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KT그룹’으로 뭉친다

등록 2002-09-12 00:00 수정 2020-05-03 04:22

계열사 통제 등 경영권 안정에 집중… 무선 인터넷과 유·무선 통합으로 한계 돌파

‘8월30일 14:00, 54,400원(↑1600).’ 경기도 분당에 있는 KT(옛 한국통신) 사옥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소형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가 눈길을 끈다. 모니터에는 KT 주식시세가 몇초 간격을 두고 실시간으로 뜬다. 주식시세가 스치듯 지나가면 화면은 어느새 ‘망한 음식점의 10가지 공통점’으로 바뀐다. 생기 없는 종업원, 평균 이하의 맛, 구식 상호….

‘망한 음식점’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 모니터 화면은 KT의 사무실 분위기 못지않게 ‘민영 KT’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공기업 시절이라면 회사 엘리베이터에 자사 주식시세를 대놓고 띄워놓을 수 있었을까. ‘망한 음식점…’ 역시 KT가 이제 혹독한 시장경쟁에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임직원들한테 불현듯 일깨운다. 공기업 문화에 젖어 안주하던 때로부터 빨리 벗어나라는 회사쪽의 독려다.

KT는 지난 8월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초대 사장에 이용경씨를 선임하고 ‘주주가치 및 고객가치 중시’를 내건 민영 KT로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정관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기초해 다시 고쳤다. 지난 5월 정부 보유 지분(28.4%)을 전량 매각한 데 이어 공식적으로 민간주주들에 의한 자율경영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민영 KT로의 탈바꿈은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한 지 20년, 민영화가 추진된 지 16년 만이다.

KT는 최근 정보통신부에 유선통신에 대한 규제 축소를 건의했다. 무선통신 시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 반면 KT의 주요 수익원인 유선사업만 유독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경쟁업체인 SK텔레콤은 규제에서 벗어나 각종 사업에 돈을 퍼부으며 치고 나가고 있는데 KT는 시장경쟁에서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일종의 항의였다. KT 민영화추진단 강태풍 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KT에 위기가 찾아오면 정부가 방어해줬다. 하지만 이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한 만큼 스스로 생존을 찾아야 한다. 정부에 건의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 말했다.

발전소 민영화를 비롯해 민영화 대상 공기업마다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은 터라 그럴까. 정부는 KT를 가장 모범적인 공기업 민영화 사례로 꼽아왔다. 정보통신부의 KT 민영화추진팀에 대한 포상까지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포상은 갑자기 취소됐다. 민영 KT가 소유지배구조를 둘러싼 불안감을 안은 채 첫걸음을 뗐기 때문이다. KT 지배구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큰 틀 속의 전문경영인 체제만 있을 뿐 뚜렷한 그림은 아직 없다. KT쪽은 “옛 기아자동차 같은 국민기업 모델이나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이상적이고 선진적인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KT형 모델을 따로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그동안 민영 KT 체제가 흔들리지 않고 정착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KT노조는 “주인 없는 경영구조 속에서 앞으로 2∼3년이 KT가 안정되느냐 아니면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논리가 고개들면서 특정재벌에게 넘어가는 사태가 오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라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SK텔레콤의 장난?

KT의 경영권 안정을 꾀하기 위해 서둘러 해결해야 할 숙제는 SK텔레콤과 교차 보유하고 있는 지분문제다. 정부는 애초 KT 민영화 과정에서 몇몇 대기업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황금분할을 통한 재벌 간 상호견제’를 도모했다. 그런데 이 구도는 SK텔레콤이 KT 지분 9.55%를 전격 매입해 KT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면서 흠집이 나고 말았다(표1 참조). SK텔레콤은 △KT의 SK텔레콤 주식보유(9.27%)에 대한 견제 △경영권 장악이 아닌 순수 투자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분 교차보유를 둘러싼 KT와 SK텔레콤 사이의 갈등은 SK텔레콤의 한국이동통신 인수·합병 때부터 불거졌다. 현재 KT가 갖고 있는 SK텔레콤 지분은 당시 한국이동통신의 모기업으로서 한국통신이 갖고 있던 몫이다.

