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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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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 다시 링 위에 서다

등록 2002-11-07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size="3" color="#a00000">본격적인 시장공략 나선 GM대우… 제품 구성의 한계 극복하며 세계로 나설 수 있을까</font>

10월21일 오후 2시 GM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직원식당. GM대우차 출범을 맞아 마련된 직원들에 대한 경영설명회 자리는 자못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천여명의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이영국 수석 부사장이 먼저 단상에 올랐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가 잘해야 살아남습니다.” 이 부사장은 ‘살아남는다’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GM대우차의 출범이 고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닉 라일리 사장이 연단에 올랐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한 것은 대우차와 대우차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역시 GM대우차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라일리 사장은 “모두가 놀랄 만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회사로 거듭 태어나자”는 말로 설명회를 마쳤다.

몰락, 쓰라린 기억들

지난 10월17일 출범한 GM대우차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 21~23일 직원들에 대한 경영설명회에 이어 28일에는 새로운 사업계획과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하는 등 회사를 본궤도에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에 발빠르게 나섰다. 11월 중에 1500cc급 신형 준준형차 J-200(프로젝트명)을 출시하는 데 이어 매그너스 2500cc와 2003년형 마티즈를 잇따라 선보이는 등 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99년 8월 대우자동차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이래 3년2개월 만에 기지개를 활짝 펴는 것이다.

대우자동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99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대우의 시장점유율은 40%에 육박했다. 그러나 올해 대우차의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스포츠실용차(SUV) 등 제외)은 14.8%에 불과하다. 현대차(50.4%), 기아차(18%)는 물론이고 르노삼성차(15.1%)에도 뒤지는 실정이다.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대우차는 국내 4위 업체라는 볼품없는 신세로 전락해 있다.

직원들의 고통도 컸다. 1700여명의 정리해고를 포함해 2001년에만 74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군산공장 품질관리부의 구남열(46) 직장은 “그동안 가족들을 대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지난해 중반 3~4개월 월급이 안 나올 때는 빚을 내 생활했다”고 말했다. 구 직장은 고등학생 아들 2명을 뒀기 때문에 특히 생활이 쪼들렸다. 월급이 안 나와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지만 거절당하고 돌아설 때는 서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래도 구 직장은 나은 편이다. 회사 동료 가운데는 교대 휴무 때 하루 3만~5만원씩 받는 막노동판에 나가거나 군밤·붕어빵 장사에 나선 사람까지 있었다. 창원공장 총무팀의 전경환(40) 차장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며 “올해 4월 GM과 본계약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직원들은 안도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GM대우차의 출범과 함께 직원들의 분위기는 고조돼 있다. GM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이전의 대우차보다 더 경쟁력 있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말을 아낀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경차와 소형차에서 강점 살릴 듯

GM대우차는 대우차 군산공장과 창원공장, 베트남 하노이공장, 그리고 8개 해외 판매법인과 네덜란드의 유럽부품센터를 인수해 재출발한다. 1차적 목표는 예전의 사세를 회복하는 것. 2005년까지 흑자를 내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시장점유율 20%를 넘어서는 것이다. GM대우차의 김종도 이사는 “그동안 대우차의 영업이 비정상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 법인의 출범과 함께 시장점유율 회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대우차 판매의 부진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대우차 산 뒤에 애프터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냐”, “조만간 대우차 문닫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문이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가 불식된 만큼 판매부문 정상화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새 차의 출시다. 대우차는 지난 98년 레간자·누비라·라노스 출시 이후 새 차 경쟁 대열에 참여하지 못해왔다. 그동안 내놓은 새 차라고는 올해 상반기 출시한 2000cc급 L6 매그너스와 1500cc급 칼로스가 전부다. GM대우차는 새 법인 출범과 함께 잇따라 새 차를 선보임으로써 현대·기아차와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준비하고 있는 J-200 등 새 차 외에도 GM의 모델을 개량한 다양한 차종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GM대우차의 앞길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대내외 여건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구성의 한계다. 생산 차종이 매그너스·누비라·칼로스·마티즈·레조·다마스·라보 정도에 불과하다. 경차와 소형차, 그리고 미니밴에 집중돼 있어 전체적인 제품 구성이 갖춰지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다. 특히 대형차와 요즘 잘 나가는 SUV 차량은 생산 기반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시급히 새로운 제품을 내놔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새 차를 얼마나 빨리, 적은 비용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다. GM대우차는 당장 새 차 개발에 착수한다 할지라도 2005년 말이나 2006년 초가 돼야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라인을 구성하려면 2006년 말 정도가 돼야 한다. 그 이후에야 시장점유율 30%대를 넘볼 수 있다는 것이 회사쪽의 분석이다. 개발 비용을 줄이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GM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새 차 개발의 주체는 한국의 부평 본사가 되지만 많은 부문에서 GM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형차와 SUV 개발은 기술 협력이 필요한 분야다.

다만 경차와 소형차에서는 당장 기존 대우차의 강점을 살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한 이유도 한국을 소형차 생산의 전진기지화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김소림 부장은 “경쟁력 있는 성능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1만달러 미만의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인건비가 높아 도저히 그러한 가격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GM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경우 대우의 소형차는 아시아·동유럽·남미 등 신시장에서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GM대우차의 출범은 일단 국내 승용차 시장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그동안 경쟁업체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왔던 현대·기아차(68.9%)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르노삼성차가 SM3·SM5 등 시리즈를 내세우며 현대·대우차를 견제해왔지만 강력한 경쟁상대는 되지 못했다. 새 차 개발 능력이 없어 일본 등 해외 모델을 약간씩 모양만 바꿔 출시해온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GM대우차의 출범은 국내 자동차 업계의 대격돌을 예고하는 것이다. 자동차업체들은 이미 지난 9월부터 인도금 유예할부, 중고차보상할부, 오토리스 등 파격적이고 다양한 조건의 판매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환경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품업계에도 긍정적 영향

부품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이다. 현대·기아차가 독점해온 시장이 경쟁체제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품질이 인정된다면 GM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외수출의 길이 넓어질 수도 있다. GM은 이미 한국에서 연간 6억달러 규모의 자동차 부품을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90년대 중반부터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잘만 활용하면 완성차 업체 못지않게 국내 부품업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GM대우차는 11월부터 매그너스의 유럽 수출을 시작한다. 제품명은 ‘에반다’(EVANDA). 대우가 다시 세계 시장에서 깃발을 올리는 신호탄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아시아·유럽·남미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다가 외환위기의 암초를 맞아 좌초했다. 그는 전 세계에 ‘대우’라는 이름을 심는 데 엄청난 돈과 정력을 쏟아부었지만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우는 이제 주인이 바뀐 채 재출항의 길에 나섰다. GM대우차는 외국회사지만 ‘대우’라는 이름은 이미 한국의 자동차 브랜드로 인식돼 있다. ‘대우’ 이름을 단 자동차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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