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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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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에 필요한 건 말하기 아닌 독해능력

업무 효율과 혁신 위해 많은 지식 동원 요구되는 세계 경제환경
정보 폭넓게 갈무리하고 음미할 수 있는 영어 읽기 실력 긴요해
등록 2013-04-20 10:10 수정 2020-05-03 04:27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문법과 읽기 위주로 돼 있어 ‘십 몇 년을 학교에서 배우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절름발이 교육’이라는 통념이 있다. 더욱이 ‘무한경쟁의 글로벌 경제 시대’에 필수 무기가 된 영어 능력의 제고를 위해서는 말하기 위주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도 이미 오래전에 상식이 된 듯하다. 나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더 절실해지는 것은 읽기 능력이지 회화 능력이 아니다. 나아가 정말 중요한데도 가장 취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영어 쓰기 능력 문제도 절박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수준의 영어 문서를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도 필요에 따라 이해의 질을 조절해가며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이제 ‘지식경제’에서 부가가치 창출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영어마을. 한겨레 윤운식 기자

다양한 수준의 영어 문서를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도 필요에 따라 이해의 질을 조절해가며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이제 ‘지식경제’에서 부가가치 창출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영어마을. 한겨레 윤운식 기자

CIA 요원들도 ‘구글 치는’ 세상

지난 십 몇 년간 온 나라가 영어 공부 열풍에 휩쓸리다보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온갖 복잡한 쟁점들이 칭칭 엮여들게 되었다. 영문학자도 교육자도 아닌 내가 이 큰 문제에 대해 발언할 여지가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말을 꺼낸 것은 ‘지식경제의 도래’라는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재고해봐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현대 경제에서 자본이나 노동과 나란히, 사실상 그 이상으로 중요한 ‘지식’이라는 생산 요소가 등장했다는 관찰은 이미 반세기 전에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의 물결이 겹치면서 벌어진 일은 한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른바 ‘고급 지식’이란 폐가식으로 운영되던 대학 도서관에 쌓인 서적과 간행물로 제한돼 있었다. 이에 접근하려면 대학 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했기에 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분위기도 대단히 폐쇄적이었다. 물론, 일단 이 일원이 되기만 하면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 정보는 그 양뿐만이 아니라 질에서도 엄청난 수준에 달했고, 게다가 각종 ‘어둠의 경로’들이 두더지 땅굴처럼 뚫리면서 최소한 인문사회 분야에서 대학 공동체의 지식 독점은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몇 년 전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온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푸념처럼, 이제는 알아야 할 정보가 있으면 CIA 요원들도 ‘구글 치는’(googlate) 세상이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맡은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선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지식을 동원할 것을 기대 혹은 요구하는 지식경제 세상이 도래했다. 교과서도 매뉴얼도 없다. 알아서 뒤지고 알아서 수집해 알아서 유효한 방식으로 그 지식을 종합해야 한다.

정보 널렸지만 건질 수 없다면

문제는 그 지식과 정보가 영어로 기록된 경우가 많고 이 비중은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다양한 수준의 영어 문서를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도 필요에 따라 이해의 질을 조절해가며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이제 ‘지식경제’에서 부가가치 창출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영어 독해 능력을 우리는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대부분 문법과 독해력은 부족하지 않고 그저 회화 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바에 비추면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에서 말했듯, 현재의 지구적 경제 환경과 맥락에서 요구되는 영어 읽기 능력이란 어느 지문을 읽고서 거기에 딸린 객관식 문제를 푸는 정도의 능력이 아니다. 자기에게 생소한 분야라고 해도 인식 관심을 뻗칠 필요가 있다면, 인터넷 서핑이나 정보 브라우징을 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지식을 추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내가 보기엔 천만의 말씀이다. 최소한 원칙적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자기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영어 문헌을 소화하는 훈련을 거쳤으리라고 여기며 그렇게 기대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주제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문의해오던 이들에게 영어로 된 문헌을 소개하거나 권했다가 이게 거의 무의미한 짓임을 오래전에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서울의 유수한 대학 박사과정 학생들과 소스타인 베블런의 저서를 함께 강독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의 영어 독해력 한계 때문에 중간에 파탄이 나버리고 말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고 가령 ‘3차 산업혁명과 지역경제 전략’이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했다고 하자. 인터넷에는 관련 정보가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그야말로 돌아가신 희극배우 서영춘씨의 말마따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 없이는 마실 수가 없다”. 기술사·에너지·지리학·인구학 등 수많은 분야의 문서를 무수히 뒤지고 다녀야 겨우 쓸 만한 정보나 지식 한두 개를 건질 수 있는 판이니, 그야말로 영어를 한국어만큼 편하게 읽을 수 없다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회화 능력의 중요성을 낮게 보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회화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표현할 독창적인 내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다. 만일 그 내용을 갖췄다면 비록 버벅거리는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상대방이 다 알아듣게 돼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입 벌릴 기회조차 없게 돼 있다. 여기에서 걱정되는 것은, 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읽기 소홀로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언어에 담긴 생각과 논리를 음미하는 능력의 상실을 낳는, 이른바 ‘천민적 영어 교육’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아르(R) 발음이 유려하게 ‘하우 아 유 두잉?’(How are you doing?)을 말해봐야 별로 얻을 것이 없다. 토익 성적이 좋아봐야, 그리고 어학연수를 다녀와봐야 실제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구체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그 문제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폭넓게 갈무리하고 음미할 수 있는 읽기 실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다 가급적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영어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자칫 지금 같은 영어 교육의 천민화가 진행된다면 한국인들의 외국인 술친구는 늘어날지 몰라도, 영어 읽기·쓰기 능력을 키우는 건 요원한 일이 된다.

번역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스노비즘

가뜩이나 영어 스트레스에 치여 있는 우리에게 모두 영어 독해력을 기르자는 소리를 늘어놓아서 참 안타깝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지적하자.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영어 독해 선수가 되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이웃 나라 일본처럼 중요한 외국 문헌들의 번역에 높은 가치를 두고 온 사회가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사정이 정반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지성계에선 번역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스노비즘이 팽배했고, 학계에서는 번역을 아예 실적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 결과 무책임한 날림 번역이 도처에서 횡행할 뿐만 아니라, 유명하고 팔릴 만한 책이 아니면 아무리 질 좋고 가치가 높은 저작이라고 해도 번역의 손길이 좀체 미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한심스러운 장서 상태를 보라. ‘지식경제’ ‘창조경제’의 구호가 높은 21세기에 정작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지구적 지식 정보 흐름에의 접근 문제는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으로서나 나라 전체로서나 지식경제 시대에 대처하려면 그야말로 훌륭한 지식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각오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모두가 귀찮아하고 기피하기 때문이 아닐까.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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