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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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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삼양이냐 농심이냐, 사나이 울리는 맛 경쟁

등록 2008-08-0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맞수 기업 시리즈 첫번째 ‘농심 대 삼양’, 후루룩 짭짭 맛좋은 라면으로 40년 대결</font>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font color="#00847C">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내 생전 사업적으로 못내 아쉬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미풍이 미원을 이기지 못한 것이고, 금성(지금의 LG)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미료의 선두주자 미원은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삼성그룹 ‘미풍’의 추격을 따돌렸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대상(옛 미원)그룹 임창욱 회장의 딸인 임세령씨와 결혼했다. ‘맞수’였던 미원과 미풍은 사돈기업으로 거듭났다. 금성에 가려져 만년 2위였던 삼성은 반도체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영원한 맞수는 없다. 맞수는 새롭게 진화·발전한다. 과거 제일제당은 ‘밀가루’ 기업, 오리온은 ‘초코파이’ 기업으로 서로 상관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제일제당의 후신인 CJ와 오리온은 지금 케이블TV와 영화 등 미디어 산업에서 둘도 없는 맞수가 됐다. 맞수 기업이 있어야 소비자들은 이득을 보고 편해진다.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려 경쟁하기 때문이다. 미원에 진 삼성이 ‘다시다’를 들고 나왔잖은가. ‘맞수 기업 열전’은 라이벌 두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옛 추억과 치열한 경쟁, 승패의 전망을 보여주려 한다. 두 회사를 지켜보는 소비자들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맞수 기업을 보며 역동적인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집자</font>

‘파’ 송송, 계란 ‘탁’ 곁들여진 라면. 여기에 하나가 더해질 때 라면은 참맛을 낸다. 추억이다. 라면은 추억을 먹고, 사람들은 라면을 먹으며 추억을 떠올린다. ‘보글보글’ 끓는 추억이 곁들여진 라면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한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가 연탄불에 양은냄비로 끓여주던 라면을 사람들은 잊지 못한다. 살을 에는 겨울밤, 야간보초를 선 뒤 반합에 끓여먹던 라면 맛도 사람들은 잊을 수 없다. 시인 안도현은 ‘라면 예찬’이라는 글에서 “퉁퉁 불은 라면을 먹어 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고까지 했다.

그런 추억 때문일까.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은 979억 봉지의 라면을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먹어치웠다. 1인당으로 따지면 1년에 75개를 끓여먹은 셈이다.

원조는 삼양, 농심은 ‘롯데공업’이 개명

이런 국민 식품 ‘라면’을 만드는 맞수 기업이 바로 농심과 삼양식품이다. 40년 지기 맞수 기업이다.

두 맞수에겐 쇠고기가 따라붙는다. 삼시 세 끼 때우기도 힘들던 때, 쇠고기는 언감생심이었다. 라면 스프에 들어간 쇠고기 분말은 서민들에게 얼큰한 쇠고기 국물을 대신해줬다. 삼양의 ‘쇠고기 스프’ 마케팅은 그렇게 주효했다. 삼양은 ‘쇠고기면’이라는 이름의 라면까지 내놓으면서 1등 자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또 다른 쇠고기 앞에 삼양은 절망한다. 1989년 공업용 우지(소의 지방 조직에서 얻은 기름) 파동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불붙은 촛불 정국에서 두 회사는 또다시 쇠고기 앞에 서게 된다. 두 회사는 ‘부글부글’ 끓는 누리꾼들의 지지와 항의를 동시에 받았다.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이 농심 불매운동과 삼양식품 살리기 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라면의 원조는 삼양이다. 1963년 9월15일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일본에서 라면 기계 두 대를 도입해 만든 게 첫 라면이었다. 당시 한 봉지 값은 10원. 2년 뒤인 65년 롯데공업이란 회사에서도 라면을 내놓았다. 이 회사는 70년대에 ‘농심라면’을 시판했는데, 라면이 인기를 끌면서 회사 이름도 농심으로 바꿨다.

라면 산업은 70~80년대가 황금기였다. 매년 판매가 30~40%씩 늘어났다. 60년대 후반 연간 생산액이 1500억~160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1조444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80년대 들어 삼양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심은 너구리(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로 이어지는 히트상품을 연이어 시장에 내놨다. 86년에는 ‘국민 라면’이라는 극찬까지 듣는 신라면을 내놨다. 유성근 농심 상무는 “당시 임직원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스프를 개발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렇게 애정과 정성을 스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반면 삼양은 1등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삼양, 80년대 60% 점유율이 14%로 추락

80년대 초반 라면시장은 삼양이 60%, 농심이 40%의 시장점유율을 보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는 점유율이 엎치락뒤치락했다. 89년 가을 우지 파동으로 삼양은 시장에서 추락했다.

우지 파동 결과는 처참했다. 일순간에 불량식품으로 전락한 삼양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1천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100억원어치가 넘는 제품이 반품·폐기됐다. 최남석 홍보팀장은 “무엇보다 ‘정직과 신용’이라는 기업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실추됐다. 미국 등 그동안 공들였던 수출시장도 대부분 잃게 됐다”고 말했다.

