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 color="#a00000">이동전화 단일식별번호 제도와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으로 아성 무너질 수도</font>
주식시장에서 SK텔레콤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주”로 꼽혀왔다. 성장성이 높다는 기대심리로 몇달 만에 수십, 수백배로 주가가 뛴 주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작전에 의한 것이거나 투기 때문에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등한 것일 뿐이었다.그러나 SK텔레콤은 실제 실적에 바탕을 두고 최근 10여년간 큰 폭의 주가 상승세를 이어왔다.
통신사업자 바꿔도 번호 그대로
1994년 옛 선경그룹이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할 때만 해도 SK텔레콤이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선경그룹은 SK텔레콤 주식 23%(127만주)를 4254억원에 사들였다. 주당 가치도 시장가치의 2배를 주고 샀다. 그 뒤 9년 동안 주식시장에서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은 10배 넘게 커졌다. 1993년 말 1조4450억원이던 시가총액이 2002년 말 20조원을 넘어섰다. 시가총액은 현재 상장기업 중 삼성전자 다음으로 크다. 비록 신세기통신(017) 인수합병 등 다른 요인도 작용했지만, 대기업이 이토록 빠른 성장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SK텔레콤의 성장세는 1999년 이후 휴대폰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특히 두드러졌다. 1998년 1513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은 이듬해 2배가 넘는 3041억원, 2000년에는 또다시 3배가 넘는 9516억원으로 커졌다. 지난해에는 1조5123억원이었다. 법인세를 빼기 전 경상이익으로 보면 무려 2조원이 넘는다. 3234만명에 이르는 휴대폰 가입자의 절반 이상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고, 가입자들의 휴대폰 요금도 다른 업체보다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엄청난 순익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SK텔레콤이 올 들어 흔들리고 있다. 1월 중순부터 주가가 슬슬 떨어지더니 1월23일에는 급기야 하한가를 맞았다. SK텔레콤이 하한가를 맞은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SK텔레콤의 주가하락은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하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증권분석가들은 말한다. 또 IMT-2000 상용화를 위해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배당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퍼진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이동전화 단일식별번호(010) 제도와 순차적인 번호이동성 제도의 도입도 큰 악재가 됐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정보통신부는 1월16일 이동통신업체 간 효율적인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IMT-2000 가입자에게 부여하기로 했던 010 번호를 셀룰러폰과 PCS폰 등 2세대 서비스 가입자에게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휴대폰 서비스에 신규가입하거나 기존 번호를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는 고객은 011, 018과 같은 번호 대신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번호는 사업자별 식별번호를 따로 두지 않기 때문에 011이란 브랜드는 의미가 없어진다.
동시에 기존 이동전화 고객들이 번호를 바꾸지 않고 통신사업자를 바꿀 수 있는 이른바 번호이동성도 도입하기로 했다. 즉, 011 번호를 그대로 쓰면서 KTF(018)나 LG텔레콤(019)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번호이동성 제도는 내년부터 시행하되 시장점유율 순서로 6개월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시행한다. 처음 6개월간은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SK텔레콤(53%) 고객만 다른 업체로 옮길 수 있고, 다음 6개월간은 SK텔레콤 고객과 KTF 고객이 LG텔레콤으로 서비스업체를 옮길 수 있다. 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으로 가입자가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011이라는 브랜드 무력화
새 제도는 27일 통신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되지만, 도입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서비스업체를 바꾸려는 고객들이 있었지만, 번호 때문에 제한돼왔다. 번호를 바꾼다면 명함을 새로 찍어야 하고, 여기저기 바뀐 번호를 알려야 하는 등 불편이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많은 고객을 확보한 SK텔레콤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따라서 새 제도가 도입되고 그것도 순차적으로 번호이동성이 허용되면 당분간은 시장점유율이 높은 SK텔레콤이 가장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는 요금을 허가받아야 하지만 다른 업체들은 신고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서비스 요금이 싼 다른 업체들에 고객들을 빼앗길 게 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SK텔레콤 안에서는 이번 발표를 놓고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이 특정업체에 혜택을 주려고 한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정업체란 이 장관이 KT 출신인 만큼 KTF를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KTF 남중수 사장은 지난 1월21일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셀룰러폰 방식의 SK텔레콤 고객이 KTF로 옮기려면 단말기를 바꿔야 하지만, KTF 고객이 같은 PCS 방식인 LG텔레콤으로 옮길 때는 단말기를 그대로 쓸 수 있으므로 사실상 우리가 가장 손해를 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손해’라는 KTF쪽의 주장은 엄살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같은 PCS 사업자라고는 해도 KTF 고객이 LG텔레콤으로 옮겨갈 이유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대목은 011이라는 브랜드가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011은 휴대폰의 상징이었다. ‘011’이라는 식별번호를 별도로 부르지 않는 번호는 곧바로 011로 인식됐다. 그러나 내년부터 신규가입하는 고객에게 011은 의미가 없다. 정부는 또 2007년 말까지는 기존 가입자들도 모두 010으로 번호를 전환하도록 할 계획이다.
새 제도의 도입으로 SK텔레콤이 받는 타격은 얼마나 될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업체 간 시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번호이동성 제도를 실시하면 1년 뒤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5%포인트나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6개월씩 시차를 두고 실시하면 1년 뒤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이 2%포인트가량 하락하고, KTF와 LG텔레콤은 각각 0.8.%포인트, 1.2%포인트 시장점유율이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그렇게 큰 타격은 없다는 것이다.
사업자 간 경쟁 격화될 것
동양증권 이영주 분석가는 010으로 번호가 통합되면 신규가입자는 세 업체가 33%씩 나눠갖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SK텔레콤으로서는 과거보다 연간 20만∼30만명의 신규고객이 감소하는 결과가 된다. 그는 이어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번호를 바꾸는 가입자는 연간 35만∼70만명 선이 될 것이다. 여기에다 식별번호 폐지로 011이란 번호의 프리미엄이 없어지면서 SK텔레콤은 2004년에 2400억원, 2005년에 3600억원가량 수입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고 추정했다. 그동안의 폭발적 성장세는 이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증권사들도 SK텔레콤의 목표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든 성장세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기업의 성장세가 오랫동안 가파르게 이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이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통신요금이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통신서비스업체의 이익률이 평균 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얘기다. SK텔레콤의 자기자본이익률은 2002년 27%를 넘었다. 순수투자금 100억원에서 27원이나 이익을 남겼다는 얘기다. 보통 기업의 2배가량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가파른 성장세가 꺾인다고 해서 SK텔레콤이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까지 무너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통화품질이 가장 뛰어나고, 높은 수익성으로 마케팅 경쟁력이나 투자여력도 가장 앞서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 시장의 빠른 확대, 그리고 2001년 9월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된 뒤 오히려 1위 사업자인 텔스트라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동원증권 양종인 분석가는 이 제도 도입이 사업자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요금경쟁과 고객 유치 경쟁이 심해져 업계 전체의 수익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시장점유율은 변동의 여지가 한층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SK텔레콤이 가장 불리하고, LG텔레콤이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LG텔레콤이 오히려 가장 불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005년부터는 어느 쪽으로도 번호 이동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통화품질과 값싼 요금이 경쟁의 핵심요소가 된다. 그런 점에서는 SK텔레콤과 KTF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진검승부는 2005년에 비로소 시작된다. 물론 그 전에 변덕스러운 정보통신부가 또 어떤 제도를 새로 도입할지 모를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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