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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삼성, 승승장구 이어질까

등록 2002-10-17 00:00 수정 2020-05-03 04:22

[르노삼성]

<font size="3" color="#a00000">9월 사상 최대의 판매실적 올리며 3위로 뛰어올라… 닛산 기술력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계도</font>

르노삼성자동차가 올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9월 르노삼성은 SM5와 SM3 두 차종에서 모두 1만1448대의 차를 팔아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내수시장만 놓고 보면, 대우차와 쌍용차를 제치고 현대차, 기아차에 이어 일약 3위로 뛰어올랐다. 9월 중 쌍용차의 판매실적은 1만대를 조금 넘었고, 대우차는 1만대를 조금 밑돌았다. 대우·쌍용차와 큰 차이는 없지만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만년 꼴찌를 하던 르노삼성의 처지에서 보면 감개무량한 일이다.

르노삼성이 대우차보다 차를 더 많이 판 것은 협력업체들의 납품 중단으로 대우차의 가동이 한때 중단된 특수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를 앞선 것은 자동차 내수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르노삼성의 승용차시장 점유율은 아직 12.2%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판매신장세로 보면 앞으로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아반테의 강력한 경쟁자, SM3

르노삼성의 3위 도약은 올 들어 SM5의 판매가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도 크지만, 그것보다는 준중형차인 SM3를 9월에 새로 출시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7월15일부터 예약을 받기 시작한 SM3는 9월 한달 동안 4708대가 팔려나갔다. SM3는 예약이 계속 밀려들어 현재 출고를 기다리는 예약자가 1만여명에 이른다. SM3의 선전은 SM5가 중대형차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SM5가 괜찮다면 SM3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판매에 큰 몫을 하는 것이다.

르노삼성이 부도난 삼성자동차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SM5의 판매량은 월 3천대가량에 불과했다. 삼성차의 장래를 불안하게 생각한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노삼성이 회사를 인수한 뒤 SM5의 판매는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한해 동안 7만788대로 월평균 5천대 이상을 판 것이다. 택시용으로 많이 팔려나간 뒤 택시 운전사들을 통해 “괜찮다”는 평가가 퍼졌고, 차값의 절반만 내고 절반은 이자만 내다가 3년 뒤에 내도록 한 대금지급 조건도 판매증가에 도움을 주었다. 일부에서는 ‘외제차’라는 시각이 오히려 판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올 들어 SM5의 판매대수는 9월까지 7만8979대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만1339대에 비하면 54%나 늘어났다. 중대형차 내수시장의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새로 출시된 SM3는 얼마만큼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까 준중형차 시장의 선두주자는 역시 현대자동차의 아반테다. 현대차는 올 들어 1500cc와 2000cc의 4도어, 5도어 등 모두 6개 모델로 2003년형 아반테XD를 내놓았다. 아반테XD는 지난 9월 한달 동안 7855대가 팔리는 등 국내시장의 최다 판매차종이다. SM3는 이보다는 적은 4708대를 팔았지만, 아반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SM3는 같은 급의 아반테에 비해 30만원가량 값이 비싸다. 또 90년대 후반 닛산이 내놓은 ‘블루버드 실피’ 모델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경쟁업체들은 ‘낡은 모델’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소비자쪽에서 보면 디자인과 가격만이 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다. 르노삼성쪽은 “연비가 좋아 경제적이고, 안전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수 2년 만에 흑자낼까

아반테와 SM3 판매를 놓고 두 회사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쪽은 아반테가 힘이나 성능, 내부공간의 넓이 등에서 SM3보다 낫다고 강조한다. 두 회사 간의 간접적인 설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비교시승 행사를 열자는 얘기도 오가고 있다. 비교시승은 지난 8월 제주도에서 열린 SM3 주행시험 행사에서 르노삼성 관계자가 “타사의 경쟁차종과 비교시승을 해봐도 좋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실현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두 회사 모두 비교시승을 한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의가 들어온 것은 없다. 그러나 언론사가 주최하든 어디서 주최하든 공정하게 비교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괜찮다”고 말했다.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판매추세가 이어질 경우 르노삼성은 9월부터 연말까지 SM3 1만4천대 등 올해 10만대의 차를 팔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간 10만대 판매는 르노삼성에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제롬 스톨 사장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계획보다 2년 앞당겨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르노삼성이 상반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실적 추정은 어렵지만, 루이 회장의 말대로라면 올해는 영업이 흑자를 내거나 영업손실이 0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애초 르노삼성은 2004년 손익분기점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지난해에는 59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2000년에도 51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만약 인수 2년 만에 영업이 흑자를 낸다면 이는 놀라운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르노삼성차는 이자수익과 이자부담이 비슷하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곧 순이익이 된다.