8년 동안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96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뒤바뀐 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선 농심이 70%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삼양은 13~14%쯤 된다.

라면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이 때문에 두 회사는 울고 웃는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불경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라면 업체들은 내심 불경기를 바란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라면 판매량이 급증했다. 농심은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줄어들던 라면 판매량이 올 2분기 들어 8~9% 정도 늘어난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잇따라 농심 등 라면업체의 목표주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서민 음식이다 보니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올 초 라면업체들은 곡물값 폭등을 이유로 라면값을 100원씩 올렸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라면값을 예로 들며 “라면값이 100원 올라 서민들에게 타격을 준다”고 말하자, 농심 주가가 떨어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6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농심과 삼양식품 등 라면업체들이 라면값을 올리면서 짬짜미(담합)를 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신고로 벌이는 것이 아니라 공정위 직권으로 착수한 것이다. 라면값은 이른바 ‘MB 물가 관리지수’ 가운데 하나다.

라면이 처음 나올 때 값은 10원. 지금은 650~700원쯤 한다. 70배 뛰었다. 하지만 당시 10원 하던 버스비가 지금은 1천원으로 올랐다. 자장면값이 30원에서 4천원으로 뛴 것에 견주면 크게 오른 편이 아니라고 라면업체들은 주장한다.

맞수지만 두 회사는 닮은 점도 참 많다. 우선 최고경영자(CEO)가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정직과 신용이라는 기업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비슷하다. 둘 다 라면에 주력한 ‘라면장이’들이다. 두 사람이 라면시장에 뛰어든 사연도 재미있다.

두 회사 모두 “미국산 쇠고기 쓰지 않아”

전중윤 삼양 회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줄서 있는 것을 보고 라면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평소 일본을 드나들며 자주 보아왔던 라면을 떠올린 것이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자서전 에서 라면사업 진출 사연을 얘기했다. 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하던 일본의 (주)롯데 이사로 일하던 그는 라면시장 진출을 결심한다. “형님, 새로운 사업으로 라면을 해보려 카는데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라면이라 했나. 그거 누가 사서 묵을 끼라고 만들라 카는데. 치아라 마.” 형의 말을 듣고 신춘호 회장은 오히려 오기가 생겨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두 회사는 소비자와의 소통에 약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두 회사 경영진들은 좋은 식품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계속되는 이물질 사태와 촛불 정국에서 위기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소비자들이 두 회사에 궁금한 것은 세 가지다. 라면 스프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는지, 유전자변형원료(GMO)를 쓰는지, 인공화학조미료(MSG)를 쓰는지다. 두 회사 모두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농심은 2000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산 쇠고기 분말을 넣고 있다. 삼양식품은 국내산 육우로 만든 쇠고기 분말을 스프에 사용한다. 70년대 초 세운 대관령 목장에서 육우를 직접 길러 쓴다고 한다. 두 회사 모두 GMO와 MSG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회사의 고민은 장수식품이 많다는 것이다. 신라면(농심), 안성탕면(농심), 삼양라면(심양식품), 짜파게티(농심) 차례로 잘 팔린다. 두 회사가 지속 가능하려면 과거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신세대의 맛을 따라잡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20년 동안 눈에 띌 만한 스타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두 회사는 유기농 원료를 쓰는 라면, 기름에 안 튀긴 면, 소금을 줄인 저염도 라면 등을 내놓으며 신세대 입맛에 맞추려 애쓰고 있다.

안도현 시인은 ‘라면 예찬’ 마지막 부분에서 “실업과 노숙의 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도 라면이다. 겨울밤이 깊어갈 때, 라면 한 그릇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다”고 말한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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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라면 광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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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 size="4">유행어 제조에선 농심 승리</font>

1998년, 농심은 전 국민적인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2005년, 삼양은 ‘정’(情)으로 승부를 걸었다. 라면 먹는 여고참을 본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한다. “라면 드시는 모습도 예쁘세요.” 당황한 여고참, “라면이나 먹어”.
앞의 것은 탤런트 김현주가 나온 ‘농심 생생우동’ 광고, 아래 대화는 삼양의 ‘삼양라면’ 광고다.
유행어를 만들어내는 데는 농심이 앞섰다.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 등등의 히트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삼양은 윤도현, 김제동 등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젊은 층 공략에 적극 나섰다.
70년대에는 탤런트 신구와 코미디언 구봉서·곽규석 콤비가 라면 광고를 이끌었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로 뜬 탤런트 신구는 당시 삼양라면 광고에 근엄하게 나와 이렇게 말한다. “삼양 쇠고기 라면은 천연 토코페롤을 쓰고, 방부제라는 것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능청스런 구봉서·곽규석 콤비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는 서경석·이윤석 콤비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로 재현됐다. 라면 광고의 추억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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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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