물론 공정거래법 등 법적 제약이나 재벌들 간의 상호견제를 감안할 때 특정재벌이 KT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KT가 한국전력·삼성·LG·SK·현대자동차에 이어 대규모 기업집단 6위인데, 이런 거대 회사의 경영권을 ‘감히’ 넘볼 세력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KT는 SK텔레콤이 편법을 동원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장난’을 칠 가능성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KT쪽은 “공기업 사냥꾼인 SK텔레콤이 유공 등을 먹을 때도 현행법 체계 아래서 가능했다. SK는 과거 우리 한국통신의 자회사였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당사자가 아닌가. SK텔레콤이, 보유한 KT 지분을 쪼개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갈 수도 있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SK텔레콤과의 지분 교차보유는 KT의 성장을 위한 투자에도 당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분 교차보유 때문에 모두 2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전혀 수익을 못 내는 자산으로 썩히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양사가 2조원을 지분 확보에 때려넣고 서로 폼만 잡고 있다”며 비아냥거리는 판국이다. 정부는 “두 회사가 지분을 맞교환해 (SK텔레콤은) KT의 2대주주 이하로 지분을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SK텔레콤은 중장기적 계산에 따라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다. KT는 SK텔레콤이 최대주주 자리에 버티고 있는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SK텔레콤 주식을 추가 매입해 지분을 10%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상법상 상호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 규정에 따라 SK텔레콤의 의결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소멸시키려는 것인데, 이는 시장경쟁을 위해 투자할 막대한 돈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는 셈이 된다.



  KT 국내 자회사(2001년, 단위 억원)





구분


주요 사업


영업실적




 KTF
 이동통신사업(PCS)

 44,946   




 KT아이컴
 이동통신사업(IMT-2000)

 0   




 KT링커스
 공중전화 설치 및 유지·보수

 1,732   




 KTH
 하이텔·한미르 등

 688   




 KT파워텔
 기업이동통신전문회사

 590  




 KT솔루션스
 통신시설 유지·보수

 1,810   




 KT서브마린
 해저 케이블 건설 및 유지·보수

 539   



집중투표제를 전격 도입한 이유

KT는 껄끄러운 SK텔레콤 지분만 해소된다면 ‘완벽한 지분 분산’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산된 지분구조의 한쪽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오너의 지분이 따로 없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황에서 민영화 초기의 어수선한 틈을 탄 외부세력의 ‘흔들기’를 방어해야 하는 것이다. KT쪽은 “주식 분산이 아주 잘 돼 있다는 건 거꾸로 외부세력을 견제할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정재벌과 외국인 투자자 세력이 담합하거나 일반 개인을 가장한 불순 세력의 개입도 가능성은 적지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분야는 유·무선 설치망이 서로 교차하면서 온갖 서비스가 이뤄지므로 사업영역이 겹치고 새 상품을 위해 기존의 통신망을 필요로 한다. 특히 네트워크식 장치산업이라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서로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개정된 KT 정관에는 ‘KT와 동종 또는 유사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거나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의 임직원은 이사가 될 수 없다’고 정해 대기업의 KT 경영권 인수 시도를 봉쇄했다. 하지만 정부가 완전히 지분을 털고 빠져나간 민영 KT의 분위기는 걱정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KT 민영화추진단 강태풍 팀장은 “주가를 높여 시가총액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시가총액의 덩치를 키워놓으면 그 어떤 세력도 지분확대를 통해 경영권 장악을 노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을 완전히 씻지 못한 상태라서 그럴까. KT쪽은 “새로운 KT형 모델을 만들어가기 전에 당장은 현재의 견실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잘라말했다. KT가 이사 선임 때 소액주주들이 특정인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전격 도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투명 경영을 위한 제도이긴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힘을 빌려 대기업 등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장악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사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하도록 한 것도 상호 견제를 통해 경영권을 감시하려는 장치다.