르노삼성의 생산시설은 현재 2교대로 24시간 풀가동을 하면 연간 최대 24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는 연간 10만대를 생산하고 있어 생산라인을 풀가동하지는 않는다. 특히 SM5와 SM3가 같은 라인에서 생산되고 있어 어느 한 차종의 생산만을 크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당분간은 생산시설을 전혀 확충하지 않고도 주문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르노삼성의 최근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쟁업체들은 르노삼성이 르노-닛산의 국내 하청 생산기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깎아내린다.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뿐 아니라, 엔진 등 주요 부품을 닛산의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이 성장할수록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쪽은 닛산이다. 과거 삼성차가 닛산과 체결한 기술지원 및 라이선스 계약을 보면, 르노삼성은 SR엔진이 장착된 차량에 대해서는 대당 2만5천엔, VQ엔진이 장착된 차량에 대해서는 대당 3만5천엔을 제품판매 때 닛산에 주도록 돼 있다. 지난해 기술사용료는 200억원이었다. 이는 매출액의 2%가량에 이른다. 기술사용료는 앞으로 판매대수가 많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늘어나게 돼 있다. 계약은 2003년 1월2일까지지만, 닛산에 불리하게 갱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르노, 독자적 업체로 키우지는 않을 듯

르노삼성의 자동차 판매가 계속 늘어난다고 해도 앞으로 져야 할 추가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삼성그룹과 상표 사용계약을 체결해놓았기 때문에 수익이 날 때부터는 상표사용료도 내야 한다. 계약내용은 이자 및 세전이익(EBIT)이 플러스로 돌아선 해부터 삼성그룹 상표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 매출액의 0.8%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삼성자동차를 인수할 때 훗날 지급하기로 한 돈도 분할상환해야 한다. 르노삼성의 미지급금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2천억원가량이다. 르노삼성은 이를 2004년부터 연간 100억원 이상씩 갚아나가야 한다. 상환액은 수익을 낼수록 커진다. 이 돈도 르노삼성이 자력으로 투자를 확대하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로열티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을 과연 어떻게 이끌어갈까 르노삼성을 현대차나 기아차 수준의 독자적인 자동차업체로 바꿔나가려면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르노그룹쪽은 대대적인 투자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은 지난 2000년 9월1일 출범하면서 3단계 중기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1단계로 2002년까지 회사를 정상화하고, SM5의 후속모델을 발표한다. 2004년까지의 2단계에는 본격적인 수출을 시작하고 수익을 내며, 이후에는 제품의 라인업을 확장하고 시장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2단계, 즉 본격적인 수출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루이 슈웨체르 회장은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 3년간 매년 1200억원씩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금은 르노그룹에서 들여오지 않고, 국내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SM5와 SM3가 순조롭게 판매신장을 계속한다면 연간 1200억원을 조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투자로는 닛산의 모델을 바탕으로 한 새 모델을 국내상황에 맞게 재개발하는 정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실제로 SM3 모델 개발에도 1200억원이 들어갔다. 르노그룹이 최근 제시한 청사진도 여기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루이 회장은 “제3모델 출시를 위해 연구개발 범위를 확대하고, 신규시장을 공략하고 대규모 수출에 대비하도록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4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모델도 역시 닛산의 기술에 의존하겠다는 얘기다.

수출경쟁력에 관심 쏠려

르노삼성에 대한 자동차업계와 국민의 관심은 르노삼성쪽이 앞으로 수출을 얼마만큼 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대우차가 버티고 있는 내수시장에서 르노삼성이 계속 내수에만 치중할 경우 과열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출길을 크게 열지 못한 상황에서 경기침체나 경쟁력의 한계로 내수가 나빠질 경우 회사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SM5의 올해 수출실적은 9월까지 156대에 불과하다. 현재의 생산량으로는 내수도 다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지만 수출 경쟁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르노와 닛산의 부품 구매망과 해외 자동차 판매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출에서도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닛산의 모델을 국내에 들여와 닛산의 기술력으로 생산하는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견뎌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아직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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