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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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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 뜯기다

등록 2006-07-2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명국 인턴기자 freelmg@naver.com

“너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이다.” 몇 번 당해봤다. 그때는 뒤져봤자 구슬이나 딱지가 나왔다. 속된 표현으로 ‘삥 뜯다’라고 하는데 상대를 협박해 돈을 뺏는 행위를 말한다. 그 당시에는 정말 돈이 없었다. 또 착한 불량배 형들은 돈도 안 갖고 다닌다고 때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다. 동네 불량배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아저씨들한테 폭행당하고 카메라까지 뺏겼으니 말이다.
한미 FTA 2차 협상이 있는 한 주 동안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았다. 7월12일에는 범국민 총궐기 투쟁이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시청 앞 광장엔 3만의 인파가 모였다. 대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시청 앞에서 광화문 쪽으로 행진을 했다. 당연히 광화문 앞에 경찰의 저지선이 있었고 경찰과 충돌이 생겼다. 결국 저지선이 뚫리면서 사람들은 청와대까지 갈 기세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앞 저지선에서 시위대는 다시 경찰과 충돌했다. 여느 때와 같이 경찰과의 충돌 상황을 취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60대로 보이는 한 농민이 다짜고짜 뛰어오더니 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했다. “너 경찰이지? 카메라 내놔!” “아니에요. 저 인턴기자예요.”

매번 시위 현장에서 채증 경찰로 오인당하는 일이 있지만 다 좋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내가 무조건 경찰이라는 거다. 카메라를 갖고 실랑이를 벌이는데 농민 아저씨는 “여기 경찰 찍새 있어!” 소리치면서 주위 사람들을 불렀다. 사람들이 둘러싸니 나도 당황해 인턴기자 명함까지(인턴기자증은 안 나온다) 보여주며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퍽!” 아까 카메라를 뺏으려는 아저씨의 주먹이 코에 꽂히더니 바로 코피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피를 보자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게 느껴졌다. 코를 움켜잡고 있는데 그 아저씨를 시작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당하고 있을 때 처음 때렸던 아저씨가 카메라 렌즈를 부수더니 나한테서 강제로 카메라를 빼앗아갔다. 폭력에 의해 삥 뜯긴 거다. 결국 주위에 있던 같은 전농 소속 사람들이 와서 말리며 정말 기자냐면서 명함에 있는 회사 번호로 전화까지 해서 확인을 했다.

상황은 정리되고 경찰이 아니라 인턴기자로 확인되자 나를 폭행했던 사람들은 “진작에 기자라고 말하지 그랬냐”며(말해도 때렸으면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물론 카메라를 강제로 빼앗아간 아저씨는 자신이 내 카메라에도 찍혀 있고 괜히 엉뚱한 기자를 때린 게 되니 ‘증거 인멸’을 위해 카메라를 갖고 달아나버렸다. 바로 카메라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3만 인파 속에선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경찰 쪽의 과잉 진압도 있었다. 그러나 소수라고 하더라도 집회 참석자들의 무조건적인 폭력은 옳지 않다. 결국 다음날 에 실렸다. ‘ 인턴기자, FTA 집회 취재 중 폭행당해’ 기사를 보고 본지에 있는 인턴 동기 누나가 전화를 했다. “몸은 괜찮아?” 걱정하면서도 “아직 나도 기사 못 냈는데 네가 먼저 지면에 데뷔했구나” 라며 농담을 했다. 다음날에는 한 검색 사이트 톱 기사에 올라갔다. 삽시간에 달린 댓글을 보던 중 뜨끔했다. “만날 시위대 편들어주다 시위대한테 맞으니 기분이 어때? 기자가 삥 뜯겼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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