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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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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회사 앞 식당밥은 맛이 없나

분업·협업의 기적 일으킨 화폐경제의 몰인격성이 초래한 지구적 위기…
협동조합운동이여, 화폐 경제를 인간답게 하라
등록 2012-06-21 19:59 수정 2020-05-03 04:26
만족스러운 식사는 서로의 욕구와 필요를 깊이 살피고 정성을 기울이면 해결되는 문제다. 그러니 화폐경제보다는 협동조합이 잘 해결할 수 있다. 점심시간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한 식당. <한겨레> 김진수 기자

만족스러운 식사는 서로의 욕구와 필요를 깊이 살피고 정성을 기울이면 해결되는 문제다. 그러니 화폐경제보다는 협동조합이 잘 해결할 수 있다. 점심시간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한 식당. <한겨레> 김진수 기자

지난해 관련 법이 통과돼 이제 우리는 누구나 손쉽게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전에는 협동조합을 결성하려면 1천 명 이상 모여야 했고, 업종도 농업과 어업 등 1차 산업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이제는 5명만 모여서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법인 같은 위상의 협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고, 업종 또한 서비스업을 포함해 전 업종으로 확장됐다. 법은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바야흐로 협동조합운동이 활짝 피어나기를 한번 기대해볼 만하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화폐경제의 마술

협동조합운동은 19세기 초 영국 노동운동과 함께 발생해 오늘날까지 지구상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화폐를 매개로 한 시장경제와 병존하며 곳곳에서 발전했다. 그 장구한 역사 속에 축적된 이론과 실천의 경험을 연구하고 좋은 것을 배우는 작업이 우리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몇 년 전까지 전 지구의 정치·경제 체제를 집어삼키며 승승장구하다 최근 바닥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시장 맹신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경제를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적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간사회는 여러 사람의 노동 분업 혹은 협업 없이는 한순간도 존속할 수 없다. 문제는 그렇게 분업 혹은 협업을 조직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협업 및 분업의 조직 기술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기적 중 하나는 화폐경제다. 생각해보라.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어 기하학적 수의 조합이 생겨나게 되고, 이 엄청난 수의 인간관계를 일일이 엮어서 일사불란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하지만 화폐가 있다면 달라진다. 생산자들은 수천∼수만 명의 사람을 염두에 둘 필요 없이 무엇을 어느 정도, 어떻게 생산하면 어느 만큼의 이윤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된다. 소비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또 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할 것 없이 그저 돈만 내면 된다. 이렇게 화폐를 통한 개개인의 이윤·효용 계산을 매개로 삼으면 수만 명, 아니 수억 명의 노동 분업이 불가능할 게 없어진다.

이런 화폐의 기적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은 근대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다. 특히 20세기 들어 본격화된 2차, 3차 산업혁명은 노동과정의 연쇄고리를 시간적·공간적 측면에서 거의 무한정으로 확장했다. 스마트폰 하나를 생산하려고 전세계의 무수한 인간·자원·지식이 하나의 생산과정으로 엮이게 된다. 이 무수한 존재들을, 어처구니없이 긴 공간적·시간적 지평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할 수 있는 기적을 화폐경제 이외에 감히 무엇이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고도의 복합적 산업사회는 이렇게 자연과 인간과 지식이 결합되는 규모가 무한정으로 확장되면서 출현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화폐경제라는 협업 및 분업 조직의 기술은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화폐경제라는 기술의 장점은 결국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경제활동 영역으로 한정될 뿐이다. 화폐경제가 탄생시킨 정점의 조직이라 할 자본 및 금융 시장이나 주식회사 기업 형태 등도 그 강점은 그런 영역에서 작동할 때로 한정된다. 인간의 삶을 실제로 구성하는 경제활동 영역 중 어마어마한 시간적·공간적 규모에서 노동 분업을 조직해야만 만족스럽게 충족되는 영역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주변에 있는 단 몇 사람의 이웃이 그저 정성스럽게 서로를 살피고 관심을 가지기만 하면 훨씬 만족스럽게 충족될 수 있는 영역이 우리 삶에는 얼마든지 있고, 여기에서의 협업과 분업을 조직하는 데 화폐경제가 장점을 갖기는커녕 숱한 문제를 일으킨다. 앞에서 화폐경제가 기적을 일으키는 비밀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두 오직 화폐만 바라보며 맺어지도록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이 ‘몰인격성’이 바로 이런 영역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다.

대자본과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곳

멀리 갈 것도 없다. 직장인들의 일상적 골칫거리 중 하나는 점심밥이다. 출처 불명의 식자재와 각종 화학조미료로 범벅이 된 식당 밥은 값도 비싸거니와 한 달 정도 여러 식당을 전전하고 나면 입맛을 잃고 지쳐 떨어지게 된다. ‘만족스러운 식사’라는 경제활동은 무슨 최첨단 장비와 대규모 자본 투여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서로 가진 필요 욕구와 능력에 대해 관심과 신뢰를 가지고서 깊이 살펴 정성을 쏟으면 끝나는 문제다. 이 영역에서 화폐경제가 무슨 위력을 발휘한단 말인가? 여러분은 대기업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푸드코트’가 생기면 갈 마음이 날 것인가? 보육은 또 어떤가? 아이를 건강하고 옹골차게 키우는 데 최첨단 영어 교육 시스템과 자기공명영상(MRI) 기계가 필요한가? 아이와 소통할 줄 알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 아이에게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사람과 그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면 족하다. 단골로 가고 싶은 찻집과 빵집은 내 입맛과 취향, 그리고 일상의 흐름을 이해해주고 그 속에서 관심과 배려로 내가 기뻐할 커피와 차와 빵과 과자를 만들어주는 집이지, 이름만 거창하고 인테리어만 요란한 대기업이네 호텔이네 하는 찻집과 빵집이 아니다.

이것이 협동조합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서로 가진 필요 욕구와 능력을 주의 깊게 살피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에게 최대한의 봉사를 하는 것, 이런 인간관계 속에 물질적인 경제생활을 ‘묻어들게’ 하는 것. 이러한 협동조합 정신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협동조합운동이 번성할 만한 지평이 넓게 펼쳐져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물결 속에서 우리의 경제생활을 구성하는 수많은 활동들이 화폐경제를 통해 조직됐다. 오늘날 이 ‘상품화’가 시장경제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통해 우리 삶을 모든 면에서 더 향상시켰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업사회는 갈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필요 욕구 또한 대기업 로고가 찍힌 무언가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해지고 있다. 이런 인격적 관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심과 신뢰와 성의로 분업과 협업을 조직하는 기술로서 협동조합운동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수단쯤으로 여기지 말길

협동조합운동에 당장 큰 기적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특히 협동조합운동의 본래 정신을 망각하고 이 운동이 정부 관료들에 의해 그저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여겨지거나, 또 일부에서 생각하듯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많이 버는’ 꿩 먹고 알 먹는 화수분쯤으로 여겨질 경우, 협동조합은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 상호 간의 관심과 신뢰라는 핵심을 잃게 돼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협동조합운동의 흐름을 이어온 우리 사회의 수많은 활동가들의 진실성과 역량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협동조합운동의 번성을 위해 관심과 신뢰를 모아보자고 감히 독자 여러분께 권하고 싶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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