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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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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롤러코스터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리다

루나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 호황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
한방에 역전해야 하는 사회, 2030세대가 암호화폐에 적극적
등록 2022-05-30 17:53 수정 2022-05-31 06:42
2022년 5월2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서 한 고객이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5월2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서 한 고객이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테라는 블록체인 업계의 카카오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조아무개(31)씨는 2021년 중순 테라 플랫폼의 코인 예치·이체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편리함에 놀랐다고 한다. 다른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에 견줘 테라 플랫폼은 압도적으로 빠르고 편리했다. 주변 개발자들이 테라 플랫폼에서 통화로 쓰이는 ‘루나’ 코인에 많이 투자하는 걸 보고 조씨도 루나를 300만원어치 사봤다. 당시만 해도 한 개에 5만~6만원 하던 루나는 약 1년 뒤인 2022년 4월 한 개 가격이 14만원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5월 초 갑작스러운 투매 사태를 맞아 가격이 폭락했고 5월25일 기준 개당 0.1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블록체인 업계의 카카오’, 이렇게 허망하게

조씨는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던 테라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고 허무했다. “루나 코인 폭락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테라는 한국에서 제일 성공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테라 생태계가 무너져버렸어요. 저는 그나마 소액인데 주변에서 수억원 투자했다가 망했다는 형들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와요.”

네이버의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투자자들의 절망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장 폐업 뒤 힘든 상황이 찾아오고 지인 자금과 대출을 당겨 3억 투자했어요. 너무 힘들고 가족한테 너무 미안하네요. 하루하루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눈물 흘립니다.”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10억 전 재산 날렸어요. 하루하루 눈뜰 때마다 고통입니다.” “코인의 코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어느 단톡방에서 이율 20%짜리 코인이 있다길래 수소문해서 유료 텔레그램방에 십몇만원 넣고 들어갔습니다. 5월11일에 5천만원 예치하고 (중략) 며칠 만에 4천만원이 사라졌습니다. (중략) 원망도 되지만 그래프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난파선에 올라탄 제가 바보지요.”

이 카페의 회원인 ㅇ씨는 <한겨레21>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액수는 말하긴 어렵지만 꽤 큰 돈을 루나 상품에 투자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투자자가 루나 코인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시가총액) 상위권에 오른 코인이라 누구도 몰락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상장한 루나는 블록체인 개발사 테라폼랩스가 만든 플랫폼 ‘테라’에서 통화로 쓰이는 코인이다. 자매 코인 ‘유에스티’(UST)가 한 개에 1달러 가치를 유지하도록 역할을 한다. 개발사는 루나와 유에스티의 가격이 수요·공급 알고리즘에 따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2022년 5월7일 한 ‘큰손’ 투자자가 유에스티를 대량 매도한 뒤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에스티 한 개가 1달러 가치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며 유에스티 가격이 급락했고 루나도 동반 추락했다. 발행사가 생각했던 유에스티·루나의 가격 유지 원리가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한때 50조원을 돌파했던 루나의 시가총액도 거의 증발해 1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루나 투자자는 28만 명, 이들이 보유한 루나 코인 개수는 809억 개로 추산된다. 일부 투자자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공동창업자 신현성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권 대표 등이 테라 시스템의 위험성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연 19.4%라는 고율의 이자를 주며 투자금을 모은 행위가 사기와 유사수신에 해당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벌고 잃기 반복, 지쳐가는 몸과 마음

