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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적자 넘어 비상하나

등록 2002-08-29 00:00 수정 2020-05-03 04:22

[아시아나항공]

<font size="3" color="#a00000">9·11 이후 생존의 기로에 섰으나 최근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실적 호조</font>

지난해 9·11 테러가 터진 이후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업종은 항공업계였다. 당장 미국행 운항편수가 줄어들고 보험료가 급등했다. 테러에 대한 공포로 전반적인 항공 수요도 크게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에서의 전쟁 가능성으로 원윳값까지 치솟았다. 국내 항공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비상사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금난에 시달리던 아시아나항공에게 9·11 테러는 치명타였다. 상반기 동안 156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그룹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1년여 전부터 재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제2금융권이 기업어음(CP) 매입을 통해 빌려준 2천여억원의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회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

아시아나항공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 때문이었다. 정부가 항공업계를 살리기 위해 전쟁·테러 발발시 제3자 손해배상에 대해 15억달러를 지급보증하고,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의 긴급자금 지원,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을 통해 위기를 막았다.

환율·유가 안정도 한 몫

급한 불은 껐지만 경영이 정상화된 것은 아니었다. 미주노선의 경우 손님이 크게 줄어든 외국 항공사들의 덤핑 공세로 운항을 할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001년에 결국 272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내고 말았다. 외환위기가 터진 97년 이후 5년 동안 모두 8584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불과 몇달 전에 이처럼 생존의 기로에 서 있던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9·11 테러의 충격파가 조금씩 가시면서 급감했던 항공수요가 늘어난데다 국내경기의 회복을 등에 업고 회사가 급속히 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하락으로 호조건이 겹쳤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상반기에 10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영업이익은 640억원에 이르렀다. 비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1∼2분기가 전통적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영상태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매수 의견을 내놓는 애널리스트들이 늘고 있다. LG투자증권의 송재학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이 상반기에 3500여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하는 등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으며, 3분기부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식 매수 의견을 내놓았다.

경영호전의 이유는 1차적으로 항공수요의 회복이다. 국내경기 회복으로 사람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출국자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선도 크게 늘어났다. 1월 부산-괌 신규취항을 시작으로 인천-도쿄 증편, 인천-런던 신규취항, 인천-항저우 신규취항, 부산-선양 신규취항 등 상반기에만 주 69회의 국제선 항공을 증편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상 최대규모인 6대의 항공기를 도입했다. 위기에 놓여 있던 회사가 불과 6개월 사이에 급성장세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항공수요 회복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환율과 유가의 안정이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환율과 유가가 회사의 수익성을 절대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달러당 1326.1원이던 환율은 지난 6월 말 달러당 1201.8원으로 9.37% 하락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수입 가운데 달러화 비중이 19%인 데 반해 지출에서 달러화 비중은 50%에 이르러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이익을 보게 돼 있다. 대신증권 양시형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0원 하락할 때마다 아시아나의 순이익은 53억원씩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항공유 가격 또한 지난해 갤런당 78.86센트(평균도입가 기준)에서 상반기 갤런당 65.73센트로 17% 하락했다. 모든 여건이 최상의 경영여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마무리단계 접어든 금호그룹 구조조정

이뿐이 아니다. 지난 6월 월드컵 때문에 잠시 주춤하던 항공수요가 7∼8월 성수기를 타고 급증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 해외여행자들이 크게 증가한데다 은행권을 필두로 한 주5일근무제 확산으로 여행·레저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당분간 국내 항공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상황 덕에 아시아나항공은 그동안의 부실을 떨치기 위해 올해 최대의 이익을 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말까지 목표는 매출 2조5400억원, 영업이익 2천억원, 순이익 3600억원이다.

일단 주변 여건은 아시아나항공에 장밋빛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아시아나항공이 놓인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외부적 변수가 호전된 데 따른 흑자전환인데다 금호그룹 자체가 아직까지 불안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는 자산 10조3천억원(금융회사 제외)으로 공기업을 제외하면 재계 서열 9위의 대기업이다. 계열사도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산업·금호석유화학 등 14개에 이른다. 그러나 거대한 외형과 달리 재무상황은 10대그룹 가운데 가장 취약하다. 그룹 전체의 부채가 8조원에 이르러 부채비율도 360.9%에 이른다. 그룹이 가닥가닥 찢겨나간 현대(부채비율 646.3%)를 제외하면 10대 그룹 가운데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슷한 규모의 두산이나 한화가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금호의 구조조정 성적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다. 두산은 구조조정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중공업)을 인수했으며,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대우처럼 외환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공중분해되거나 매각·정리 과정에 있는 회사들도 있으나 이들의 처리 방향은 이미 결정돼 있다. 아직까지 불확실한 구조조정 와중에 있는 기업은 금호뿐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마지막 구조조정 기업인 셈이다.

금호 구조조정의 핵심은 부채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금호는 이를 위해 올해 금호산업 차량정비 공장부지를 매각했으며, 외자유치를 통해 아시아나공항서비스 지분의 85%를 국제적인 투자컨소시엄에 넘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금호산업 타이어사업 부문이다. 금호산업은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20 대 80의 비율로 신설법인을 설립한 뒤 이 회사에 타이어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금호쪽에서는 1조5천억∼2조원의 매각대금을 기대하고 있다. 금호산업 총매출(지난해 2조7천억원)의 60%를 차지하는 타이어사업 부문은 올 상반기에만 421억원의 흑자를 낸 알짜사업이다.

금호 관계자들은 “마무리 협상만 남았을 뿐 매각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이르면 오는 9월 최종계약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단 회사쪽의 매각 의사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최근 타계한 박정구 전 회장의 뒤를 이어 9월부터 회장직을 맡을 박삼구 부회장도 여러 차례에 걸쳐 매각 방침을 밝혀왔다. 타이어사업 부문 매각이 완료되면 금호는 취약한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5년을 끌어온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장거리 노선에 취약

타이어사업 부문 매각이 마무리될 경우 금호의 주력사업은 사실상 아시아나항공만 남는다. 일단 환율과 유가 등 경영여건이 좋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당분간 순항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5일근무제 확산으로 내국인들의 여행수요가 지속적으로 느는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국제무대로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항공업계의 삭막한 현실과 마주친다.

유럽항공클럽(EAC)은 최근 2004년까지 항공업계 과잉공급과 수익악화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내년까지 항공수요가 계속 줄어들 것이며, 항공수요가 증가세로 반전하더라도 9·11 테러 이전으로 회복되려면 1년 정도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항공업계의 수익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최소한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 항공기구들은 또 몇개 항공사가 추가도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항공사들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항공업계에서는 장거리 국제선은 거의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특히 장거리 노선에 취약하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국제선으로 아시아·미주·유럽 등 55개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유럽은 프랑크푸르트·런던 2개, 미주는 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 4개 노선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이 중국·일본과 그 밖의 아시아 지역이다. 게다가 데일리(1일1회 운항) 체제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데일리 체제는 노선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하루 1회 운항이 가능해야 승객들이 일정에 따라 편리하게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6월 세계 최대규모의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에 가입함으로써 이러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 지역의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없는 장거리 노선에 무리하게 취항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 신규취항한 런던 노선이다. 대한항공이 주4회 취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주3회 취항해서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국제선 장거리 노선의 일시적인 경영호전에 만족하지 않고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장거리 노선은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는 탑승률(탑승인원/좌석)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국제항공업계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경영이 조금 좋아졌다고 무리하게 사업을 넓히면 또다시 어려움에 놓일 수 있다”고 충고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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