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주송정역 앞에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입지를 환영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전남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남광주에 오는 건 혁명입니다.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발전하고 호남, 그리고 화순이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동복댐 상류에 사는 오병식 동복댐 연합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팹) 4기가 전남광주에 들어서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위원장의 기대에는 조건이 있다.
“수몰 예정지 주민 대부분이 80·90대예요. 정부가 이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이주할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곳은 옛 광주광역시지만, 공장에 공급할 물을 확보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은 화순과 담양 주민들이다. 정부가 옛 광주지역 시민의 주요 식수원인 동복댐의 저수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하면서 동복호 상류 약 300가구가 수몰 가능 지역에 포함됐다. 전남광주가 반도체산업 유치에 걸고 있는 기대에 비해, 유치 및 유지 비용의 부담 주체와 성장 이익의 분배 방식에 대한 논의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한겨레21은 일본 구마모토와 대만 신주에서 이런 고민의 미래를 먼저 들여다봤다. 구마모토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티에스엠시(TSMC)의 공장이 들어섰지만, 지역 기업과 인재가 산업 성장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확인했다. 대만 신주에서는 반도체산업이 도시의 부를 끌어올린 이면에 장시간 노동과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질문은 전남광주로 돌아온다.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구마모토와 신주가 겪은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26년 10월1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호. 채윤태 기자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성패는 ‘물 먹는 하마’ 반도체 공장에 안정적으로 물을 댈 수 있느냐에 달렸다. 반도체는 회로를 새기는 공정마다 웨이퍼를 초순수로 씻어내야 하고, 설비를 식히는 냉각수도 대량으로 쓴다. TSMC의 자회사 제이에이에스엠(JASM) 공장이 들어선 일본 구마모토는 깨끗한 지하수가 풍부하지만, 공장 가동 이후 지역사회는 농업용수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구마모토에 비해 호남권은 지하수는 물론 댐 유량도 넉넉하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호남 반도체 메가특구에 짓는 팹 4기와 협력사가 쓸 물은 하루 60만3천t(톤)이다. 그러나 별도 시설 투자 없이 당장 공급할 수 있는 물은 하루 20만t으로, 필요한 양의 약 30%에 그친다. 정부는 보성강댐, 주암댐, 나주댐 등 기존 댐의 여유량이나 발전·농업 용수를 전환해 하루 최대 65만t, 가뭄에 대비해 106만t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과거 광주광역시와 화순의 수돗물 60%를 대는 동복댐의 용량을 늘려 하루 30만t을 추가 확보하려 한다. 2026년 6월 기존 댐을 15m 높이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9월 말 안전 문제로 하류 200m 지점에 높이 59m의 새 댐을 짓는 방식으로 바꿨다. 저수 용량을 9950만t에서 2억t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는 그대로다.
이 계획대로라면 화순군 이서면 서리마을은 물에 잠긴다. 서리마을은 1970년대만 해도 180가구 넘게 살던 큰 마을이었다. 1972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뒤 댐이 세 차례 높아지는 동안 논밭은 물에 잠기고 주민들은 떠났다. 지금은 21가구, 30여 명이 산다.

서리 주민 박근영(58)씨는 2026년 10월12일 한겨레21과 만나 “이번이 네 번째로 잠기는 것”이라고 했다. 100년 넘은 박씨의 집과 17세기부터 이어진 집안의 선산도 수몰될 것으로 예상한다. 어디까지 잠길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박씨 집을 포함해 화순 이서면·백아면과 담양 가사문학면 주민 약 300가구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보상액이 터무니없지 않을까 걱정하는 주민도 많다. 박씨는 “광주 시내나 화순군 내에서 다른 집을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잦은 가뭄 탓에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22~2023년 남부 가뭄 때 동복댐 저수율은 20% 안팎까지 떨어져 제한급수가 검토됐다. 2026년 8월에도 가뭄 대응 단계가 ‘주의’로 올라 취수를 줄였다. 황석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광주 시민의 식수원인 동복댐에 산단(산업단지) 공급까지 맡기면 극한 가뭄 때 식수와 산업용수 중 무엇을 먼저 줄일지를 두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남광주 하수 재이용수(하루 최대 30만t)를 산단의 주 수원 가운데 하나로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반도체 공장의 물을 재이용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구마모토 JASM 1공장은 공정에서 사용한 물의 75%를 처리해 다시 쓴다. 일본 시민사회는 대만 TSMC 공장(87%), 미국 애리조나 공장(9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물 사용량의 10% 이상을 재이용할 수 있도록 중수도를 설치·운영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규정만 있다.
