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9일 가자시티의 한 텐트촌에서 팔레스타인 소녀가 휠체어를 밀며 다른 소녀와 놀고 있다. 이곳은 2년 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세로 피난길에 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REUTERS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7만여 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군은 난민촌과 병원을 폭격하고 구호품 반입을 금지했으며 식량 배급을 받으려는 주민들에게 기관총을 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소행을 ‘집단살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가자 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맞서 싸운다. 이 멀고도 가까운 가자의 이야기를 한국의 장르소설 작가들이 엽편소설로 연재한다. _편집자
떠나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지시대로 살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아이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샤가 걸음마를 떼고 있을 무렵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삼촌과 숙모와 오빠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했다. 바다가 보이진 않아도 흐린 날이면 바다 냄새가 옅게 풍겨오기도 하는 곳이었다고. 어머니는 그 집을 지금도 눈앞에 있는 듯이 아이샤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집을 두고 왜 우리는 네 명이서 두 개의 방을 나눠 쓰면서 일찌감치 등불을 끄고 숨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물어보던 시절에는 오빠들이 같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삼촌과 숙모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대신, 다른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살고 있다. 눈을 잃은 엄마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을 볼 수 없고, 작은오빠 후삼과 아빠는 3년 전 이곳을 떠난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직접 심어서 가꾼 과수원이, 낯선 사람의 것이 되었다고 했다.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므로 ‘합법적으로’ 소유자가 된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샤의 가족이 살던 곳은 더 이상 ‘우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서 이곳으로 왔다고. 아이샤는 여기서 글자를 배우고 쿠란을 익혔다.
*
‘가을밤이 가자 해변에 찾아온다.’
천사 같은 목소리로 검은 티셔츠를 입은 소녀들이 노래했다.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다음 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거야.’
‘1년 안에 우리는 모두를 전멸시킬 거야. 그리고 돌아와 밭을 갈 거야.’
아이샤의 아빠와 후삼이 떠난 해, 그해 그 소녀들이 노래했다. 우정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세상에 보여줄 거야. 오늘 우리가 적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3년 전, 공격이 성공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벽을 넘었다.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되는 벽이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며, 우리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벽을 넘었다. 누군가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말렸다. 누군가는 두려워했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그건 마치 아이샤의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속의 장면 같았다. 할아버지의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 집을 비우라고 말했을 때, 할아버지는 식구들이 갈 곳이 없고 평생을 여기서 살았으니 우리에게 이러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서류를 흔들었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고 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할 거야. 당신들은 여기 어차피 살 수 없어. 할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길 원했다. 할아버지는 농부였고, 군인이 아니었으므로 가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집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생 살았던 집을 떠났다.
왜 떠나지 않았어요?
아이샤의 오빠들이, 아이샤의 사촌들이 물었다. 아이샤가 태어나기 전에. 집을 잃기 전에, 그들이 이 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 땅에서 그들이 소수였을 때, 먼 나라의 사람들이 그들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때, 왜 그때 떠나지 않았느냐고. 이 땅이 아무도 떠날 수 없는 곳이 되기 전에 떠나지 않았느냐고. 할아버지는 올리브농장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가꿔온 땅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샤의 큰오빠 이스마엘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음 해 이스마엘은 한밤중에 남들 몰래 집을 떠났다.
나는 의사가 될 거야. 이스마엘은 아이샤에게 말했다. 누구한테도 내가 어디 갔는지 말하면 안 돼. 내가 의사가 되면 너를 데리러 올게. 아이샤는 왜 나냐고 묻지 않았다. 이스마엘이 데려가고 싶은 것은 그때까진 꽃을 볼 수 있던, 바다를 볼 수 있던 엄마였을 터다. 아이샤는 엄마를 닮았고 엄마의 굴레였으며 떠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아이샤가 어렸을 때, 아직 쿠란을 배우기에는 어렸을 때, 아이샤는 밤중에 갑자기 열병을 앓았다. 병원은 너무 멀었고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곳은 아니었다. 아이샤의 어머니는 부질없이 아이샤의 몸을 닦고 닦으며 열이 식기를 빌고 빌었지만, 아이샤는 남들처럼 걷는 걸 배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죽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는지, 여자아이인 것이 천운이었는지, 어머니는 천운이라면서도 자주 울었다. 아이샤가 그 모습을 기억할 만큼 자란 뒤에도 계속.
이스마엘이 의사가 되겠다고 떠난 것은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스마엘이 돌아와 마을 사람들 곁에 있는 의사가 되어줄 거라는 작은 희망이 함께 비밀리에 돌았다. 이스마엘이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들이 있었으므로.
