 뒤처진 2위였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2004년) 총선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한나라당 현역 의원이 탈당 뒤 무소속으로 나오면서 보수층이 분열했다. 조 의원은 2.15%포인트(약 2천 표) 차로 신승했다. 18대(2008년) 총선에선 친박연대 후보가 9.81%를 득표한 가운데, 조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를 약 3%포인트 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총선은 과반(58.19%)으로 가뿐한 승리를 거뒀다.
그는 지역 관리를 잘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조경태는 지역구민을 업고 다닌다더라’는, 새누리당도 인정하는 소문도 있다. 다만 전국 인지도는 그에 못 미친다. 지난 5월 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한 조 의원은 2위 최고위원에 뽑혔다. 현장에선 진작부터 그의 ‘돌풍’이 감지됐는데, 이유가 새삼스럽다. “부산에 3선 의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호남 대의원이 많다. 조경태 떨어지면 호남당 소리 들을까봐 찍는다더라.”
2011년 이후 조 의원은 스스로를 ‘당 대표감’ ‘대통령감’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듣는 쪽이 어이없어해도 그는 진지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맨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은퇴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빈 깡통”이라며 깎아내렸다. 170cm에 58kg의 마른 체형인 그는, “국회의원은 살찔 겨를이 없다”며 몸집 있는 남녀 의원들을 비하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지난 7월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실종 등의 책임을 물어 문재인 의원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최근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옹호할 목적으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여야 의원들은 빨리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해서 매카시즘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그에 대해, “간판만 민주당이고 하는 짓은 새누리당보다 더하다. 그 당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갈 순 있을까? 부산 지역의 한 민주당 인사는 고개를 젓는다. “애초에 조경태가 이쪽에 온 이유는, 저쪽이 부산에선 아무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