KT는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난 뒤 경영권을 지키고 시장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그룹경영 체제’로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민영 KT에게 ‘그룹’이란 말은 아직 낯설지만 자회사들(표2 참조)을 한데 묶어 역량을 집중시켜야 외부의 도전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KT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자회사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KTF가 SK텔레콤에 비해 10년이나 뒤늦게 이동통신 시장에 진입하고도 경쟁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본체인 KT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자회사들끼리 사업영역이 중복되면서 서로 경쟁하는 양상마저 나타났다.

019 재판매까지 나설 방침

KT의 그룹화 추진은 내년 3월 정기 주총에서 ‘대표이사 회장제도’를 신설하는 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 재벌과 달리 대주주가 그룹총수를 맡는 건 아니지만, 회장직을 둬 단일한 그룹경영 체제를 갖춘다는 것이다. KT는 “다른 재벌의 수평적 계열화는 여러 사업부문에 걸친 문어발 확장이지만 KT는 통신사업 하나뿐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KT 본체는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재벌의 비서실과 유사한 이른바 ‘코퍼레이션 센터’를 설치해 계열사를 통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KT는 유·무선을 망라하는 국내 유일의 거대 통신사업자다. 시내전화의 96%, 시외전화의 85%, 국제전화의 67%에 이르는 시장점유율은 독점 공기업 체제에서 누려온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보호막에서 탈피한 KT는 유선전화 시장의 급격한 감소라는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유선사업은 KT가 성장해온 원동력이었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표2 참조). 시내·시외·국제전화 등 유선전화 통화량은 지난 96년 이후 연평균 10.8%씩 줄어들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10년 뒤에 유선전화 간 통화량이 ‘제로’(0)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시내전화 통화량 감소는 유선(Line)에서 이동전화(Mobile)로의 통화(LM)량(지난해 218억분) 수입에 기대 간신히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초고속인터넷망(ADSL) 역시 정체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처럼 유선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KT는 무선 인터넷이나 유·무선 통합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새로운 성장엔진인 무선사업과 관련해 KTF와 KT아이컴(IMT-2000 서비스 제공)을 통합한 뒤 그룹의 핵심축으로 삼을 계획이다. 특히 3세대 이동전화 중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이동통신 재판매(이동전화 사업자로부터 번호를 대량으로 구입한 뒤 독자적으로 가입자를 모집해 통화료 수입을 나눠갖는 것)다. KT는 자회사인 KTF의 016, 018 재판매에 이어 LG텔레콤의 019 재판매까지 나설 방침이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활용해 사실상 무선 이동전화 시장에 직접 진출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재판매로 유치한 2세대 이동전화 가입자들을 자연스럽게 KT아이컴의 3세대 이동전화 가입자로 끌어들인다는 구상도 깔려 있다.



  KT그룹의 사업부문별 매출실적(단위: 억원)





사업부분


품목


2002 상반기




 인터넷
 ADSL(메가패스) 등

 9,508   




 데이터
 014XY, 패킷교환회선 등

 1,037   




 회선임대
 시내·시외·국제전용 등

 7,104   




 LM통화
 유선->휴대폰 접속통화료

 12,046   




 무선
 016, 018 재판매 등

 3,306   




 위성
 무궁화위성 수익

 607   




 전화
 유선·공중전화 등

 23,645   




 기타
 SI(시스템통함) 등

 833   




 합계
 

 58,090   



한국통신시장에도 불황은 올 것인가

미국의 월드컴이 파산하고 유럽 이동통신업체마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세계 통신시장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만 불황의 예외지대로, 주요 통신업체마다 올 상반기에 놀랄 만한 실적증가율을 기록했다. KT는 “영국통신(BT), 일본전신전화(NTT), 미국전신전화(AT&T) 등이 KT를 벤치마킹하러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황이 언제 한국에도 상륙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때에 KT는 공기업이란 익숙한 간판을 내리고 ‘변화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KT쪽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왔다기보다는 간섭으로 인해 경영효율이 떨어졌고, 다른 통신업체에 비해 상대적인 배고픔을 느껴왔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시장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팎의 도전과 설렘, 패기가 한데 뒤엉킨 새출발의 풍경이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