폭격이 아이샤가 기억하는 마지막 마을에 쏟아졌다. 아이샤의 아버지와 몇몇 어른이 폭격을 피해 약을,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을 때였다. 아이샤의 눈앞에 폭격이 쏟아졌다. 움직일 수 없는 아이샤를 대피시키려던 어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피가 쏟아졌다. 폭격 소리,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는 소리, 아이샤는 들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비명으로 변하는 소리를. 아이샤는 보았다. 어머니의 눈으로 파편이 튀고 피가 솟구치듯 튀는 모습을.
다음날 후삼은 집을 나갔다. 눈에 붕대를 감은 어머니와 말을 잃은 아이샤를 두고 후삼은, ‘날카로운 검’이란 이름 뜻대로 검을 사러 나갔다. 아이샤는 남았다. 어머니의 붕대를 갈고, 앉은 채로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었다. 말을 잃어도 기도는 할 수 있었다. 아이샤는 기다렸다. 아이샤는, 여기에 있었다.

2026년 5월12일 무더운 날 가자시티의 해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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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나라로 안 돌아가? 너희 나라가 전쟁 중인데.”
이스마엘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같은 과 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나라는 전쟁 중이 아니었다. 짧은 검은 머리의 학생은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나는 절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고, 네가 괜찮은지 걱정이 돼서. 전쟁도 길어지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이스마엘은 그가 말하는 것이 이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이스마엘은 이란 사람이 아니야. 네가 말해야 하는 건 내 쪽일걸. 내 할아버지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시거든.”
기숙사에서 이스마엘과 같은 방을 쓰는 다니엘이 말하자, 그는 얼굴을 붉히고는 미안하다며 멀어졌다. 다니엘은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마도 히브리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할 테지만, 종종 상황을 해결할 때 자신의 출신을 이용했다.
“너도 거기로 돌아갈 생각은 없을 텐데.”
“그럼,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셨을 거야. 그런데, 아직 소식은 없어?”
이스마엘은 고개를 저었다. 3년 전 뉴스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곧바로 가족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원래 살던 곳이 폐쇄되면서 모두 집단이주를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의사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인터넷에서는 계속해서 불안한 소식만 들려왔다. 돌아간다고 해도 가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렵게 가자지구에 간 적이 있다는 기자를 만나 소식을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신다고 하니까,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일단 없어진 마을에 안 계셨던 것은 확실하잖아.”
다니엘이 말했다. 3년 전의 이야기였다. 이스라엘이 공격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스라엘이 적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고 선언하는 장면이 티브이(TV)에 나왔다. 이스마엘은 폭격을 받은 마을을 지도에서 찾았다. 자신이 떠났던 마을, 아투프는 심한 폭격을 받지는 않은 듯했다.
“자밀라도 거기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안 닿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당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더 알아볼 수밖에 없지.”
자밀라는 의료봉사를 다니는 의사였다. 가자지구의 의사 수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이스마엘의 말을 듣고 실제로 동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의사로 일했다. 외국인들이 머물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자에 머무는 동안 계속 이스마엘의 가족을 찾아봐줬다.
이스마엘이 지금 사는 것 모두가 천운이었다.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고국에서는 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아버지는 이스마엘에게 고국을 떠나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유학생 비자가 있으면 고향을 떠날 수 있었다. 이스마엘이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땐 그 길조차 막혔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구했는지 브로커를 통해 첫째 이스마엘을 탈출시켰다.
다니엘의 아버지가 하시는 가게에서 일하게 된 것도 천운이었다. 장학금을 받고, 계속해서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예방접종을 했더라면, 적어도 빨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이샤는 앉아서 사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자신이 의사가 되어서 돌아가기만 하면 적어도 아이샤 같은 사람을 줄일 수는 있을 거였다. 용감한 동생 후삼은 아이샤와 어머니를 잘 돌보고 있을까. 아버지의 손을 조금 덜어드리고 있을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괜찮을 거야. 동생, 후삼이라고 했지? 굉장히 영리하고 책임감도 강하다면서. 분명히 무사할 거야.”
다니엘이 말했다. 이스마엘은 다니엘을 보며 조금 웃었다.
“2년이면 되니까. 2년은 금방 지나갈 테니까. 돌아가서 고향에서 제일 너그러운 의사가 되어야지.”
이스마엘은 방으로 향했다. 곧 기도할 시간이었다. 다니엘은 시계를 힐긋 보고는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이스마엘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스마엘은 방으로 향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2년만 있으면 돌아갈 테니까. 부디 그때까지 무사히 제 가족을 지켜주시기를. 이스마엘은 그래서 여기에 있었다. 돌아가기 위해서.
구한나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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