오폐수도 문제다. 반도체 공정에서 배출될 수 있는 과불화화합물(PFAS)은 자연적으로 잘 분해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린다. 일부는 암 같은 치명적인 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구마모토 JASM 공장에서도 규제되지 않는 PFAS 물질 3종이 배출된다고 발표됐다. 한국은 일부 PFAS를 수질오염물질로 지정했지만, 폐수 배출허용기준은 마련하지 못했다.

2026년 10월12일 전남광주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약 500살의 천연기념물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채윤태 기자
구마모토의 강점이 물이라면 호남의 강점은 전력이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남광주의 전력자급률은 수요 대비 발전량이 1.7배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빛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태양광·풍력 발전소가 몰려 있다. 오히려 전기를 쓸 곳이 부족한 게 고민이었다.
2025년부터 호남을 중심으로 태양광 출력제어가 크게 늘었다. 남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망은 2030년대에 걸쳐 단계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발전소 가까이에 대규모 수요처가 들어서면 송전망 부담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 산단은 그 수요처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전에 제출한 팹 4기와 협력업체의 전력 수요는 6.3GW(기가와트)다. 다만 발전량이 충분해도 산단까지 전기를 끌어오는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한전은 2028년 12월까지 산단에 345㎸(킬로볼트) 변전소와 송전선로를 건설해 2029년부터 약 3GW를 먼저 공급할 계획이다. 2026년 8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두 기업, 한전이 전력공급 협약을 맺었고 9월에는 전력 인프라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됐다.
문제는 이후다. 산단 전력 수요는 2030년 1.5GW에서 2034년 약 6.3GW로 늘어난다. 나머지 전력을 공급할 변전소와 공급망에 대해 한전은 “다수의 신설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데이터센터 수요도 빠져 있다. SK는 서남권에 1GW 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한전은 입주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가 송전선로가 지날 지역과 보상 규모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 호남의 풍부한 발전량은 반도체산업 유치의 경쟁력이지만, 전기가 남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정적 공급이 보장되지 않는다. 송·변전망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지역의 희생이 있어야 할 수도 있다.

2026년 10월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주송정역 앞에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입지를 환영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전남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아이들이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길 바라며 부모님들께서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
전남광주 남구의 동일미래과학고등학교 김문수 교장은 10월1일 입시설명회에서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를 확인했다. 동일미래과학고는 2025년 말 교육청에서 학과 재구조화를 허가받아 ‘반도체과’를 신설했다. 2026년 6월 정부의 클러스터 조성 발표 뒤 문의가 급증했다. 2027년부터 신입생 18명을 받는 학교는 증원도 요구할 계획이다.
일본 구마모토에서도 TSMC 공장 유치 이후 지역 대학들이 반도체 인재 양성에 나섰다. 국립 구마모토대학은 JASM이 문을 연 2024년 ‘반도체디바이스공학과정’을 신설했다. 그러나 교육과정 신설이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구마모토대학 졸업생 중 JASM에 취업하는 학생은 연간 20명 안팎이다. JASM의 2025년 직원은 약 2400명이고 신규 채용은 527명이었지만, 애초 목표인 600명 이상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역 대학생들도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전남광주는 다를 수 있을까. 정부는 반도체 팹 1기당 최소 5천 명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한다. 대졸 이상 연구개발 인력 1천 명, 생산장비 조작원인 오퍼레이터 3천 명 이상이다. 팹 4기의 오퍼레이터 수요만 최소 1만2천 명에 달할 수 있다.
