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25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채집한 붉은등우단털파리. 등에 붉은색 점이 보인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와 ‘팅커벨’(동양하루살이)과 같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도 시민들이 불편하면 없앨 수 있는 조례안(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2025년 3월7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조례안은 집행기관인 서울시로 이송됐다. 서울시는 조례안을 바탕으로 방제 지침을 만들어 자치구에 전달할 계획이다.
애초 조례안은 2024년 8월 윤영희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발의했다. 당시 조례안이 입법예고되자 환경단체와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폐기를 요구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회 의원들도 반대해 상정되지 못했다. 한겨레21도 그해 7월 ‘착한 러브버그 없애려다 ‘더 큰 놈’ 온다’(제1521호) 기사를 통해 인간의 활동이 곤충 대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제2, 제3의 곤충 대발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게 넘어가는 듯했던 조례안은 2025년 3월5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갑자기 상정됐다. 서울시의회에선 보통 조례안을 심사하기 전 소관위원회 위원과 집행부서가 모여 간담회를 진행한다. 보건복지위 소속 오금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24년 발의됐을 때는 친환경 방제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집행부인) 서울시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책임 있게 얘기하지 않았다”며 “올해 간담회에선 서울시에서 친환경으로 준비하고 있고, 살수만으로도 충분히 방제가 가능하고, 책임도 다 지겠다고 해서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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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보류된 조례안이 갑자기 통과된 것에는 서울시의 인식 변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시민건강국은 2025년 2월 ‘유행성 생활불쾌곤충 통합관리계획’을 내놨다. “최근 동양하루살이, 러브버그 등 대발생 사례가 급증해 시민불편을 초래했다”며 “생태계 교란과 질병 매개 가능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추진 배경이다. 사업대상은 ‘대량발생해 시민 불쾌감·스트레스 유발 곤충’인데, 그 예시로 동양하루살이와 러브버그를 명시했다. 민원발생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비화학적 방제방법을 적용해 방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이번에 통과된 조례안과 일맥상통한다.
현행법상 ‘해충’으로 지정된 경우 방제할 순 있지만, 러브버그와 같은 익충을 방제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서울시의 생활불쾌곤충 통합관리계획도 서울시의회의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조례안 상정을) 서울시에서 요구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조례안과는 상관없이 서울시에서 (대발생 곤충을) 어떻게 관리하자는 (차원의 계획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처음 입법예고됐을 때, 서울시의회 입법조사처가 누리집에 올라온 시민 380여 명의 반대 의견을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이 전부다. 최영 팀장은 “반대 의견 등이 반영된 수정안을 재발의하거나, (시민 의견 반영을 위한) 공론 과정이나 숙의 절차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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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서울환경연합 제공
제2조 대발생 곤충이란 감염성 병원체를 매개하지는 않지만, 주거·상업 지역 등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역에 대량으로 출현하여 시민들에게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또는 불편을 주는 곤충을 말한다.
제3조 ② 시장은 제1항에 따른 방제 시 (…) 친환경적 수단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이번 조례안의 핵심은 위의 두 조항이다. 해충이 아니라도 대량으로 출현해 시민에게 불편을 일으키는 곤충을, ‘친환경적 수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방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례안은 친환경적인 수단을 강제하지 않았고 친환경적 수단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도 않았다. 조례안이 상정되기 전 열린 시의회 보건복지위에서도 이 부분에 관한 우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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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조에 친환경적 수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친환경적 수단은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겁니까?”(오금란 위원)
“물 뿌리는 방식으로 충분히 방제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렇게 일단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김태희 국장)
“친환경적 방제가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오금란 위원)
“업무 매뉴얼하고 지침 명확하게 해서 살충제를 뿌린다든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 잘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김태희 국장)
—2025년 3월5일 보건복지위 회의록 발췌
김태희 국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살충제는 절대 안 뿌릴 것”이라며 “대발생 곤충을 전부 다 근절하겠다는 취지가 아니고 시민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공공장소 등에 제한적으로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만 (자치구에) 기준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를 반대하는 시민모임에선 “친환경 방제는 우선적 고려 사항일 뿐이므로 화학적 방제의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나섰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살수는 그나마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임시로 치워주는 역할을 넘어 방제하긴 어렵다”며 “일단 살수를 시도하고 방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문가들도 물을 뿌리는 방식은 방제에 크게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물을 뿌리는 것으로는 러브버그가 죽지 않을뿐더러 큰 영향도 없다”며 “완전히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특정한 종에 대해서만 방제하는 특정한 방법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현재 러브버그만을 타깃으로 하여 작동하는 트랩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특정 곤충을 유인하는 기술은 개발하는 데만 최소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다른 생태계엔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효과적인 방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는 셈이다.
또 다른 친환경적인 수단으로 이미 서울 은평구 등 몇몇 자치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끈끈이 트랩’이 거론된다. 그러나 끈끈이 트랩은 모든 곤충이 무차별적으로 잡히고 새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설치 과정에서 나무껍질이 훼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태희 국장은 “여건에 따라 민원이 있는 곳(자치구)에서 하는 것 같다”며 “끈끈이 트랩에 대해서도 (앞으로는 살수 방식만 허용하겠다는) 기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애초에 친환경적 방제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친환경적이라고 하려면 사람이 건드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천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잖아요. (어떤 방법이든) 사람이 개입하면 친환경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틀린 거죠. 그리고 살수라는 방법만 쓰겠다고 하면 조례를 만들 필요도 없죠. 물 뿌리는 건 이미 하고 있는데요.”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 전문위원도 “살충제를 뿌리든 끈끈이를 붙이든 물을 뿌리든 맞춤형 방제를 할 수 없고, 당연히 유사한 크기의 곤충이나 그 시기에 출몰하는 곤충이 함께 죽는다”며 “친환경적인 방제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물리적인 방제라는 것은 어떤 먹이사슬 관계에 있는 많은 종류의 곤충이 몰살당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민규 연구원은 서울시가 러브버그나 동양하루살이를 ‘생활불쾌곤충'이라고 규정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정 생물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순간 낙인효과 같은 것이 발생해요. 그나마 지금까지는 자치구에서 잘 대응해온 측면이 있어요. 러브버그나 동양하루살이가 인체에 무해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부분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왔잖아요. 이렇게 설명해주면 최소한 익충으로 불리는 곤충과의 공존을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는데, (서울시가) 반대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거죠.”

2024년 6월25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채집한 붉은등우단털파리. 등에 붉은색 점이 보인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곤충 대발생 원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러브버그도 동양하루살이도 인간의 활동이나 도시화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신승관 교수는 “온난화가 원인이라면 남쪽에서도 발견돼야 하는데 남쪽에선 전혀 발견이 안 되고 있다”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만 퍼지는 것을 보면 도시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정도로 보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 생태계 다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민규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곤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지자체나 방제를 했던 곳에선 과거에 대발생했던 매미나방이나 꽃매미 등이 방제가 성공해서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국립산림과학원 등에서 나온 연구를 보면 대발생한 곤충들은 결국 자연이 스스로 개체군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발동돼 줄어든 거였어요. 자연은 이렇게 특정 생물종의 개체수가 마구 늘어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아요.” 인간이 저지른 잘못의 뒤처리는 늘 자연이 맡았다. 2025년에도, 방제보단 참아주기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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