루나 사태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업계에선 2020~2021년 유동성이 풍부한 장이었다면 테라 플랫폼에 신규 자금이 계속 공급됐을 테고 지금 같은 투매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쌌던 신기루가 걷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상자산 시장은 2017년과 2021년 두 차례 붐을 일으켰다가 2022년 들어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로 위축되고 있다. 전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2021년 11월9일 사상 최고치인 2조9천억달러(약 3700조원)에 이르렀다가 2022년 5월25일 현재 1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업계에선 긴 겨울이 시작될 거란 말이 나온다. 지난 수년간 대박을 꿈꾸며 롤러코스터 장세에 올라탔던 코인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다가 잃기를 반복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이유섭(45)씨는 2017년 비트코인 1차 붐이 일기 직전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수익률이 높은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후발 암호화폐를 말함)에 투자하는 걸 보고 그도 호기심에 카이버, 트론 등 코인을 100만원어치 샀다. 한 달 만에 원금이 200만원으로 불어난 걸 보고 이씨는 적금을 깨서 1천만원을 더 집어넣었다. “당시 이벤트로 1천원에 산 코인이 얼마 뒤 10만원까지 올랐어요. 어떤 사람은 50억원 벌었다는 얘기도 나왔죠. 내 코인도 올라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결국 폭락했어요.” 투자금 1200만원은 한때 2500만원까지 올랐지만 곧 7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씨는 눈물을 머금고 아파트 중도금 낼 돈 2천만원을 투입해 물타기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코인 가격이 일시적으로 올랐고 2천만원을 뺐다. 남은 돈으로 사고팔기를 반복했는데 지금까지 총수익률이 -50%라고 한다. “코인은 오름폭과 내림폭에 제한이 없잖아요. 한번 떨어지면 지하 100층 아래 지옥까지 간다는 농담도 해요. 고수익을 보고 시작했지만 24시간 거래하는 내내 신경 쓰게 돼 너무 피곤해요. 작전세력도 꽤 많아요.” 이씨는 손실금만 회복되면 이제 코인 투자는 그만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직장인 이정신(35)씨도 코인 투자로 마음고생을 했다. 주식투자를 주로 하던 그는 코로나19 직후 주가가 내려가고 금리도 낮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알트코인에 투자했다가 약간의 수익 실현 뒤 원금을 뺐는데 얼마 뒤 그 코인이 상장폐지돼 다른 직원들은 돈을 많이 잃었다. 이후 이씨는 코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샀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비트코인으로 500만원 정도 수익을 냈다. 하지만 원금 500만원을 넣었던 이더리움은 한때 1천만원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수익률 -20% 상태다. “주식과 코인은 벌어도 후회, 잃어도 후회해요. 이익이 나면 ‘왜 더 많은 돈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잃으면 잃는 대로 마음 아파요. 코인이 주식보다 마음 변화의 후폭풍이 더 심하죠.”

대박과 쪽박, 천당과 지옥 사이

전통 금융 시각에서 보면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고 실물경제와 상관없는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 “암호화폐는 아무 가치도 없다”(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2022년 5월22일), “주식은 경제에 도움되는 생산적 자금을 모으는 금융자산이지만 가상자산은 단순 자산에 불과하다”(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21년 10월6일) 같은 정부 당국자의 인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코인 투자자들도 이런 가상자산의 특성을 모르지 않는다.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암호화폐가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일반 투자자는 대부분 암호화폐의 쓰임새보다는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에 더 관심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는 코인 투자를 ‘자산 형성의 지름길’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부동산 가격 급등, 부의 대물림 고착화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는 소득·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성훈(35·가명)씨는 사회초년생이던 2017년 같이 사는 증권사 피비(PB·고액 자산 관리 전문가) 친구를 따라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대출 1500만원을 받아 알트코인 ‘리플’을 샀는데 얼마 못 가 가격이 폭락해 투자금을 거의 날렸다. 대출 갚느라 고생했다는 김씨는 주식투자로 8천만원을 벌었고 그 돈을 2021년 코인 선물에 투자했다. 코인 가격이 1%만 올라도 10% 수익을 얻는 레버리지 상품인데 선물 가격이 크게 떨어져 투자금을 모두 청산당했다. “첫 투자에서 실패하고 그만뒀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만둘 수 없어요. 도박인 건 알지만 본전은 찾아야죠.” 그는 손실 회복을 위해 다음에 올 3차 코인 붐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코인 투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집값 오르는 거 보면서 서울역에 나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세대가 크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코인이에요. 사촌동생이 24살인데 코인으로 1억원을 벌었어요. 내가 1천만원 투자했다가 설사 모두 잃어도 삶이 크게 변하는 건 없는데 만약 대박 나면 인생이 바뀌는 거잖아요.”

