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국가가 생겨난 이후 인간 세상의 모든 사회에서 세금은 항상 큰 논쟁거리였다. 그러다 산업사회가 들어서서 몇 번의 대혼란을 겪은 이후 20세기 중반이 되면 시장경제와 인간사회가 공존하려면 상당한 양의 공공 지출이 필수적이며 이 부담은 고소득층이 떠맡는 것이 윤리적·효율적으로 온당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바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의 미국은 부자 감세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전환한다. 그 생각의 기초는 바로 ‘래퍼곡선’과 ‘낙수효과’라는 것이었다. 세수를 높이겠다고 극단적으로 세율을 올리면 모든 이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될 테니 경제성장 자체가 죽어버리고 세수의 양은 오히려 줄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0%의 세율과 100%의 세율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 세율과 세수의 크기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밥공기를 엎어놓은 볼록한 곡선이 될 것이다. 꼭 화투장의 팔공산을 닮은 이 래퍼곡선은 아무런 역사적·실증적 연구도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곡선을 내거는 이들은 여기에 근거해 ‘세율을 내려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지극히 무지막지한 결론으로 직행해버린다.
소득세율 80%이던 1950년대가 ‘풍요의 시대’
여기에 익히 잘 알려진 낙수효과라는 주장이 결합되자, ‘부자들의 세율을 내려야만 경제가 살아나며, 이것만이 하층 계급에게도 지속 가능한 번영을 제공해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명제가 태어난다. 혁명과 세계대전과 대공황 같은 쓰라린 경험에서 다져진 복지국가와 누진세율의 합의는 이 맹랑한 경제학의 논리에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은 졸지에 모두의 번영을 위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모종의 ‘공공선’이 되고 말았다. 이후 이 새로운 경제학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전 지구적으로 부자들의 조세 부담은 이후 30년간 기록적인 수치로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는가? 세율이 낮아지면 부자들이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경제가 활기를 띤다고? 그러면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세율이 80%까지 오르내리던 1950년대 미국이나 스웨덴은 거의 기아 선상을 헤매고 있어야 하거늘, 실제로는 그 시대야말로 경제가 하늘로 치솟는 ‘풍요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돈을 풀면 물방울처럼 아래로 떨어지게 돼 있다고? 돈이 언제부터 ‘물’이었단 말인가? 오히려 돈은 그냥 놔두면 더 많은 쪽으로 몰려가게 돼 있다는 게 우리의 경험 법칙 아닌가? 도대체 이 래퍼곡선·낙수효과의 경제학은 현실에서 제대로 검증돼본 적이 있는 것일까?
이 명제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획기적인 연구가 나왔다. 지난해 9월14일 미국 의회조사국에서 발표한 연구 보고서로(‘Taxes and Economy: An Economic Analysis of the Top Tax Rates since 1945’), 미국 경제에서 지난 65년간의 데이터를 총동원해 그 주장을 검증해본 것이다. 이 연구는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www.gpe.kr)의 박형준 연구위원이 쓴 ‘미국의 재정절벽 논쟁의 본질: 부자 감세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에서 그 소개와 평가를 볼 수 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최상의 한계소득세율과 자본소득세율의 변화와 경제성장률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고소득구간에 대한 감세가 저축, 투자, 생산성 향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소득구간의 세율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매우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최고소득구간의 세율과 소득의 집중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나타났다. …조세정책은 경제성장 자체보다는 성장의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감세정책은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인류의 분배 정의 기본 감성에 정면 충돌
이 연구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로 반쯤 미친” 좌파들이 수행한 것도 아니요, 지구 구석의 이상한 나라의 특별한 시기를 골라서 해놓은 연구도 아니다. 미국 경제에서 65년간 진행된 현실을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의회조사국의 직원들이 연구해 여러 학자들의 감수와 상부의 결재를 거쳐서 나온 그야말로 가장 표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연구다. 이제부터 또 누군가 래퍼곡선·낙수효과를 내걸고 ‘부자 감세를 해야 경제가 살고 소득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주장을 펴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박사든 교수든 노벨상 수상자든 이 연구 보고서의 결과를 언급하고 설명을 요구하라. 그게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언제 벌어졌던 이야기인지 말이다.
미국 우파들은 이 보고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보수 쪽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이 연구가 경제성장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단지 최상 한계소득세율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를 잡아 아무런 인과관계 설명 없이 상관관계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좋은 지적이다.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놓고 애초에 별다른 인과관계 설명이나 실증적 입증 없이 그냥 부자 감세를 만병통치약으로 내걸었던 경제학자들이야말로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보수 매체는 이 보고서의 책임 작성자인 의회조사국 직원의 뒷조사를 벌여 그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몇 번에 걸쳐 기부한 흔적을 문제 삼고 있다. 이 또한 좋은 지적이다. 지금까지 부자 감세를 주장하고 이를 정당화해온 경제학자들이 어떤 곳에서 무슨 돈을 얼마나 받아왔는지도 한번 철저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에 의해 여러 방법으로 후원을 받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별 학문적 근거도 없이 칼럼으로 보고서로 휘갈겨놓은 부자 감세 주장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려는 시점에서 복지 관련 공약의 재원 마련을 놓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그중 하나로 증세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논쟁의 세부 쟁점으로 들어가기 전에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부자 감세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앞에서 말한 대로 부자 감세란 20세기 후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달했던 조세에 대한 상식을 거꾸로 뒤집는 것이며 나아가 몇천 년간 내려온 인류의 분배 정의의 기본적 감성에 정면 충돌하는 실로 발칙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이것이 투자 확대와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 해소를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는 단추임이 명명백백 입증될 필요가 있다. 앞에 소개한 미 의회조사국의 연구는 그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세금을 크게 깎아줘봐야 부자들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며, 되레 가난한 사람만 더 가난해지고 부자만 더 부자가 된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요컨대 래퍼곡선의 모습은 팔공산이 아니라 개마고원에 더 가까운 듯하며, 실제로 벌어진 것은 낙수효과가 아니라 ‘흡수효과’였다는 것이 미 의회조사국 연구의 결론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 뼈저리게 느낀 바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준 것에 불과하다.
부자들의 재정 부담, 윤리적이며 현실적
더 이상 감세를 경제 살리기와 연결짓는 논리를 무슨 ‘과학’인 양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전체에게 필요한 재정의 부담을 부유한 이가 더 많이 지는 것은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일 때가 많다. 실로 30년 만에 비로소 인류는 몇천 년간 내려온 상식을 다시 회복해가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해서, 증세는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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