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공산권의 몰락을 기뻐하는 지구적 분위기에서 ‘역사의 종말’ 명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본래 헤겔 역사철학에 나오는 개념인데, 이것이 알렉상드르 코제브에서 앨런 블룸, 프랜시스 후쿠야마로 이어지는 가운데에서 ‘맨 나중에 살아남은 체제가 가장 뛰어난 체제이며 역사는 거기에서 종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명제로 기묘한 변형을 겪는다. 다분히 영화 를 연상시키는 이 명제는 좀 황당하게도 1990년대에 승승장구하던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와 그 전 지구적 확장을 인류 역사의 완성으로 신성화하는 역할을 한 바 있다.
1989년 아닌, 2008년에야 끝난 냉전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담론이 하나 놓친 점이 있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냉전 체제는 진행 중이었다는 점이다. 냉전의 한 축이던 공산주의 체제가 1990년대 초에 도덕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파산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는 그 냉전의 반대편이던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자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기는커녕, 이제부터 엄혹한 역사의 시험대에 홀몸으로 올라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었다.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의 두 체제는 스스로의 가치를 내세우고 약점과 치부를 가리는 방법으로 반대편에게 온갖 흉측한 비난을 뒤집어씌우며 ‘그래도 저쪽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손쉬운 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는 이제 ‘소련보다 우월한 체제’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류에게 지속 가능하며 만족스런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로 설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따라서 소련이 무너졌다고 해서 미국의 승리를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은 실로 성급한 짓이었다. 그 뒤에도 냉전은 계속되었다. 단지 형태가 ‘미국의 전쟁’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이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들은 전세계를 실제로 지배해온 지구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일하는 일을 해왔으며, 이러한 ‘미국의 전쟁’을 우리는 ‘세계화’라고 불러왔다. 그렇게 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극적인 파산을 목도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본국인 미국과 전세계 자본주의는 1980년대 소련을 방불케 하는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헤겔식 역사철학도 믿지 않으며, 또 나라마다 각자의 역사적·지리적 조건에 따라 고유하게 생겨야 마땅할 정치·경제 모델이라는 것에 무슨 승자니 패자니 하는 따위의 등급을 매기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렇게 믿고 주장하는 이들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본다면, 냉전은 1989년이 아닌 2008년에 와서야 끝난 셈이다. 그리고 승자는 없다. 냉전 체제 전체가 몰락하고 있을 뿐이다. 스파르타는 아테네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파르타 체제로 역사의 종말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찾아온 것은 스파르타, 아테네, 테베 가릴 것 없는 ‘헬레네 세계 전체의 몰락’이었다.
절충형 독일보다 더 뛰어난 실적 보여
그리고 역사의 그다음 장을 열어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적 문명을 시작하는 역할은 북쪽의 ‘야만인들’인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인들의 몫이었다. 역사의 반복되는 패턴이라고 우기는 것은 억지겠지만, 몇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는 지구의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한 번 유심히 편견 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독일 에베르트재단이 주최한 한 심포지엄에서 클라우스 부슈 교수는 최근 20년간 신자유주의 모델의 종주국이라고 할 영국 및 미국 경제와 스웨덴 경제의 각종 경제 지표의 추이를 비교해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스웨덴 경제는 성장·안정·평등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영국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절충적 모델이라고 상찬을 들어온 가까운 나라 독일보다 더 뛰어난 실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위기 이후 2010~2012년의 기간 동안 각각 1%와 2%의 저성장을 면치 못하는 영국과 미국에 비해 스웨덴은 3.7%로 회복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업률도 각각 8.1%, 9.2%인 영국과 미국에 비해 7.7%이며,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 비중은 각각 -1.9%, -3.3%인 영국·미국에 비해 6.3%로 훨씬 양호하다. GDP에 대한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스웨덴이 영국·미국보다 더 크지만 재정 상태도 채무 위기에 몰린 두 나라와 달리 대단히 건전하다. 이 기간 영국에서의 실질임금은 -1%이고 스웨덴은 1.6%를 기록했지만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실질 단위 임금 비용은 스웨덴이 더 많이 하락했다. 소득 지니계수는 영국이 33, 미국이 45(2007년)임에 비해 스웨덴은 24.1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미국이 11.4%임에 비해 스웨덴은 여전히 68.4%라는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스웨덴 모델의 해체’라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의심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를 빌려서 ‘스웨덴이 답이다!’라든가 ‘스웨덴을 베끼자!’ 같은 식의 선무당 바람잡이 노릇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느 나라의 정치·경제 모델을 베껴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또 가능한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거야말로 실로 ‘구리기’ 짝이 없는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옛날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하던 이들의 경박스런 사고방식을 빌려 말하자면, 역사는 모스크바도 뉴욕도 아닌 스톡홀름에서 종말을 맞았다라는 경박스런 말장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스웨덴 경제는 냉전 시대에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다시피 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식 경제체제 관념으로 쉽게 분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횡행하던 ‘상식’에 정면으로 역행할 만한 짓을 골라서 시행하는 듯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엄청난 노조 조직률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미국인들이 보면 거품을 물며 기절할 만큼 높은 소득세율과 탄탄하기로 정평이 있는 복지 시스템 등. 경제학 교과서가 진리라면 망해도 진즉에 망했어야 할 이 나라는 지구적인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유유히 괜찮은 성적을 보이며 성장·안정·평등을 모두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내내 냉전 시대의 경제사상에 절어 있던 우리의 굳은 머리를 한번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주목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스웨덴이 우리와 다르다면, 미국은?
노파심이지만, ‘스웨덴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운운하며 이런 제안을 초장에 물리칠 분들이 있을까봐 덧붙여둔다. 그럼 미국은 어떤가? 몇억 명의 인구와 대륙을 넘어서는 크기의 영토를 가지고 온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경제 모델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이 비좁고 바글거리는 작은 나라 한국 땅에 어거지로 우겨넣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다시 말하지만 어느 나라 시스템을 베껴오는 것은 가능치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인류가 부동의 진리처럼 여겨온 ‘성장과 평등은 모순 관계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무색하게 만드는 나라가 분명히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라는 20세기 이념으로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 경제가 분명히 있다. 우리가 우리의 상식을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스웨덴은 분명히 그렇게 상식을 바꾸는 중요한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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