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의 대통령 선거를 경험하며 확신하게 된, 참으로 흥미롭지만 따지고 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5년에 한 번씩 왕을 뽑는 것’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거의 몇천 년간 연속성을 유지한 왕권 아래에서 살아온 한국·중국·일본의 ‘백성’들로서는 삼권분립이니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 등등 설명해봐야 우리 생활 속에서는 서걱거릴 뿐, 기껏 백 몇십 년 전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 민주주의라는 사상과 제도가 낯설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랫동안 독재권력에 맞선 민주화 투쟁 시기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한국인들로서는 “그러니까 결국 몇 년에 한 번씩 왕을 직접 뽑자는 것 아니냐”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현행 헌법의 권력 구조 또한 이런 통념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런 우리의 권력 구조가 고도성장 시기의 산업기술 단계와 긴밀히 결합돼 있다고 믿는다. 초기의 자본 축적 단계, 그리고 중화학공업 등 기간산업을 조성하는 단계에서는 경제조직의 활동이라는 것이 다분히 군대조직의 그것과 닮을 수밖에 없다. 작업 계획과 청사진을 앞에 놓고서 지휘하는 이의 명령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과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 분명한 결과를 낸다는 것이 이런 산업 발전 단계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권력은 상층에게 집중된다. 그 아래에는 분명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생겨나고 ‘밤송이를 까라면 깐다’는 말로 집약되는 명령 체계가 작동한다.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 또한 군사작전과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비판이나 토론은 오직 그 최상위 권력자의 생각을 도우려고 그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허가된 이들만이 수행하는 활동일 뿐, 조직 전체에 그야말로 민주주의적 토론과 비판이 확산되는 것은 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런 조직문화는 군대와 국가기구, 기업을 넘어서 학교, 종교조직, 심지어 동아리나 밴드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에서 하나의 정상적 규범이 되고 만다.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의 성취와 한계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을 5년에 한 번씩 국민이 직접 뽑도록 헌법을 바꾼 것은 크나큰 성과이지만, 정보의 흐름과 의사결정을 중층화·다원화하는 더 심화된 민주화 작업은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앞에서 말한 다양한 사회조직들 중에서 그런 식의 민주화가 벌어진 조직은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화를 외치는 합법·비합법의 사회운동 조직 내부에서조차 그런 권력 구조는 갈수록 강해지던 실정이었다. 당시 한국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발전 수준이나 산업구조를 볼 때 여전히 초기 고도성장 때의 패러다임이 유효했고, 그래서 1980년대 이전의 조직문화는 어느 곳에서나 그대로 온존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크고 작은 보스들은 자기들끼리 도당을 이뤄 이것이 여전히 정당 조직의 기초가 되고 있었다. 3대 선거는 그 보스들이 합의한 크고 작은 ‘오야붕’들이 자웅을 결하는 싸움판이 되었고, 일단 선거가 끝나면 이긴 쪽이 사회 전체의 ‘오야붕’ 자리를 먹는 승자독식의 싸움판이 되었다. 그래서 일단 싸움판에서 승리한 쪽은 사회 위에 왕처럼 군림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떨까. 과연 중앙집권과 상명하복의 조직질서가 계속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해보려면 먼저 21세기의 산업기술과 경제조직 및 활동의 성격 변화를 생각해야 하고, 더불어 한국 자본주의가 현재 도달한 발전 단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른바 ‘3차 산업 혁명’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옛날 초기 자본 축적 단계나 경제개발 시기 같은 군사작전 혹은 공병대의 패러다임은 끝났다는 점만큼은 이미 오래전에 많은 사람들이 합의한 바다. 최단시간 내에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끌어낸다는 기계적인 효율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목적한 바- 소비자 만족, 사회적 효용 달성 등- 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응했느냐, 요컨대 ‘스마트’한 결과를 낳았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조직 또한 옛날 군대조직 같은 형태와는 달라진다. 똑똑한 것은 최상층 몇 명이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묵묵히 ‘은근과 끈기’로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것은 옛말이다. 조직의 모든 성원들은 계속 변화해가는 사회 환경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의 성격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상황에 직면하지만, 이를 미리 겪어보거나 연구해 완벽한 매뉴얼을 들고서 방향을 지시할 사령관 따위는 아무 데에도 없다. 결국 모두가 똑똑해지고 강해져서 각자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중앙으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공유돼야 하고, 의사결정권은 실제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하여 다양한 요소로 분할돼 과감하게 적재적소로 분산돼야 한다. 중앙과 상층의 리더십은 역동적인 조직문화에서 비로소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는 1990년대부터 경영학 대가들의 책에서 눈이 따갑게 보아왔으며, 많은 곳에서 이미 실현돼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는 옛날의 중화학공업 단계를 넘어 이른바 ‘탈산업 시대’의 여러 산업들이 크게 성장하는 단계로 들어간 지 오래다. 이에 사회조직의 민주화는 아래에서부터 크게 진행된 상태다. 이제는 군대조직조차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굴었다가는 그야말로 경을 치는 수가 있으며, 나이 좀 많다고 함부로 말을 놓거나 하대했다가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구성하는 경제활동은 이제 ‘까라면 깐다’는 식으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활동을 대폭 포함하게 되었다. 1987년 이후 제대로 진전이 없던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2000년대 중반부터 급물살을 타고 진행 중이다. 이제야말로 국가기구의 조직과 운영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이를 정점으로 한 관료의 독주와 입법부의 위축을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할 것이다.
민주주의 아닌 상인의 관점으로도아직 취임조차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구성된 내각과 청와대 주요 인사의 면면을 보니 결국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장악하는 제왕적 구조라는 말도 들리며, 불과 몇 달 전 선거운동 당시 내놓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을 손바닥처럼 바로 뒤집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1세기의 산업 변화 및 한국 산업사회의 발전 상태와 과연 이런 행태가 조응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주의 운운의 도덕적 당위성 차원이 아니라, 과연 이런 식의 조직 운영이 ‘효율성’과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상인의 관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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