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있으니까 왔지.”
2008년 2월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 뒤 곧장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향했다. 귀향한 대통령을 보려고 봉하마을에 연일 사람들이 몰렸다. 하루에도 수천 명, 많을 때는 1만 명이 찾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을 만나려고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진풍경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기도 했다. 비서진들은 서로 다른 지역, 다른 나이의 사람들이 대통령을 찾는 현상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해보려 했지만 이내 부질없는 일임을 알았다. 방문객 중 한 명을 붙잡고 왜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그저 봉하에 오면 그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 뒤다.
풀썰매 타는 게 재미났던 할아버지
(부키 펴냄)는 낙향한 전직 대통령의 일상과 퇴임 뒤 그가 꿈꾸었던 일들을 엮은 책이다. 노 전 대통령이 쓴 글과 비서진들이 작성한 일기 32편 등을 모아 정리했다. 봉하마을에서의 일상을 추억하는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쏟아진, 그를 추모하거나 회고하는 글 이외에 ‘따뜻한 봄날’ 같던 봉하에서의 나날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서관들은 국민 속으로 뛰어 들어간 대통령의 모습을 정리하는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도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전직 비서진들이 1~2주에 한 번씩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한 ‘봉하일기’의 시작이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로 내려온 지 보름째인 마을 주민들과 첫 상견례를 하는 날부터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봉하 오리쌀 이야기까지 227일간의 기록을 정리했다.
책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오 혹은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어느 마음 따뜻한 농군에 대한 주변인들의 추억을 담은 모음집이기도 하다. 비서진들이 곁에서 보고 쓴 봉하에서의 일상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전직 대통령’이란 이름표를 뗀 노 전 대통령은 아침 일찍 동네 마실에 나서고, 마을회관에 나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화포천 둑길을 달리고, 휴가를 가서는 풀썰매를 타는 데 재미가 좋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자꾸만 더 타고 싶다고 말하는, 작은 시골마을의 평범한 주민이었다.
이렇게, 평온하고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 고향에 내려왔지만 사람들이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3주 만에 만난 대통령은 얼굴이 많이 탔습니다. 이유인즉슨 하루 한두 시간 가까이 수백 명의 방문객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는데, 세심한 대통령이 역광이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며 해를 정면으로 보고 포즈를 취하다 보니 그리 탔다는 것입니다.”(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노 전 대통령은 마을을 찾은 손님들과 때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2002년 대선 후보로 나서며 ‘낮은 사람’을 자임했던 그는 일찍이 99%의 민중이 1%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걸 예측이라도 한 걸까. 고등학생들이 봉화산 기슭에 찾아온 때다. ‘가장 좋았던 일’ ‘가장 아쉬웠던 일’과 같은 평범한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대답을 망설였다. 그는 ‘가장’이란 단어를 못내 마음에 걸려 하며 “참 대답하기 곤란하다”며 나름의 문제 제기를 했다. “우리는 1등과 승자만 주목하지요. 좋은 일과 나쁜 일조차 가장 좋았던 일과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99%는 가장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가장이란 없습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대화에 적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서 ‘노공이산’이라는 필명을 썼다. ‘노짱’이란 별명 대신 ‘노공’이란 별명을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은 노공이산의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자주 언급해왔습니다.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거창한 구호보다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청와대를 방문한 신영복 선생이 직접 써서 대통령에게 선물한 휘호도 우공이산이었습니다. 이처럼 우공이산은 대통령이 평소 마음에 담고 있던 고사성어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우공이산이란 필명을 선점한 이가 있어 ‘노공이산’(盧公移山)으로 방향을 튼 겁니다.”
더디지만 한 걸음씩, 다시 봉하일기
2008년 11월 검찰 수사 등 노 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압박이 본격화하기 시작하자 봉하일기는 16편에서 멈췄다. 는 자연인 노무현의 퇴임 뒤 소박한 일상과 꿈을 곱게 갈무리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기에,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모진 상황이나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헛헛한 기운의 봉하마을 모습을 굳이 담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는 읽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셨다. 끊으려고 해보기도 하고 줄이려고도 해서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고 비서들에게 맡겨놨다. 비서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담배 한 대 주게’ 그러면 재떨이와 담배 한 개, 라이터를 드렸다. 서거하고도 꽤 오랫동안 환청 같은 게 들렸다. 대통령이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인터폰으로 ‘경수씨, 담배 한 대 주게’라고 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인들은 황망한 당시 상황에 슬픔을 다 삭이지 못한 탓인지 아직도 종종 느닷없이 왈칵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단다.
그러나 이제, 슬픔을 거두고 다시 봉하일기를 깨우려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에 심어놓은 씨앗은 그가 떠난 뒤에도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랐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을 중심으로 친환경 농사도 계속되고 있고 노무현재단, 봉하재단, 김해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름다운 봉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도 더디지만 한 걸음씩 발을 떼고 있다. 그러니, 그곳에 가면 여전히 우리는 노무현을 만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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