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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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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거품 가격 지난 3년간 9조원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이통사·제조사가 짜고 만든 휴대폰 가격 부풀리기 구조
법망 빠져나가는 능력 탁월해 가격 정상화 낙관은 금물
등록 2012-03-22 15:26 수정 2020-05-03 04:26

‘휴대전화 할인판매 솔직히 사기다… 어느 판매업자의 고백’ ‘한국인이 가장 비싼 휴대전화 사는 이유… 일부러 값 비싸게 책정하고 보조금으로 깎아주는 봉이 김선달 수법’ ‘스마트폰 요금 왜 비싼가 보니… 거품 낀 단말기 출고가 탓’.
그동안 비싼 휴대전화 가격을 둘러싼 의혹을 소개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이다. 그때마다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들과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오해’라거나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반박했다. 휴대전화 유통과 가격결정 구조는 전문가들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기로 악명 높다. 소비자는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당하는 듯한 느낌에 항상 찜찜했다.

19만원이나 비싸게 판 삼성 갤럭시S
논란은 지난 3월14일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장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경제검찰’인 공정위가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린 뒤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해온 혐의로 3대 이통사(SKT·KT·LG유플러스)와 3대 휴대전화 제조사(삼성전자·LG전자·팬택)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심의하는 자리였다. 이통사·제조사들은 세종·바른·율촌·태평양·광장 등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앞세워 강하게 반박했다. “판촉활동의 일환으로 보조금을 활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마케팅이다.” “휴대전화 가격에 보조금 비용을 반영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손해 보고 장사하라는 거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소비자 구입가가 비싸진다.”
이때 사건 조사를 맡은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이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에서 2010년 말에 작성한 내부 문서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동통신) 사업자는 (휴대전화 제조사의) 공급가격 대비 고가로 명목 출고가를 책정하고, 명목 출고가와 공급가의 차이를 활용하여 높은 보조금 규모를 운영. 사업자는 고가의 단말기를 저가로 구매하는 것 같은 (소비자의) ‘착시현상’을 마케팅 툴로 활용….” 제조사의 입을 통해 휴대전화 가격에 숨어 있는 거품의 실체가 처음 공개적으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장용석 공정위 상임위원이 문건 작성자인 삼성전자의 김아무개 부장을 증인으로 직접 불러 내용을 재확인했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서로 짜고 소비자를 봉으로 삼아온 휴대전화 가격 부풀리기 구조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그림 참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인 갤럭시S의 경우 평균 공급가가 63만9천원이다. SKT는 여기에 31만원을 덧붙인 94만9천원으로 부풀려 대리점에 공급한다. 대리점은 이 가격에서 7만8천원을 깎아주는 것처럼 눈속임해서 87만1천원에 소비자에게 판매한다(실제 소비자 구입 가격이 이보다 낮은 건 의무사용 기간, 요금제 등 각종 약정 계약을 맺어 추가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비자가 제조사 공급가에서 추가로 부담한 23만2천원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우선 대리점이 유통마진으로 8만7천원을 먹는다. SKT도 10만5천원을 챙겨 다른 보조금 재원으로 사용한다. 나머지 4만원은 물류비용이다. 만약 소비자가 보조금 거품 없이 공급가(63만9천원)와 물류비용(4만원)만 부담하고 휴대전화를 구입한다면 약 68만원이 된다고 공정위는 설명한다. 지금보다 19만원(22%)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 휴대전화 대리점의 창문에 각종 휴대전화 할인광고가 잔뜩 붙어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 휴대전화 대리점의 창문에 각종 휴대전화 할인광고가 잔뜩 붙어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국내에선 56만원, 해외에선 25만원

제조사가 처음부터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려 공급하고 그 차액을 눈속임용 보조금으로 활용하는 유형도 있다. 휴대전화 제조사는 출고가가 높을수록 소비자에게 ‘고급품 이미지’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이통사에 실제보다 훨씬 높은 공급가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한다. 한마디로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 셈이다. 공정위 신영선 국장은 “공정위가 이통사들과 제조사들의 보조금이나 장려금 같은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까지 문제 삼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할인 혜택이 없음에도, 마치 고가의 휴대전화를 싸게 사는 것처럼 눈속임한 게 위법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속임용 보조금 관행은 2008년부터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조금 규제를 없애고, 2009년부터 아이폰 등 외국산 스마트폰이 국내에 본격 진입해 업계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출고가·공급가 부풀리기로 휴대전화 출고가와 공급가의 차이는 평균 22만~23만원에 달한다. 이는 애플 아이폰4의 공급가가 79만원이고 출고가가 81만원으로 차이가 거의 없는 것과 대비된다. 또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국외 시장에는 정상적인 가격으로 수출해, 같은 모델이라도 국내외 공급가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경우도 발견됐다. 공정위 권철현 서비스업감시과장은 “한 스마트폰 모델의 경우 국내시장 평균 공급가는 56만8천원인데, 해외시장 수출 공급가는 25만5천원으로 국내시장의 45% 가격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2010년 국내 휴대전화 판매량은 2400만 대에 달한다. 공정위는 조사 기간인 2008∼2010년 3년간 공급된 모델의 대부분인 253종에서 출고가·공급가 부풀리기가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이 기간에 이통사와 제조사에 의해 부풀려진 휴대전화 가격 거품은 모두 9조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3개 이통사와 3개 휴대전화 제조사에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고개유인행위를 적용해, 시정 명령과 함께 4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SKT와 삼성전자 등은 억울하다며 즉각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통사와 제조사들에 대한 제재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공정위 과징금은 애초 조사부서가 제시한 1240억원보다 63% 적다. 또한 부과 과징금은 조사 기간 3년간 휴대전화 가격 부풀리기 총액인 9조원의 0.5%에 불과하다.

또 다른 문제는 휴대전화 가격의 정상화 여부다. 통신사와 제조사들은 6월께부터는 가격 부풀리기를 통한 장려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공급가와 출고가의 차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방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위법적인 보조금 관행이 사라질 경우 휴대전화 거품이 사라지고, 가계의 통신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휴대전화 가격에 숨어 있는 거품의 실체를 확인해주는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의 내부 문서.

휴대전화 가격에 숨어 있는 거품의 실체를 확인해주는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의 내부 문서.

SKT, 소비자 직접 구매 무력화 전략 세워

낙관은 금물이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통신사와 제조사들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단말기 유통 방식은 이통사를 통해서만 개통(소비자 판매)되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월부터 제조사가 이통사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소비자에게 직접 팔아도 유심칩만 꽂으면 바로 개통되는 블랙리스트 방식을 도입한다. 휴대전화 유통 구조를 다변화해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위가 SKT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조사 직접 판매분과 이통사 대리점 판매분 간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함으로써 블랙리스트 방식을 무력화하는 전략이 담긴 문건이 입수됐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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