정부의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호남 지역 21개 대학은 전문인력 10만 명 양성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남광주시도 42개 교육기관과 10개 대학원에서 연간 6333명을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속도와 교육 내용이다. 2026년 10월15일 열린 ‘전남광주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방향’ 정책토론회에서 김운섭 조선대 첨단산학캠퍼스 본부장은 “우리가 유틸 라인(팹 가동을 위한 에너지·원료·인프라 공급 설비망)을 놓치고 있다”며 관련 인력 양성을 강조했다. 이승하 광주연구원 연구위원도 “팹 한 기에 오퍼레이터 3천 명 이상이 필요한데 지금 인력 양성 정책은 대학교 중심”이라며 고등학교와 폴리텍대학, 마이스터고와의 협업을 주문했다.
고등학교 졸업에 3년이 걸리는 만큼 2029년 공장 완공에 맞추려면 2027년에는 교육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의 실습을 위한 ‘반도체 미니팹’은 2028년에야 정식 가동된다. 동일미래과학고 김문수 교장은 “반도체 장비는 워낙 고가라 개별 학교에서 구매하기 어렵다. 선생님들 역시 반도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 밖 실습과 교사 연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강현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호남권연구본부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장 4기를 어떤 방식으로 짓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해야 지역에서 공장에 특화된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서 내려올 노동자들의 주거·생활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 충북 청주 등 기존 반도체 클러스터는 30년 이상에 걸쳐 정주 여건을 조성했지만, 호남은 향후 5년 안에 이를 갖춰야 한다.

2026년 10월15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전남광주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려 이승하 광주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지역 기업이 산업 생태계에 포함될 수 있느냐다. 일본 정부는 ‘규슈 실리콘 아일랜드’의 부활을 목표로 10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투입해 TSMC 공장을 유치했다. 공장을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되면 지역 기업들이 공급망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걸림돌은 TSMC의 ‘카피 이그잭틀리’(Copy Exactly) 방식이었다. TSMC는 JASM 공장에도 대만 기업의 장비·부품·공정을 그대로 옮겨왔다. 새로운 지역 협력사를 찾기보다 기존 대만 업체와의 거래를 유지했다. 반도체 기업과 실적을 쌓아본 경험이 없는 구마모토 중견·중소 기업들은 핵심 공급망에 진입하지 못했다.
전남광주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2024년 한국표준산업분류(KSIC) 기준 전남광주 내 반도체 기업은 180곳으로 전체 반도체 업체의 약 3.2%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관리하는 기업 300여 개 가운데 전남광주에 핵심 생산 거점을 둔 기업은 단 3곳이다. 전남광주 지역에는 후공정과 광소자, 전자재료, 화학·비철금속 소재를 중심으로 산업 기반이 형성돼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대표적이다.
2026년 10월15일 정책토론회에서는 지자체가 반도체 생산공정에 진입할 수 있는 ‘빈틈’을 찾아 지역 기업의 업종 전환과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승하 연구위원은 “전남광주는 수도권과 멀어서 기업이 지역에 입주해야 할 명분이 크다”며 후공정과 유틸리티를 집중 육성 분야로 꼽았다.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전남대와 운영하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공동연구소를 활용하고, 공조(공기조화) 분야에선 기존 지역 기업이 2·3차 협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기업의 공급망 진입에는 트랙 레코드, 즉 실제 반도체 양산 라인에 적용돼 품질을 검증받은 실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공공 팹 건설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맹종선 전남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연구교수는 “대전 국가 반도체 연구원에서 1조5천억원을 들여 시험 양산 팹을 만들고 있다. 전남광주도 같은 시도를 해야 지역 기업이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마모토가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대기업 공장이 들어선다고 지역 기업이 저절로 공급망에 편입되는 것은 아니다. 전남광주가 팹 4기를 유치하더라도 지역 기업의 핵심 공급망 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산업 성장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역외로 유출될 우려가 크다.