법무법인 엘케이비(LKB)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2022년 5월19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법인 엘케이비(LKB)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2022년 5월19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산 없지만 자신감 높은 밀레니얼세대

주소현 이화여대 교수(소비자학) 등이 발표한 논문 ‘밀레니얼세대와 엑스세대, 86세대의 금융상품 보유 행동’(2020년)을 보면 2030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암호화폐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그 세대의 심리적 특성과 경제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다. 연구진이 서울·수도권·6대광역시에 거주하는 시민 63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암호화폐를 보유했거나 보유한 사람의 비중은 밀레니얼세대(1988~1998년생)에서 24%로 가장 높았고 엑스세대(1971~1974년생) 14%, 86세대(1964~1970년생) 6.8% 순이었다. 투자에서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재무적 자기효능감)을 점수로 산출해보니 밀레니얼세대는 316점으로 엑스세대(171점)와 86세대(148점)의 두 배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밀레니얼세대는 인생주기상 사회초년생이기 때문에 가진 자산이 많지 않아 다양한 투자상품을 보유할 수는 없지만 투자에서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다른 세대보다 커서 고위험 자산인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2022년 4월 신한은행이 낸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층 간 소득·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2019년 4.76배에서 2020년 4.88배, 2021년 5.23배로 늘었다.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의 부동산 자산 격차도 2019년 142배, 2020년 164배, 2021년 251배로 확대됐다. 사회 내부의 격차가 커질수록, 고위험 투자로 한 방에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이도 늘어난다.

코인 투자로 번 1억원을 재투자했다가 지금은 90%까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아무개(41)씨는 “한창 투자할 때는 잠도 못 자고 피폐한 생활을 했다.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코인에 투자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제일 빠르게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수단이 코인인 것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혼돈의 롤러코스터에서 잠시 내린 코인 투자자들은 어지러움과 울렁증을 겪으면서도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법은 역할을 할까

폭락 이후

루나 코인 가격 폭락 사태 이후 국내 주요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루나를 상장폐지하고 있다. 고팍스는 2022년 5월16일, 업비트는 5월20일, 빗썸은 5월27일 루나 거래지원을 종료했다. 코인원과 코빗은 각각 6월1일과 3일에 종료할 계획이다.

거래소들은 뒤늦게 안내문을 띄워 코인 투자의 위험성을 알리며 ‘투자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상장 심사 때 루나의 사업구조 위험성을 제대로 검증했다면 투자 피해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와 코인 발행사의 책임 못지않게 거래소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발행자들은 거래소에 상장할 때 사업계획서의 일종인 백서를 제공한다. 백서는 투자자가 해당 코인의 위험성을 파악하는 자료이지만 코인의 구조, 위험수준 등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의 설명은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5월24일 당정 간담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발행자의 공시가 불충분하고 난해해서 발생하는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투자자가 가상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어 “가상자산의 상장 및 상장폐지 요건이 느슨하고 불공정거래 점검이 체계적이지 않아 위험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날로 커지는데 불공정거래·불법행위를 규제할 제도가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관련 범죄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자산 범죄(유사수신·사기 등) 단속 건수는 2018년 62건에서 2021년 235건으로 3년 새 3.8배 증가했다. 피해금액은 같은 기간 1693억원에서 3조128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루나 투자자들도 20% 고율의 이자를 주며 자금을 모집한 루나 발행사 대표를 사기·유사수신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정부는 루나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을 규율하는 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5월24일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상자산의 발행·상장·거래 과정에서 사업자가 지켜야 할 규율체계를 마련해 주식 같은 금융상품 수준의 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가상자산 규제 강화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5월12일 “(루나 사태는)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을 명확히 보여줬다”며 “포괄적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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