2026년 9월14일 오전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원구1로와 신안로가 겹치는 사거리에 스쿠터들이 신호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신주과학단지에는 TSMC, 미디어텍, 리얼텍 등 반도체 전후방 산업 9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17만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역 기업이 돈을 벌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는다면 다음에는 어떤 문제가 남을까. 대만 신주에서 확인한 것은 반도체산업이 만들어낸 풍요가 노동자의 삶까지 풍요롭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한겨레21은 대만 신주·타이베이 현지 취재를 통해 반도체·전자전기 제조업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를 보도했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TSMC 전현직 직원들은 대만 평균 연봉의 약 3배 이상을 받았지만, 24시간 대기와 새벽 호출, 누적 노동시간 관리 압박을 증언했다. 이들은 자신을 ‘황금 수갑’을 찬 처지라고 표현했다.
과도한 노동으로 인재들이 빠져나가자 TSMC에서는 노동시간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TSMC의 과거 ‘24시간 3교대 연구개발’을 경쟁력의 근거로 내세우며 연구개발직의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6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고소득 반도체 연구개발직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완화하는 메가특구 특별법안을 연내에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첨단산업의 연구개발 성과를 앞당기려면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산업계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연구개발직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 제외 특례)과 장기 탄력근로, 선택근로 확대 등을 요구한다. 반면 노동계는 노동권 후퇴를 우려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0월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정 지역에만 주 52시간제 예외를 두는 문제에 대해 “노동조건이라는 것을 어떤 지역에만 두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도 “정부 고시에서도 12주 동안 일주일 평균 60시간 이상 일하면 뇌·심혈관 질환과 업무상 연관성이 강하다고 보는데, 반도체 연구개발은 심지어 최대 6개월간 주 64시간 근로를 할 수 있다”며 “메가특구 특별법은 더 심각한 방향으로 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과 경영계가 참여하는 노사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위한 실무 협의가 이어지며 합의점을 도출하는 듯하던 분위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지원하는 ‘초광역특구법안’을 정기국회 최우선 입법 과제로 추진하면서 다시 냉각됐다.
민주당은 10월20일 특구 내 연구개발(R&D) 인력 등 고소득 노동자에 대한 근로시간 특례를 포함한 법안(박상혁 의원안)과 노동 규제 완화 조항을 제외한 별도 법안(최기상 의원안)을 동시에 발의해 병합 심사 및 숙의를 거치기로 했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다 폐기된 ‘주 69시간 개편안’과 다름없는 독소조항이자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법안”이라며 발의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메가클러스터 관련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민주당이 먼저 노동 규제 완화 조항이 담긴 법안을 낸 것은 논의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사회적 대화의 의미를 훼손한다”고, 진보당은 “노동 특례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노동 개악”이라며 반발했다.
대만 신주 사례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노동시간 단일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TSMC의 성장은 인재·자본·기술 축적과 공급망, 정부의 산업정책이 결합한 복합적 산물이다. 아울러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문제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과제였다. 전남광주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과거 TSMC의 장시간 노동 모델을 답습할 필요가 있는지는 별도의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2026년 10월1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상무대로 광주공항 들머리에서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입지 확정을 환영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전남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전남광주는 이제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거점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물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지역 청년을 교육하고, 지역 기업을 공급망에 진입시키는 일은 모두 필요하다.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지키는 제도도 갖춰야 한다. 반도체 공장 4기가 들어선다는 사실만으로 전남광주가 반도체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이 들어선 뒤 지역에 어떤 기업과 사람이 남고, 산업 성장의 이익과 비용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구마모토와 신주의 경험이 전남광주에 남긴 질문이다.
전남광주=채윤태 기자 chai@hani.co.kr·장필수 기자 feel@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2026년 10월12일 전남광주 화순군 이서면 서리마을회관. 서리마을회관은 정부의 신규 동복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윤태 기자

2026년 10월12일 전남광주 화순군 이서면 서리마을회관에서 만난 동복댐 연합대책위원회 위원 박근영(58)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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